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스튜어트 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5
제임스 프록터 지음, 손유경 옮김 / 앨피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화의 문제는 단연코 정치적인 문제다"라는 스튜어트 홀의 표현처럼 우리는 문화를 단지 소비되는 것이나 정태적인 현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문화는 계급과 정치가 사상된 장식물이나 소비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는 지극히 정치적인 차원에서 결정되는 문제이며 문화는 대중들과 지배계급간의 투쟁과 중재가 발생하는 지역이다.

튜어트 홀은 영국에서 1950년대부터 문화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호가트,톰슨 등과 함께 버밍험 학파라고도 불리는 연구집단을 형성하기도 하였고, 영국의 개방대학에서 정통의 아카데미즘을 벗어나서 문화와 정치, 인종주의, 정체성, 디아스포라, 민족성 등의 굴직굴직한 테마를 중심으로 집단연구를 주도하고 다양한 성과물을 남겼다.

스튜어트 홀은 책형식으로 출간된 성과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의 연구는 문화는 정치적인 문제라는 그의 언명처럼 현실개입적인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책의 형태로 출간되기 보다는 그때 그때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일종의 워킹페이퍼(working papers)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스튜어트 홀은 자신의 연구가 어떤 학파와 체계적인 틀로 박제되기보다는 현실에 개입한 실천적인 흔적으로 남기를 바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스튜어트 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술들은 이후 묶여서 책으로 출간이 되었고, 그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주도한 영국 버밈엄학파의 핵심 사상가로 많이 알려진다. 국내에서도 신문방송학, 문학, 역사학, 사회학 등을 전공하는 이들 사이에서 홀의 사상은 많이 연구되고 읽혀져 왔다.

이번 제임스 프록터의 <스튜어트 홀 지금>이라는 책은 영국의 루틀리지 출판사의 "크리티컬 띵커스(Critical Thinkers)"씨리즈의 하나로 나온 책을 번역한 것이다. "크리티컬 띵커스(Critical Thinkers)"씨리즈는 주로 유럽과 미주지역의 비판적인 사상가들의 이론체계를 비교적 쉽게 해설한 씨리즈물이다. 지젝,스피박,들뢰즈,데리다,제임슨 등을 소개하고 있고, 스튜어트 홀도 그런 핵심 사상가 중의 하나로 선정되어 권5로 출간되었다.

스튜어트 홀의 투쟁의 장으로서의 문화와 대중

스튜어트 홀은 유럽 지성계에서는 드물게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이다. 그런 그의 인종적 배경은 그의 문화연구가 지향한 방향에서 영향을 미쳤으며 실제로 스튜어트 홀은 1980년대 영국 대처정부하 우익세력들의 파시즘적 인종주의를 예리하게 분석하기도 한다.

스튜어트 홀이 쓰는 문화라는 용어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공유되고, 전승되는 유산,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구성물로서의 문화'와는 다르다. 스튜어트 홀의 문화는 "사회적 행위와 중재가 일어나는 장소"이며,"권력관계들이 안정적으로 확립되어 있기도 하며, 잠재적으로 동요되기도 하는 곳"을 의미한다.

스튜어트 홀의 문화는 당대 신좌파적인 영향하에서 권력투쟁의 장으로서의 의미를 가졌으며, "이론적 논쟁뿐만 아니라 사회정책과 정치개혁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그런데,스튜어트 홀의 문화가 마르크스의 것과 차이를 가지는 점은 문화를 단지 결정론적으로만 취급한 것이 아니라 '절합(節合:articulation)'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사용하여 다소 상대화 시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절합'은 '연결되어 있기는하지만 분리될 수도 있는 관계"를 의미하는 용어로, 문화영역이 투쟁의 장이기는 하지만 경제영역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영역이 아니라 좀더 다층적으로 결정되고, 때론 경제적인 모순과 관계에서 독립되기도 한다는 의미에서 쓰였다. 이런 관점은 정통 맑시즘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운 것으로,교조적이지 않고 상당히 현실적인 문화관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튜어트 홀적인 문화의 정의에서 '대중'에 대한 생각도 유도가 된다. 한편, 스튜어트 홀의 '대중'은 그의 대중문화연구에서도 등장하지만 그 보다는 '인종'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여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스튜어트 홀은 자메이카 출신 흑인종 영국인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스튜어트 홀에게 'mass'로서의 "대중"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스튜어트 홀은 누구?

