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과 정치 정신분석과 미학총서 3
야니 스타브라카키스 지음, 이병주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라캉은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실, <라캉과 정치>라는 책은 라캉 본인의 정치관이나 정치철학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책의 저자인 야니 스타브라카키스가 라캉의 이론과 철학을 정치라는 주제로 절합(節合, 분절적 절합의 줄임말)한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이 라캉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야니 스타브라카키스의 생각 혹은, 해석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라캉의 경우 직접적인 정치 행동이나 언술의 기록은 많지 않은 편이다. 일정 정도는 현실정치나 정치이론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학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에 남아있는 그의 중요한 정치적 언술은 프랑스의 68봉기 당시 학생들에 대해서 미약하나마 지지를 표명하였고 그 덕분에 '반동'학자로 몰리지 않고 연구를 무사히 했다는 정도이다.

어쨌든 누군가의 학문은 그의 사후에라도 재해석이 되고 때론 그 전에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기도 했던 맥락에서 해석되고 절합되기도 한다. 야니 스타브라카키스의 <라캉과 정치>도 그 정도에서 이해되면 좋은 책일 것 같다.

저자 야니 스타브라카키스는 아테네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에식스 대학의 이데올로기와 담론분석 프로그램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에식스 대학과 노팅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라캉과 정치(Lacan and the political)>을 비롯하여, 담론이론과 정치분석(Discourse Theory and Political Analysis)>과 <라캉과 과학(Lacan and Science)>을 공저하였다.

또한 저널 UMBR(a)에 지젝의 라캉 해석과는 대립되는 논쟁적인 글인 <안티고네라는 미끼: 정치적인 것의 윤리의 아포리아(The Lure of Antigone: Aporia of Ethics of the Political)>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현재 라클라우와 무페의 저작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담론이론을 연구하고 있으며, 사회 이론과 정치분석에 대해서 프로이드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갖고 있는 적합성을 탐구하고 있다. 또한 녹색 이데올로기 담론의 발전과 구조, 역사, 그리고 그리스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기실, 라캉의 은사격인 프로이트의 저작이나 이론은 사회학적이거나 정치학적으로 이해되고 해석되고 절합된 것이 많다. 많은 좌파이론에서 프로이트의 이론들은 자신들의 이론의 폭을 넓히는 사유로 이해되었고 원용되었다. 프로이트의 원전 중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문명과 사회에 대해서 다룬 책이 있기도 하다. 라캉의 상황도 비슷하다.

라캉은 프레드릭 제임슨 등에 의해서 '정치적 무의식'을 탐구하는 탐침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라캉과 정치>에서 야니 스타브라카키스는 라캉을 바로 '정치적인 것'과 연결을 시키고 있는 듯하다. 스로베니아학파라고 불리는 지젝도 라캉을 '정치적인 것'들과 연결을 시켰고, 해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야니 스타브라카키스는 <라캉과 정치>에서 급진적 민주주의의 토대는 정신분석학의 윤리 속에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라캉과 정치>의 그 많고 많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개인적 소감은 라캉의 '정치적인 것'과 야니 스타브라카키스의 주장들도 퍽이나 공허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류의 책을 그야말로 담론의 하나로 독해를 하고, 서양철학, 서양사의 한 종류로 독해를 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퍽이나 크지만 현실에 대한 울림은 별로 크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독서(이론) 따로 실천 따로이다. 어떻게 보면 <라캉과 정치>도 쁘띠나 지식인들의 지적유희의 하나에 그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회의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다잡고, 도움이 되는 '책 선택"과 '읽기' 에는 계속 매진할 생각이다. 적어도 나의 독서가 건전한 회의를 가져다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이다. 회의도 하지 않는다면 살면서 브레이크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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