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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의 힘 - 세계는 왜 J컬처에 열광하는가
윤상인 외 지음 / 동아시아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일본을 생각할 때 보통 두 가지를 떠올린다. 그 하나는 식민지배를 당한 아픈 기억과 관련해서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을 포착할 때, 일본은 늘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또 최근 독도문제 등과 관련된 한일정치문제도 이러한 스펙트럼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우리에게 가까이 있지만 멀기만 한 나라다.
또 다른 시각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경제적이거나 최근의 한류현상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과는 아주 왕성한 경제교류가 있어왔고, 보아·욘사마와 같은 최근의 한류신드롬은 일본의 젊은이와 여성들에게도 파고들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한국의 문화와 경제도 일본에도 먹힌다는 데에 열광하고 들뜨는 사람이 많다.
이 두 가지가 대부분 한국인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시각이다. 그런데, <일본문화의 힘>에는 또 다른 시각 하나가 더 있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입장에서 일본문화를 바라보는 소위 일본전문가, 일본통, 일본문화마니아들의 일본문화에 대한 입장이다. 그러한 입장과 관점에서 <일본문화의 힘>은 서술이 되었다.
이미 일본문화는 'J컬쳐'라고 하여 서구에선 세계 주류문화의 하나로 자리를 매김했다. 만화, 패션, 건축, 요리, 영화, 문학, 음악 등에서 세계문화계의 흐름을 선도하는 주도적 우세종 문화 중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니폰필"이라고 해 일본문화와 유행을 추종하는 흐름이 청소년층과 젊은이 사이에 하위문화로서 존재하고 있다.
일본문화의 흐름에 대한 부분별 고찰
<일본문화의 힘>은 일본문화를 대표하는 8가지 분야에 대해서 그 부분을 대표할 만한 "일본문화통"이 해당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 여덟 분야는 그래픽디자인,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패션, 하이쿠 그리고 요리이다. 짧게 책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래픽디자인편은 디자인 선진국 일본의 사회문화적 근원을 모색한다. 일본디자인의 본질은 "수용성"과 "편집성"이다. 서구 디자인의 창조적 수용사와 이데올로기 속에서의 갈등과 극복 과정, 동양을 대표하는 문화로 서구에 일본을 알린 그들만의 디자인 전략과 열정, "스타 디자이너"들의 탄생과 전수의 비결을 밝힌다.
둘째, 소설편은 온천만큼이나 문학을 애호하는 문화적 배경, 세계문학으로서의 시민권을 당당히 획득한 일본문학의 힘에 대하여 논한다. 무국적을 지향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마니아층을 형성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특징.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중심"의 사고로서의 일본문학을 설명하고 있다.
셋째, 영화편은 일본 내에서는 "비주류" 문화에 해당하지만 해외에서 찬사를 받는 일본영화의 원동력, 주류를 지향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부하며 끊임없이 실험하는 감독들, 그들 성장의 배경에서 든든한 하부구조와 다양성을 열어주는 문화적 토양, 권위에 맞서는 반항정신을 다루고 있다.
넷째, 애니메이션편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어 대안적 전략으로 부상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성과 5대 천황의 작가주의, 시나리오의 실험성, 다양하고 차별적인 이데올로기의 양산과 비평지대의 확산, 능동적 수용자와 무국적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담론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장르별로 전문화한 만화 시나리오를 통해 "마니아"와 "오타쿠"세대를 창출, 진화시키며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
다섯째, 건축편은 기존 건축방법을 끊임없이 탈피하는 실험과, 전통건축과 서양건축 간의 융화와 극복을 위한 노력을 다룬다. 서양 근대건축을 토착화한 단게 겐조를 정점으로 성장 위주의 건축관을 거부하고 표현의 폭을 확대한 이소자키 아라타, 극도로 절제된 형태를 추구해 일본문화의 단순미를 보여준 안도 다다오, 디지털문명의 유동성을 반영한 이토 도요, 환경의식을 수용한 반 시게루 등,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해온 일본건축가들의 유연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여섯째, 패션편은 서구 패션상품의 생산기지 역할이라는 종속성과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고 세계에 충격을 던진 일본패션계의 권위자들을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서양 의복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차별화한 새로운 공간의 미학을, 색채와 소재, 착장 방법에서 찾는다. 스트리트 패션으로 상징되는 최신 유행의 독특한 이미지를 통해 신세대 "카리스마 디자이너"들의 지향점을 보기도 한다.
일곱째, 하이쿠편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로 서양 근대 영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한 일본전통시가 하이쿠에 대해 다룬다. 일본에는 약 500만 명의 하이쿠 인구가 있다. 하이쿠는 약속된 이미지와 형식으로 창작되며 공동체를 통해서만 향유되는, 그래서 "일본인에게도 어려운" 시이다. 하이쿠를 알면 일본문화의 특성과 일본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다.
여덟째, 요리편은 일본의 대표적 요리를 통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엿본다. 문학작품 속에 나타나는 전통요리들과 서양음식의 도입 배경, 일본 음식문화의 특성과 식사예절을 살핀다. 요리편에서는 나무젓가락과 연관된 환경문제, 일본 가정의 식탁 풍경과 가족 붕괴 현상까지 아우르고 있다.
일본문화에 대해서 빅 에잇에 해당하는 분야만을 다룬 책이지만 <일본문화의 힘>은 볼만 하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 영화, 책, 요리, 패션을 찾아서 보고 읽고 먹고 입어보는 것도 좋은,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함께 읽어 보자고 추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