영국의 사상가 스튜어트 홀은 문화연구의 창시자로 불리는 대표적 문화이론가다. 1960-1970년대 문화연구의 주창자로 부상한 홀은 문화연구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는 1950년대 신좌파 그룹 내부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1980년대에는 대처주의와 인종주의 논쟁을 촉발시켰으며, 1990년대 이후에서는 정체성, 디아스포라, 민족성 등에 관해 발언하며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이미 완결된 이론의 권위를 거부하고 자신의 사상을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이론화 작업에만 관심을 갖고있었기 때문에 단행본 형식의 저서나 선집을 내지 않았다.
스튜어트 홀의 대중은 적어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서 애착과 관심을 가진 대중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튜어트 홀의 '대중'은 노동계급의 청소년이거나, 자신의 뿌리를 인식하는 가진 유색인종, 성정체성을 확보한 동성연애자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이런 방식으로 스튜어트 홀을 읽어 나가고 대중과 문화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제대로 '지금의 스튜어트 홀'을 이해하는 것이다.

국내에 스튜어트 홀은 너무 문화연구 이론가로서만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최근 수년사이 한국사회에 문화에 대한 붐이 일면서 문화이론에 대한 근거를 찾는 과정에서 홀을 유행처럼 연구한 탓이다.

하지만 스튜어트 홀을 자세히 알아보면 그는 오히려 당대 현실정치에 개입한 정치적인 인물이며 순수한 문화주의자는 아니다. 그의 연구 분야도 인종주의, 정체성정치학, 디아스포라, 민족성, 대처리즘 등 다른 분야에서 진면목을 볼 수 있고, 그 연구들마저 현실과 철저한 유기적 긴밀함을 확보하고 있다. 제임스 프록터의 <스튜어트 홀 지금>은 그런 점에서 스튜어트 홀과 그의 사상 전반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는 좋은 지침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님 웨일즈의 <아리랑>은 1984년 동녘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그러나, 22년이 된 오늘날까지도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읽힌다. 요즘은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도 많이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1989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해금되었지만 경찰에게 '불검'(불심검문)이라도 당하면 파출소로 임의동행하게끔 만드는 책이었다. <아리랑>은 금서 아닌 금서였다.

내가 <아리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9년도 대학 1학년 때인 것 같다. '김산'이라는 전설적인 혁명가와 그에 대한 글을 쓴 여기자 님 웨일즈는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리랑>에는 무언가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인간들 사이의 보편적인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가 역사의 스펙터클을 배경으로 실명으로 전개될 것 같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1989년은 복잡다단한 해였다. 그 해 가을쯤 동구공산권의 붕괴가 시작되었지만, 학교 캠퍼스에서는 여름 내내 통일축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운동장 곳곳에 축전을 위한 댄스를 연습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학원자율화가 진행된 강의실에서는 민주강좌라고 부를만한 강의들이 개설되었다. 아마 그 강의 중 하나를 수강하면서 <아리랑>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아리랑>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난 두말없이 내던져버렸다. 책 마디마디에 스며있는 항일구국의 열정과 국경을 초월한 우정의 밀도는 그때 내 관심권 밖이었다.

그때는 김산도, 항일구국투쟁도, 성을 넘어선 우정도 고등학교 내내 받아온 제도권 교육의 한계 내에서만 흡수된 듯했다(물론 그 이상이며 책은 의식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준다). 신비로운 혁명가의 일대기치고는 박진감도, 낭만성도, 극적 긴장도 없었다. 그냥 다큐멘터리를 찍어 나가듯 차분하게 진술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 읽지도 않은 책을 누군가에게 줘 버린 것 같다. 그리고는 뭔가 찜찜함과 아까움이 남았다.

