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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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반동(返動)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芬流)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는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직선적이지도 않다"

   서경식의 책은 미술작품과 그 역사적 배경들이 잘 조화되어 있다. 이 책도 그렇다. 그가 1980년대에 떠났던 유럽여행을 배경으로 유럽의 미술관, 수도원에서 접한 미술작품과 거기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들을 반동세력에 대항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이라는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주장을 담고있거나 고리타분한 미술사 서적은 아니다. 아주 얇은 두께에 차분하고 유려한 문체로 저자의 생각과 고민(개인적 고민을 포함)들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해 나간 책이다.

1808년 5월 3일, 쁘린씨베 삐오 언덕의 총살 (고야)

   역사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어제의 고민이 오늘에도 반복되고, 반동(返動)과의 투쟁은 오늘날에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역사는 더욱 더 현재진행형인 것 같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는 역사적 반동세력에 관한 해설이 많이 등장한다. 스페인 민중의 저항을 탄압하는 나폴레옹군, 수십년간 집권했지만 암살도 저항도 아닌 자연사를 한 프랑코 총통, 사회 진보를 억누르는 카톨릭과 로마교황청, 2차대전의 군국주의 일본화가 등. 역사는 반드시 진보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고난과 피를 먹고 진행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그러한 희생과 인고가 없다면 역사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의 후퇴는 뒤로 팽팽하게 당긴 용수철과 같은 것이다. 

헤럴드 다비드의 "캄비세스왕의 재판"

   " 캄비세스왕은 기원전 6세기의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전제군주다. 형벌의 희생자는 시삼네스 판사다. 당시 재판관이었던 시삼네스가 평결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캄비세스가 생피박리형을 내린 것이다.제랄드 다비드가 그린 이그림은 1498년에 브뤼쥬시 청사의 참사회실에 걸 목적으로 그려졌다. 모든 판사와 시참사들에게 타락과 부패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도록 하는 뜻이 담기어져 있다고 한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첫 장에 등장하는 이 그림은 사실(寫實)적인 묘사라는 측면에서도 뛰어나지만 어떻게 보면 대단히 엽기적인 것 같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책 전체에 걸쳐 고문과 책형에 관한 잔인한 그림이 많이 나온다는 점도 인상적인데 중세라는 공간은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참으로 잔인한 방법을 다양하게도 사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인상적이였던 두 장 정도만 나름대로 적어보았다. 그 외에도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회화와 해설, 저자의 짧은 단상들이 기록되어 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으며 덥고 축축한 여름날씨에 그늘 아래에서 회화와 역사에 관한 사색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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