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 사회지능 - 성공 마인드의 혁명적 전환
다니엘 골먼 지음, 장석훈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인간은 노동과 생산의 주체로 떠올랐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인간의 '지력'이 최우선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지력'이 뛰어난 인간이 더 질적으로 우수한 노동을 제공할 수 있고, 생산의 과정에서도 보다 지배적이거나 통제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이런 인간들을 선발하기 위한 측정과 평가의 잣대가 요구되었다. 이런 이유로 등장한 것이 IQ다. 물론 거기에는 사회과학자들의 인간의 능력에 대한 사적이며 현학적 관심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IQ를 통한 인간 능력의 측정은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인간을 너무 도구적으로 대한다거나 인간의 이지적이거나 이성적인 능력만을 과도하게 우위로 놓는 점이 그 병폐였다. 그리고, 잠재적인 문제점으로 인간에게 단지 지능만을 매개로 우열을 평가한다거나, 결과적으로 자신의 능력만을 과신하는 '이기적 인간'을 주조해 내는 것 등이다.

그런 반작용인지 한 때 EQ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인간의 감성적,감정적 능력을 한 번 평가하여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 중심의 사고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도 있었던 EQ에 대한 관심도 모순점을 드러낸다. 과연 인간의 감성적 능력이라는 것이 평가가 가능한 것이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었고, 인간의 감성적 능력이라는 것은 지능과는 달리 상대적이고 동적인 표현이라는 회의도 일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EQ는 한 때의 유행으로 소멸되어 갔으며 인간 능력 측정의 패러다임에서는 여전히 지능중심의 IQ측정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성장기의 청소년이나 청년층을 대상으로 관례적으로라도 IQ측정을 하며, 입사 등 사회적 관문의 통과에서 여러가지 이름의 변형된 형태의 IQ측정을 한다.

그런데 대니엘 골먼은 < SQ사회지능 >이라는 책을 쓰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몇 가지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일정한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첫째, 인간은 사회속에 외롭게 섬처럼 고립된 존재가 아니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여러사람들과 소통을 하는 존재이므로, 마치 '성적표'처럼 IQ평가치를 부여받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우수한 IQ결과를 가지고 있어도 사회적 소통에 실패하면서 사회에서 낙오하거나 버림받는 결과를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녀를 단순히 IQ나 EQ가 우수한 '인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소통'가능하고 '협조'가능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둘째, 인간의 '사회지능'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질적 요인이거나 사회적 상호작용의 영향만이 아니라 '뇌'라는 물질적 존재근거를 갖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행동공학적 측면상 감성적이거나 순간적 판단과 관련있는 "로로드"는 뇌의 "편도"와 관계되어 있고, 인간의 이성적인 판단, 지성적 사고, 지속적인 사고를 의미하는 "하이로드"는 뇌의 또다른 특정부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탄생이후 학습하는 사회에서의 영향이나 상호작용의 결과만으로 돌리지 않고 "뇌"의 학습작용과도 새롭게 연관을 시킨 것은 의미가 크다.

그러나. 다니엘 골먼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지능이라는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거나 하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사회지능은 사회에서 겪는 일들의 영향을 받는다. 단지, 그 의미는 마치 바닷가의 바위에 특정한 패턴이 새겨지기 위해서는 바닷물의 썰물과 밀물이 필요하지만, 바위 그 자체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 흔히 사회적 영향과 학습의 결과로만 치부될 수 있는 "사회지능"의 의미에 "뇌"와, "뇌"의 여러 부위의 기능이 물리적으로 작용함을 여러가지 문헌을 통해서 증명하고 있다.

셋째, 다니엘 골먼은 소위 "이기적인 인간"이 설 자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즉, 우수한 능력을 가진 우수한 인간을 목표로 하는 서구사회의 도구적 인간관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 여러가지 사례를 들면서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이타적인 인간"의 우월성을 논하고 있다. 어렵고 슬픈 사람에게 동정의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불의를 보면서 노여워 할 수 있는 인간들이 모인 사회가, 유능하나 이기적인 인간들만으로 구성된 사회보다 낫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타성"이라는 것은 원숭이나 쥐와 같은 동물들도 공유하는 태도라는 것을 동물실험 결과를 통해서 보여준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우선 "이타성"이라는 것이 "이기성"이라는 것 못지 않게 종의 원초적 본능이라는 것이며, 둘째로 인간보다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는 동물들(적어도 포유류)에게도 이타성,동지애,공감능력,정서 등 인간에게만 있다고 믿어지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유래하는 인간중심주의와 인간종의 절대적 우월성의 근거를 흔드는 사례는 그 밖에도 여럿 존재한다.

넷째, 인간의 "사회지능"을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개발할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대니얼 골먼은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어둠의 세 유형"이라고 부르는 사회적 부적응형 인간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둠의 세 유형"이란 "나르시스형,마키아벨리형,사이코패스(psychopath)형"인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세 인간형 공히 타인에게 해를 입히거나 입힐 수 있는 현대사회의 병리적 인간형이다.

현대사회는 그 문화적 경제적 구조상 필연적으로 "어둠의 세 유형"을 계속 더 많이 만들어낸다. 인간의 "사회지능"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현 사회의 교육 패러다임을 다시 짜서 그러한 현상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만연한 "악플러"현상에서도 비춰볼 수 있듯이 사회전체적으로 공격적이며 타인의 괴로움에 둔한 인간형이 너무 많이 발현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사회가 성장위주의 사회발전모델을 가속화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의 여러가지 사례와 연구결과를 통해서 보여준 사실들이 그런 현상의 해결을 위한 한 방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다보면 대니얼 골먼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타인과 "공감"할 수 있고, "감정이입"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소통가능하고 타인의 이해를 위해서도 협력이 가능한 인간형을 대니얼 골먼은 꿈꾸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대니얼 골먼의 꿈은 서구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사회적 병리현상을 가진 한국사회에서도 유효하다.

"사회지능"이 뛰어난 인간이 더욱 많아지고, 그들이 개인적 능력과 실력에서 뛰어난 인간들과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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