군대에 다녀온 후 한 친구에게서 뜻밖에 <아리랑>을 얻었다. 그 친구는 적당한 이유를 댔지만 난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아리랑>을 내게 왜 주었는지 그 심층적인 이유가 궁금했다.그래서 그 이후로도 그런 기억들을 자주 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졸업하고 모 영화사의 잘 나가는 프로듀서가 되었다. 서정성 짙은 연애영화와 한국적 멜로영화를 제작하는데, 학교 다닐 때의 정신을 아직도 보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 보인다.

친구에게서 받은 <아리랑> 사이에는 편지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 내게 쓴 것은 아니고 잘못 전달된 편지였다. 그 친구에게 어떤 의미의 편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하필 내게 다시 돌아온 <아리랑>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우연히 끼워져 있던 편지는 돌려주고 <아리랑>은 돌려주지 않았다.

그 후에 재미없는 이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아니지만 <아리랑>은 내 책장 제일 깊숙한 곳에 꽂혀있다. 친구와의 소중한 우정을 기억하면서. 그리고 <아리랑>이 내게 다시 찾아온 또 다른 의미를 한 번씩 되새기며.

김산은 중국공산당에 소속되었던 항일혁명가지만 그의 최후는 조금 황망하다. 김산은 일제스파이로 몰려 처형당하였고, 1983년이 되어서야 복권과 명예회복이 되었다고 한다. <아리랑>과 김산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1990년대는 물론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를 생각한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처참하게 짓이겨진 사람들, 불꽃같이 타올랐다가 재가 된 사람들을.

"불화살처럼 살다갔다"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은 <아리랑>의 광고 문구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 표현을 보면서 왜 불꽃이 아니라 불화살이라고 했을까 생각했다. 아마 단어의 뉘앙스 때문에 불꽃 대신 불화살을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지도 못했지만 <아리랑>은 내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리랑>이 내 삶에서 인도서나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책 한 권이 인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단지 어떤 막연한 동경이 날 사로잡았다. 확 태워버리는 불의 이미지가 많이 남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내게 책을 준 친구는 <아리랑>을 건네주면서 좀 더 용감하게 살기를 권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인생에는 암시와 메타포가 풍부한 순간들과 물건들이 있고, <아리랑>을 얻은 여름 저녁과 <아리랑>사이에 낀 편지 한 장이 그때 그 장소의 그 물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하여튼 님 웨일즈와 김산의, 작가와 대상을 넘어선 교류는 내게 지금껏 여러 가지를 환기시켜줬다.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 만난 친구들과 한 권의 책, 한 장의 편지를 둘러싸고 내가 느꼈던 일들은 내 인생을 지금껏 고양시키고 있고, <아리랑>은 내 90년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지금도 내 책장 귀퉁이에는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아리랑>이 있다. 책장 정리한지가 오래된 만큼 먼지 두께도 상당하다. 세월이 그 한 권에 무척 많이 쌓였다. 내 기억의 90년대는 아주 빛났고, <아리랑>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어느 젊은이의 앞날을 비추는 등불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전태일과 평전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 저자이신 고 조영래 변호사와 때론 무의식적으로 동일시가 되는 것 같다. 조 변호사는 전태일의 죽음에 지식인으로서의 의무감과 같은 것을 짊어지고 <전태일 평전>을 썼다지만, 오히려 조 변호사는 전태일이 뿌린 씨앗에서 자라난 나무였다는 생각이 든다. 조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서, 한겨레 필진으로서 남긴 업적들이 그것들을 보여준다.

얼마 전 조 변호사의 서울대 동문이 <조영래 평전>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써서 많은 이들의 반감을 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러서 감히 반노동적이거나 보수우익적인 입장의 사람들도 조영래와 전태일을 거론한다.

