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에서 역설과 모순은 하나의 표식이 된다. 우리는 이 표식을 따라 걷고, 이 표식을 통해 스스로의 위치를 알게 된다. 마치 안내판처럼. 각각의 챕터에는 신비하고도 무서운 표지판들이 줄지어 기다린다. 이 표지판을 따라 걸으며 나는 작가가 역설을 통해 숨기려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고 극화하려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점에서 이 작품은 엄청난 설득력-이야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동화적 언어로 쓰인 판타지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역설을 말하는 힘이다.
역설은 무논리가 아니다. 역설은 현실 세상을 마주한 거울 세상 속 논리이며, 현실 세상 속 참과 거짓의 대우명제이고 논리적으로는 동치이다. 즉, 좌우가 반전되어 있을 뿐 역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이야기 바깥의 우리는 이야기 속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얼굴을 보기위해 거울을 보는 것처럼.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은 찰스 루드위지 도지슨(Charles Ludwidge Dodgeson)의 필명이다. 루이스 캐롤이라는 필명만 다를 뿐 아니라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삶(alter ego)까지 루드위지 도지슨과는 거울 속 이미지처럼 대칭적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 this curious child was very fond of pretending to be two people.」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이름에 따라 이분법적 삶을 살았던 작가가 소설 속 앨리스의 성격을 통해 자신의 성격을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앨리스가 「Who in the world am I?」라는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생각하기에 자아의 일관성(consistent identity)이란 개념은 부족하며, 자아는 사회의 압력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앨리스는 몸의 크기가 커지거나 작아질때, 다른 동물들(인격체들)과의 권력관계 등을 수시로 재정립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자아의 유연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루이스 캐롤은 작가일 뿐만 아니라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그의 창작활동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고 본 부분은 ‘미(美)의식’이다. 당시 19세기 영국에서 소녀는 일종의 신성함-도덕적, 미적, 육체적 완벽-을 나타내는 이상적 모델이었다. 루이스 캐롤은 앨리스를 비롯한 여러 소녀들을 모델로 찍은 사진을 통해 소녀의 ‘자유스러움’과 ‘이상’을 추구했다. 이 부분에 있어 루이스 캐롤이 이상성애자(pedophile)라고 보는 루머가 있는데 나는 이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루이스 캐롤은 소녀가 가진 이상적 특징이 기본적으로 사회적 압력(필요와 욕망)으로 빚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작가는 앨리스와 비둘기(Pigeon)와의 대화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But I’m not a serpent, I tell you!” said Alice. “I’m a─I’m a─” “Well! What are you?” said the Pigeon. … and what does it matter to me whether you’re a little girl or a serpent?」
단지 달걀을 먹었었다는 이유로 비둘기에게 뱀(serpent)으로 오해받고 있는 앨리스는 끝까지 비둘기의 오해를 풀지 못한다. 비둘기의 시선과 생각은 단적으로 소녀는 어떠해야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사회적 기대를 나타낸다. 이러한 압력과 기대는 생각의 자유를 제한하는 프레임으로써 작용한다. 즉, 루이스 캐롤은 사회가 소녀의 순수성을 시험하고, 일방적으로 재단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루이스 캐롤이 역설을 통해 현실 모순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동문학으로 분류되었지만, 이 이야기에 내포된 것은 어른들이 보고싶지 않아하는 부분이다. 100년이나 지난 지금도 소설 속의 A Caucus-race(정치풍자), A mad tea party(시간관념), A court of justice(정의론) 등 많은 부분이 오늘날의 사회, 정치, 문화적 비합리성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 소설을 읽는 내내 놀랍기도 했고,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