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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평점 :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마치 내 얘기 같아서
자꾸만 멈칫하게 된다.
살아온 환경도, 시대도,
가치관도 다르지만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힘겹게
동시대를 살아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왠지 공감이 가고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아무리 시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여권신장이니 페미니 떠들어대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가부장제라는 그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 챙겨주고픈 구닥다리 모성관의 소유자이자,
일상을 전면 중지하고 홀연한 떠남을 꿈꾸는 몽상가이자,
밥벌이용 글을 써야 하는 문필하청업자이며,
사람 만나 이야기하고 소소한 행복을
글로 쓰기 좋아하는 데이트 생활자인 나. (9쪽)
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지는 건지
제목의 의미를 게속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특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전 대통령을 비난하던 논리에 대해
공감이 가고도 남았다.
한 사람의 지적, 정서적 무능이 출산 경험의 부재에서 왔다는 발상.
그건 애 낳지 않은 여자들에 대한 집단적 모독이고,
애 낳은 여자들에 대한 편의적 망상이다.
(30~31쪽)
한쪽의 수고로 한 쪽이 편의를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다.(46쪽)
모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또한 공감이 갔다.
'남들처럼 평범하게'가 이 땅의 엄마들에게는 소박한 바람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광고에 나오는 가족의 판타지를 버리지 못하는 한,
엄마의 자리에서는 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95쪽)
자식만 바라보고 살다가
자식의 배신으로 힘들어하며
마지막까지 자식에 대한 걱정을 놓지 못하는
대한민국 모성의 힘 혹은 집착.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여성에겐 당연함 혹은 미덕으로,
남성에겐 특별함으로
대우받는 사회.
존재에 대한 작가의 시선 또한
마음을 끌었다.
생의 시기마다 필요한 옷이 있고 어울리는
색과 취향이 있듯이
삶의 체형에 맞게 인연도 변해간다. (130쪽)
사랑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라는 작가의 말 또한 공감이 간다.
꽃이 피면 지는 날이 있듯이 사랑도, 젊음도 화려하게 꽃피다 조용히 지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두렵다고 꽃봉오리인채로 남는다면
힘들게 태어난 자신의 존재가 가엾지 않을까.
머뭇거리는 생이여,
늦었다고 생각할 때
재빨리 악행을 저질러라.
위의 글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진짜 악행을 저지르라는 말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부딪쳐보라는 의미인 것 같다.
혼자만 무언가를 위해 싸우거나 희생한다고 여겨질 때,
인생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질 때
천천히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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