과연 그들은 전태일의 분신과 조영래 변호사의 활동들의 의미를 진심으로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자기 밭에 물대기 식으로 80∼90년대를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했다.

난 대학에 다니면서 <전태일 평전>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독후감도 두 번 썼다. 공교롭게도 대학시절 교양강좌의 과제도서가 두 번이나 <전태일 평전>인 탓에 그렇게 되었다.

만일 '전태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전태일 평전>의 많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신으로 기억에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있다고 대답하겠다.

90년대 박광수 감독과 홍경인, 문성근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지만, 7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낸 선배들에게는 더 강하게 각인이 되어있는 것 같다.

전태일이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평화시장의 어느 골목에서 노동법 책자와 함께 분신한 사건은 당시에도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언론사에 대한 보도통제가 심한 시절인데도 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노동청에서 청계천의 평화시장, 청계피복노조 등에 대한 노동실태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나마 모양을 갖춘 노동실태조사는 그게 처음이라고 한다.

전태일의 분신은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분신투쟁의 효시가 되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그 이후에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수없이 많은 분신투쟁들이 있었다. 특히 1991년 노태우 정권에 대한 민중 투쟁 때는 김지하 시인의 <조선일보> 기고가 있기까지 몇 개월 사이에 십여 건의 분신투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에 보수언론들은 인간이 목숨을 내놓고 하는 투쟁에 대해서 온갖 비난과 매도, 흑선 선전을 하면서 독재정권의 프로파간다 도구로서의 역할을 십분 발휘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탯줄에서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철저히 자신의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바친 그들의 분신투쟁은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들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처음 가졌던 소감은 책이 조금 몽롱하고 애잔하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조영래 변호사는 '도바리(도망을 뜻하는 은어)' 중인 대학생 신분으로 자료에 입각해서 <전태일 평전>을 썼지만, 당시의 슬픈 자신의 처지가 투사되지는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전태일 평전>은 동료 노동자들과 누이뻘 되는 여공들에 대한 애정, 차비가 없어 일을 마치고 집까지 그 먼 길을 걸어가는 고단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에 획을 그은 영웅으로서의 청년 전태일은 어떤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 당시에 <소금장수> 같은 북한영화가 캠퍼스에서 상영되었는데, 그런 영향 탓인지 그런 묘사들은 너무 나약해 보였다. 대개 북한 영화와 소설에서 이런 경우는 영웅으로 묘사가 된다. 인간의 힘들고 나약함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꼭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겨우 월드컵 대표선수, 대기업 CEO들이 영웅으로 부각이 된다. 얼마 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이 국난극복의 상징으로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난 이런 세태가 불만스럽다. 언제까지 자본주의의 첨병인 프로운동선수, 기업총수가 영웅이 되고 위인전에서 영웅을 찾아야 할까?

다가오는 주말에는 청계천 어디에 있다는 전태일 흉상을 한 번 찾아 봐야겠다. 시너를 붓고 성냥불을 그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 번 말을 걸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국의 꿈 - 작전 911
게르하르트 비스네프스키 지음, 박진곤 옮김 / 달과소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펜타곤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주도한 테러사태가 과연 발생하였는가?

<제국의 꿈 작전 911>의 저자 게르하르트 비스네프스키는 전 세계인이 TV로 지켜본 이 사건에 대해서 테러사건이 아니라고 적고 있다. 오히려 미국 측의 자해테러이자 조작사건이라고 하며 그 논거와 증거를 치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1960년대 미 군부가 대 쿠바 전면전 도발을 위한 대통령 설득용으로 극비리에 입안했던 '노스우즈 작전'의 적용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이 작전은 비행기 바꿔치기를 통한 자작 테러 작전이다.

저자는 미 제국의 자작 테러 전력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베트남전 확전으로 이어진 1964년의 통킹만 사건, 1898년 미국의 대스페인 선전포고의 발판이 된 전함 메인호 폭파 조작사건 등. 특히 메인호 폭파 조작사건은 90년이 지나서야 진상이 밝혀졌다는 점을 들어 아마 지금부터 100년 정도 지나서 사건 관련자들이 다 사망한 후에야 9·11의 진실이 밝혀지리라고 말한다.

