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관계를 읽는 시간 -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 심리학
문요한 지음 / 더퀘스트 / 2018년 10월
평점 :
그동안 읽었던 심리학 또는 자기개발서랑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천천히 책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선 분량이 많아서 시간 안에 읽고 소화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장별로 논리정연하면서도 다양한 사례로 알기 쉽게 풀어낸 저자 덕분에
책장은 생각보다 빨리 넘어갔다.
이 책은 프롤로그의 소제목 ‘아이의 관계에서 어른의 관계로’처럼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수많은 관계의 딜레마에 대해 상황별 또는 성향별로 분류한 뒤 거기에 맞는 대안을 현실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2장 왜 상처는 가까운 사람이 줄까?
상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전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인간관계의 본질이다. (31쪽)
흔히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 준다’라는 말이 있다. 심리적으로 거리가 있으면 크게 상처받거나 서운할 일도 없다.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본인은 마음에 담아두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을 때가 많다. 어릴 적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혼자 끙끙대거나 울분을 참을 때가 많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상처에 면역에 생겼는지 웬만한 일에는 상처받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챙기는 사람들 앞에선 저절로 분노가 일어난다.
겉으로 강하고 차가워 보이는 사람일수록 여린 내면을 가진 경우가 많다. 사람들 앞에서 늘 밝게 웃던 사람이 알고 보니 우울증을 앓고 있다거나,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이 어느 날 말도 없이 사라지거나 자살을 하는 등 겉보기와는 다른 내면을 가진 게 인간의 본성이다. 나 역시 내 안의 상처와 분노를 감추기 위해 항상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다가오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사람 사이 대부분 갈등은 바운더리가 모호해질 때이다. 바운더리, 즉 경계는 인간관계에서도 꼭 필요하다. 가령, 회사에서 상사가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업무 이외의 일을 맡긴다면 바운더리를 침해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가족 사이에서도 바운더리는 종종 무너진다. 어릴 적에 엄마 대신 집안일을 도맡아 했던 난 어느 날 문득 ‘왜 나만 동생들 대신 집안일을 해야만 하지?’라는 의문과 함께 반항심이 들었다. 엄마로선 동생들을 돌보는 것 역시 장녀의 역할이라 배우고 그대로 실천한 거였지만, 나로선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공부하거나 놀 시간을 빼앗겨가며 가사 일부분을 부담해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종종 외치는 ‘우리’라는 바운더리는 생각보다 배타적이다. 나와 생각이나 입장이 비슷하면 ‘우리’의 무리에 끼일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 바운더리에서 쫓겨나 고립된 ‘너’가 된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나의 기준에 적합하고 잘 맞춰주면 나의 ‘연인’이 될 자격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망 혹은 분노하거나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고 만다. 인간의 애착 욕구는 동물 중에서도 가장 강하기 때문에 안정적 애착이 형성되는 3세 이후로도 지속하여 양육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 유년기 이후로는 애착 욕구가 소유욕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39쪽)
3장 조종하는 자와 조종당하는 자
감정 사슬은 흔히 두려움, 과잉책임감, 신경증적 죄책감이라는 세 가지 감정을 주축으로 이루어진다. 두려움은 기질에 따라 상대에게 순응하는 태도로 나타날 수도 있고, 거꾸로 상대를 통제하고 확인하려는 강요로 나타날 수도 있다. 과잉책임감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신경증적 책임감은 관계에서 생겨난 갈등이나 문제를 일방적으로 자기 책임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52~54쪽) 사람들 관계는 감정을 조종하는 자와 조종당하는 자로 나눌 수 있다. 직장에서 지시하는 상사와 지시를 따르는 부하 직원이 있는 것처럼. 고집이 세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주로 감정을 조종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연인 사이에서도 헤어지자고 홧김에 말할 수 있는 사람도 감정조종자에 가깝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협박하거나 죄책감을 심어주는 경우를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 길드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자아의 바운더리가 희미한 사람들, 자기 세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주장을 거르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감정조종의 대상이 된다. (60쪽)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 (62쪽)
5장 바운더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아이는 공생적 관계에서 벗어나 모든 공포와 고독 그리고 자신의 무능감을 견디면서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다. (75쪽)
아이에게 꼭 필요한 심리적 능력은 혼자 있는 능력, 좌절과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정서조절 능력, 그리고 자기 욕구에 기반을 둔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능력’이다. 부모로부터 적당히 분리되어 충분히 공감을 얻으며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욕구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해소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애착 불안을 겪으며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반복적인 애착 손상으로 생긴 바운더리의 문제*
1. 자아발달의 왜곡: 자아가 대상과 단절되어 분리(과분화),
자아가 대상으로부터 분화되지 못한 채 공생관계에 머묾
(미분화)
2. 인간관계의 왜곡: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불안해하며 거리를 두려 함(억제형).
거리 조절 못 하고 다른 이에게 지나치게 다가가려 하거나 타인의 영역을 침범함. (탈 억제형)
스트레스나 감정조절의 핵심은 ‘자아의 능력’이 아니라 ‘안정된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과도한 혹은 지나치게 부족한 애착 관계는 여러 가지 심리적·사회적 징후로 나타날 수 있다. 나 역시 어릴 적에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비교적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해오다가 장녀의 역할을 요구받으면서 과도한 친밀감 혹은 책임감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일명 ‘장녀 콤플렉스’를 가진 채 누군가의 인정을 받으려고 과도하게 노력한 결과 입시 증후군 및 다양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및 주변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통해 조금씩 극복해가는 중이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다섯 가지 바운더리의 기능이 잘 작동해야 하며,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관계조절능력이 있으며, 이들의 바운더리는 유연하다.
둘째, 상호존중감을 가지고 있다.
셋째, 상대의 마음과 함께 자신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안다.
넷째, 갈등회복력이 높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갈등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섯째,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상대방을 배려한 부드러운 솔직함을 가지고 있다.
11장 관계조절력: 관계의 깊이를 조절하는 능력
협력과 배신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불변 있는 이타주의자’가 생존에 유리하다.(174쪽)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은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다. 뉴스나 책을 접할 때도 맹목적으로 믿고 받아들이기보단,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줄 안다. 인간관계에서도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걸러서 받아들일 줄 아는 ‘정신적 소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바운더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갈등을 회피하고 하나 됨을 원하기 때문에 합리적 의심이나 비판적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특히 연애 초반에는 감정이 앞서서 상대의 장단점을 제대로 못 보고 의심하거나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12장 상호존중감: 따로 또 같이
나만 존중하고 남을 무시하면 성격장애로 이어지고, 남만 존중하고 자신을 무시하면 신경증으로 이어진다. (185쪽)
유난히 상대방과 같아지기를 열망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름을 참지 못한다. 나와 다른 계급이나 인종, 성별에 대한 차별이 유독 심해서 가끔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결혼을 찬성하는 사람 앞에서 비혼 얘기를 꺼냈다가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결혼 여부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비혼을 주장하는 싱글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하거나 둘러서 타이른다. 인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국제결혼 비율이 증가하면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 역시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성숙한 사회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개개인의 사적 영역도 존중할 줄 안다. 우리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존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조화롭고 건강한 관계는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관계이다. 어릴 적부터 다름을 인정받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다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존중해진다.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같음’을 강요받고 자란 세대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식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아지기를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나만 존중하고 남을 무시하면 성격장애로 이어지고, 남만 존중하고 자신을 무시하면 신경증으로 이어진다. (185쪽)
협력과 배신이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불변 있는 이타주의자’가 생존에 유리하다.(174쪽)
바운더리는 자신을 보호할 만큼 충분히 튼튼하되,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 (6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