스티브 잡스 아이 마인드 (i Mind) - 세계를 열광시키는 통찰력의 비밀
김범진 지음 / 이상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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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선(禪)의 교차 / At the Intersection of Techonology and Zen

 

'어, 낚인거야?' 이 책을 받아들고 처음 내뱉은 말이다. 허접한 제본상태 - 속지 접착 상태가 안좋았음-에다 웹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문고판 크기의 얇은 책을 보며 실망스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 출장길에 가방에 넣어뒀다 마무리하고 내려오는 길에 후다닥 읽어봐야지 하고 다시 펼쳐서 읽었다. 스티브 잡스와 선, 다소 억지스럽게 관계지으려고 하거나 중언부언하면서 페이지나 채우겠지하는 선입관이 페이지를 넘기면서 차츰 사라진다.

 

애플이 하루가 멀다 않고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뉴스거리가 되면서 많은 책들이 최신의 다양한 경영방식, 심리학 등의 기법을 이용해서 i 시리즈로 대변되는 애플의 제품을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고 애플이라는 기업을 논하고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신랄하게 파헤치고 분석하고 그러면서 너도 나도 찬양을 한다. 이런 접근 방식이 정말 올바른가. 드러난 성과를 전제로 한 시각과 그에 따른 분석은 토대가 되는 성과가 한순간 무너지게 되면 곧바로 거짓말이 되어 꼬리를 감추게 된다.

 

기업의 성공이나 명성은 찰나적이다. 연타석 홈런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가도 한순간의 실수로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애플이라도 천하의 스티브 잡스라도 그런 역경에서 벗어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결국 그 많은 찬사들과 분석들이 거짓말이 되고야 말 운명이란 말인가. 외양만을 두고하는 분석은 거짓말이 되겠지만, 애플과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내면을 파헤치고 본성을 드러낸 분석은 외적인 성패와는 관계없이 유효하고 심지어 유용할 것이다. 이 책은 그 완결성을 논하기전에 이런 시각으로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논한다.

 

스티브 잡스가 선수행자였다니. 다소 근거없이 보이는 말처럼 들리지만 1982년 촬영된 사진 한 장이 마음 한켠의 의구심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의 말, "필요한 것이라곤 한 잔의 차와 조명 그리고 음악뿐이었습니다."

 

잡스를 포함한 미국의 많은 지성인들이 불교, 특히 선에 끌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은 독립적인 성격과 강한 자존심, 지성적이면서도 저항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부처든 불법이든 신이든, 그외의 모든 것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만 의존하는 선의 마음과 통한다는 것이다. 불교와 선이 동양에서 탄생했으니 당연히 동양적 사고를 바탕으로 할 것이다라는 틀에 박힌 생각을 했었는데, 관계의 연을 끊고 속세를 떠나서 깨달음을 갈구하는 하는 모습이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의 모습보다는 과연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에 근접해 있다.

 

선은 단순함을 추구한다. 선은 겉치레를 벗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애플의 제품이야 말로 겉치레를 벗어버린 단순함의 극치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iMac의 리모콘도 손가락 길이에 버턴 세 개가 전부이다. Front row를 구동하고 사용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단순함의 추구가 치밀하게 계산된 마케팅 전략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소박하고 단순한 의상과 일상 생활 등 선수련을 통해서 몸에 베인 의식이 제품에 투영된 것이다.

 

"해적이 될 수 있는데 왜 해군이 되겠는가?" 잡스는 관습과 상식을 따르지 않는다.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파격은 격식 즉 기존의 틀, 생각, 선입견을 뒤집고 깨부수는 것이다. 그의 파격적인 정신도 선으로부터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파격이라고 하면 폭력이나 과격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선에서의 파격은 오히려 관념으로 굳어지고 절대적인 것이 되어 버려 폭압적이기까지한 고정관념과 사고의 틀을 깨부수고 거부하는 힘이다.

 


도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여! 진정한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해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는 일이라네. 자세들의 길을 가로 막고 선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 즉시 없애버리게.

 

애플의 제품은 사용자 자신조차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욕구를 충족해 준다. 그런 통찰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선의 곧바로 정신 즉 직관(直觀), 직지(直指), 즉시(卽時)가 그 열쇠이다. 선의 '곧바로' 정신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생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경험할 수 있다.

 


수행을 통해 대상을 처음으로 직접 경험하게 된 순간의 황홀함! 사람들은 이 순간을 찬탄한다. 나무가, 바람이, 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온 세상이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다.

 

개인적으로 맥을 사용하고 IT업종에 종사하면서 누구 못지 않게 스티브 잡스에 대한 찬사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의 내면의 모습에 대해서 그가 진정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왜 그리 기인같은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드러나지 않은 면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물론 저자도 말하듯이 출판 인쇄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모습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스티브 잡스의 실제 모습 이상으로 그의 긍정적인 면만을 그렸다고 해도 어떠한가. '스티브 잡스'를 '이름 없는 선수행자'로 바꾸고 그가 선을 통해 얻는 직관으로 세상을 직시, 즉시하고 사람들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단순하고도 파격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더불어 배움을 얻고 있으면 그만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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