<제국의 꿈 작전 911>에서는 기존의 미 정부와 팬다콘, 정부측 프로파간다 언론의 발표 등을 전적으로 반박하면서 작전 9·11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완전히 다시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존의 발표와 사실이라고 알려진 것들은 완벽하게 반박을 당하고 있다.

#1. 세계무역센터, 내부 폭발로 붕괴

세계무역센터는 공식적으로는 알 카에다가 통제하는 아메리칸 항공 소속 AA11편과 UA175편이 충돌해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장면은 당시 미국의 프리랜서 촬영가에 의해서 찍혀 이후의 사건 진행과정(빌딩의 붕괴과정)과 더불어 전세계에 이것이 진실이라고 마치 세뇌하듯 방송됐다.

하지만 쌍둥이 빌딩 설계 책임자 리 로버트슨의 증언에 따르면 "세계무역센터는 보잉707기와 같은 비행기 충돌에 대비해 설계됐으며, 허리케인의 충격에도 끄떡없게끔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충돌 여객기의 연료 폭발로 빌딩들의 골격이 녹아내렸다는 붕괴원인에 대한 공식발표도 관련 화재전문가들에 의해 반박되고 있는 실정이다.

비스네프스키 주장의 핵심은 여객기가 쌍둥이 빌딩에 충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여객기는 도중에 바꿔치기 된 무선통제비행기였고, 실제 쌍둥이 빌딩의 붕괴 원인은 폭파전문가에 의해서 설치된 건물내 폭약 폭발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해서는 시민들과 소방관들이 관련 증언이 남아있으나 미 정부와 프로파간다 언론의 발표에서는 깡그리 무시된다.

▲ 붕괴하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 내부에서의 폭파가 직접원인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 Dylan Avery
#2. 펜타곤은 크루즈 미사일에 공격 당했다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아메리칸 항공 AA77편이 펜타곤에 부딪히는 자살테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증거는 폭발이 다른 원인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폭파현장을 찍은 감시카메라의 사진에 나온 비행체는 여객기가 아닌 것으로 판독됐다. EH 파괴의 현장은 여객기가 충돌한 것치고는 규모가 너무 협소하며 펜타곤 뒷마당은 보통의 비행기 사고 현장과는 달리 비행기의 불시착 자국이나 파편, 잔해는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그을음조차도 없다.

사건 현장에 시신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시체는 폭발의 화염으로 거의 완전연소 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정부의 발표는 별로 신빙성이 없는 주장이라는 게 비스네프스키의 견해다.

법의학에서도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는 판정을 보류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인데 미 정부는 초반부터 사건의 원인을 테러와 여객기충돌로 밀어붙인 흔적이 수두룩하다. 9·11사태와 관련하여 일종의 여론조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스네프스키가 감시카메라의 사진을 판독하고 사건 현장을 연구하여 내린 결론은 크루즈급 미사일이 펜타콘의 비어있는 건물에 명중했다는 것이다. 펜타곤의 여러 건물 중 하필이면 빈 건물에 부딪혔다는 것도 조작의 가능성을 방증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여객기를 본 목격자는 펜타곤 측 증인을 제외하고는 없다. 목격자체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비스네프스키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저공비행을 한 전투기가 펜타곤 청사를 향하여 크루즈미사일을 발사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AA77여객기에 대해서는 중도에 공중폭발하거나 바꿔치기 되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3. 생스빌에 추락한 것은 여객기가 아니다

▲ 미 펜타곤의 진화현장. 과연 여객기 였을까? 증거는 오히려 크루즈미사일과 전투기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 Dylan Avery
당시 사건발표에 따르면, 생스빌에는 용감한 미국인 승객들에 의해 테러가 좌절된 UA93편이 중간에 추락했다고 한다. 당시의 UA93내의 상황은 테러리스트들이 승객들에게 가족들과의 무선전화를 허락해 알려졌다고 하는데, 정확한 정황을 살펴보면 조작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생스빌의 추락현장도 여객기 추락현장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고 시신의 양도 적아서 역시 조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장 근처에서 여객기를 목격한 증인은 전혀 없고 오히려 전투기 정도의 비행기를 봤다는 목격자만 있다.

