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대표작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작가다. 알바니아가 어디 있는 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디인가 하니 발칸반도의 서쪽으로 이슬람인구가 전체 70%를 차지하는 나라다. 외교통상부의 국가별 안전정보에 따르면 <이슬람 실정법>에 따라 보복이 7대까지 허용되며, 보복이란 이름으로 살인도 용인이 된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것도 '복수'다.

26살의 '그조르그' 형을 죽인 이를 총으로 쏘아 죽임으로써 복수에 성공한다. 이것은 양 가문의 스물두 번째 복수였다. 죽은 이는 마흔 네 명이다. 복수는 끝나지 않는다. 그조르그는 또다시 복수를 당한 가문으로부터 쫓기게 된다. 그조르는 관습법, 카눈에 따라 그가 죽인 이의 장례식에 참여한다. 그리고 관습법에 따라 30일간 양 가문은 휴전에 들어간다. 그조르그는 복수에 대한 '세금'을 내기 위해 길을 떠난다. 도중에 그조르그는 도시에서 신혼여행을 온 남녀와 우연히 스치게 되고, 그조르그와 그 신혼의 여자, '디안'은 서로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그조르그가 얻은 30일 간의 시간을 다룬다.

작가는 알바니아의 산악지방에 실제로 존재하는 이 복수의 사슬을 소설로 옮기고 있다. 어둡지만 담담한 어조다. 관습법에 따라 관습법을 집행하는 사람과, 해석하는 사람, 그리고 그조르그처럼 관습법에 복종하는 이가 있다. "오래전'부터 그러했기에 아무도 이 관습법을 감히 깨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관습법을 어긴다면 공동체로부터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소설이 마냥 어둡고 눅눅하지 않은 이유는 그조르그와 디안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첫 눈에 반하는 것'을 그린 듯한 둘의 이야기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애절하다. 남자는 곧 죽임을 당할 것이고 여자는 자신이 살던 도시로 돌아가 평생 한 남자와 살아가야 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 이야기는 알바니아의 현실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어느 사회나 '관습'이란 이유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원래 그랬던 것, 모두가 따르는 것이라는 권위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사회제도는 복수를 명령하는 소설 속 '카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소설 속 인물들이 무력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만큼 무거운 관습법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제도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잔인한 습속을 신비로우면서도 날카로운 눈길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과 사회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 사회성을 쫓음으로서 아름다움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름다움만을 쫓지도 않았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말하고 싶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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