비스네프스키의 결론에 따르면 그 비행물체와 추락흔적이 보여주는 것은 전폭기 한 대가 날아와서 폭탄을 투하해서 현장에 인위적으로 추락흔적을 만들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와서 역시 현장에 시체조각들을 뿌리고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조한 시체들은 규모가 그렇게 적을 수밖에 없다.

이상 세 군데 사건 현장을 중심으로 9·11의 진실에 대한 <제국의 꿈 작전 911> 에서의 비스네프스키의 견해를 요약하였다. 책의 내용 중에는 그 밖의 논거와 근거, 사건의 진행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부시집안에 대한 덜 알려진 사실들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군부의 정치군사공작의 추한 역사도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주요 저널리즘(저자는 프로파간다라고 표현을 한다)은 정부가 짜맞춘 주장만 되풀이하고 그것을 보강하는 자료들만 제시한다. 그리고 책에는 매수되거나 협박받는 반대자와 목격자의 일화도 등장한다.

미국의 주류매체와 FOX-TV 같은 우익매체는 아직도 세계무역센터 붕괴장면과 피해유가족이라고 보도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방송하고 있다. 비스네프스키를 비롯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신통한 반론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오직 중요 정보와 증거를 국가안보를 이유로 비밀로 묶어두기에 여념이 없을 뿐이다.

오히려 테러리스트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 소속의 언론을 탄 바로 그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수사를 담당한 FBI의 공식발표도 불확정적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중동에서는 2차 이라크전이 발발하고 이라크와 이슬람권은 미제국주의의 침략에 쑥대밭이 되었다.

진실을 숨기고 팽창을 거듭하는 제국주의적 정권은 국내적으로나 전세계민에게나 모두 위험한 존재이다. 평화와 민주주의의 적은 우리가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라고 믿는 내부에 숨어 있다. 그들이 바로 작전 9·11을 감행한 제국주의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조지 레이코프는 노암 촘스키의 수제자로서 지금은 인지언어학계에서 고유의 영역을 구축한 학자이자 정치컨설턴트이다.조지 레이코프는 노암 촘스키처럼 언어학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현실정치에 관여를 하여서 민주당 열혈지지자이기도 하다.그런 그가 2000년 대통령 선거패배,2003년 켈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패배 등을 배경으로 쓴 책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소개되는 것은 소위 "프레임이론"이라고 일컬어 지는 것이다. 프레임이론이란 생각의 틀과 관련되는 이론이다.예를 들면 우리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않기로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코끼리라는 것이다.이러한 효과를 정치현장에 응용을 하면 의제와 의제의 언어적 표현의 선점효과을 언급할 수 있다.

미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입성한 후에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지금 현재의 세제상 국민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이 너무 많고 그런 세금정책을 개선하는 사람(부시자신)은 영웅이라는 사고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그러나 세제의 개혁이 사회복지의 축소라는 효과를 가져오리라는 것은 가려진 채 이 구호는 국민들에게 대단히 어필을 하였고 심지어 민주당 의원과 당원들까지 공공연하게 이 구호를 사용했다.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공화당의 "코끼리"를 무부분별하게 홍보해 주는 결과만을 가져온다.그것보다는 선명한 민주당의 주장을 담을 수 있는 정치아젠다와 그것의 언어적 표현을 개발하여 맞불을 놓아야 한다.

비슷한 사례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세금폭탄"이라는 표현을 줄기차게 사용하였다.정치적 공세로 볼 사안에 대해서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는 수세적으로 질질 끌려가면서 "세금폭탄"이 아님을 해명하는 데에 급급했다.상대의 "코끼리"는 절대 연상하지 않도록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상대의 "코끼리"에 질질 끌려다닌 사례다.

반대가 되는 사례도 있다. 우리사회의 사회,경제 담론에서 양극화 확대와 양극화의 해소는 중요한 의제이다. 그런데 양극화라는 담론은 한국사회의 계층적,계급적 불평등을 일정정도 폭로하는 진보적인 의제이기도 하다.

역자의 해설에 의하면 연전에 중앙일보의 기획기사에서는 이 의제를 교묘하게 중산층의 붕괴로 치환을 했다는 것이다. 양극화의 확대와 중산층의 붕괴는 내용상 대동소이해 보일 수 있지만 전자는 우리사회의 계층,계급적 불평등을 폭로하고, 후자는 현정부의 실정에 대한 정치공세적 측면을 가진다는 점에서 다른 의미망을 가진다.

중앙일보는 보수언론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상대의 "코끼리"를 피해가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언어와 의미론적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6,70년대 반전운동과 더불어 보수주의적 세력이 코너에 몰리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자 주요 씽크탱크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역전의 기회를 집요하게 준비했다고 한다.그 결과가 레이건 집권,부시 집권을 가져오게 한 보수주의적 지식인집단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군부독재를 거치면서 도덕적으로 코너에 몰린 한국의 보수주의적 정치집단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두 번이나 정권을 내어준다.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긴밀하게 연합하고 협력하여 내놓은 결과물이 최근의 지방자치제 선거에서의 한나라당의 압승이며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높은 집권 가능성이다.

흔히들 보수주의 세력은 서로를 싫어하거나 경쟁의 상대로 생각하여 협력이 안된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보세력의 지적,도덕덕 오만이다. 보수주의 집단도 목표를 정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연합하며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그들 역시 아주 우수한 지식인 집단을 보유하고 있어서 프로파겐다와 사회적 의제,담론들을 훌륭하게 생산한다.한나라당의 외곽단체가 그렇고,조중동문의 보수언론이 그렇고,뉴라이트운동진영이 그렇다.보수세력을 우습게 알아서는 안된다.

지금 미국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압승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노동자와 서민은 자신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에 압도적인 표를 몰아 주었다. 그런 결과는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선거운동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의 "코끼리"를 열심히 쫓아간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조지 레이코프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를 예로 들면서 선거결과를 특이한 방식으로 해석을 한다. 이 선거는 기존의 민주당 소속 주지사를 공화당 후보 아놀드 슈와츠제네거가 이긴 선거인데 캘리포니아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민주당 대신에 공화당에 투표한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대해서 조지 레이코프는 유권자는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을 찍는 대신에 자신의 정체성이 투사되는 후보를 찍는다고 평가한다.즉 아놀드 슈와츠제네거 후보가 미국적인 가치와 다분히 미국적인 엄격한 아버지상을 제시하여 유권자들의 정체성과 부합하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민주당의 현 주지사는 나약하고 부패하다는 인상을 깨지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선거기간 내내 공화당의 "코끼리"나 쫓는 민주당 선거진영의 실수도 한 몫을 거들었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이론"을 통한 기존 선거결과의 해석이나 향후 선거와 정치운동에서의 방법론 제시는 폭이 넓다. 2002년 대성에서 이회창은 노무현의 "코끼리"를 쫓으면서 지리멸렬했었고,반면 현재의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정치공세(코끼리)를 부인하고 수습하느라 전전긍긍이다.진보정당인 민노당은 국민들을 이끌어 낼만한 "코끼리"를 개발하지 못하여 그많은 노동자와 농민,서민의 표를 다 놓치고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당시의 미국내 선거결과와 민주당원의 패배감에 편승하여 복음서처럼 행세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그리고 지나치게 선거를 정치구호와 수사학으로 협소하게 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하지만 정치와 선거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정도 읽어보고 생각하여 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