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화해 - 아주 오랜 미움과의 작별
우르술라 누버 지음, 손희주 옮김 / 생각정원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압박을 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다. 주변에서는 책임감이 강하고, 열정적이라고 평하지만, 본인은 쳐내야 할 일 투성이인데 막상 잘해내는 일은 없다고 느낀다. 아래 브리짓 슐트의 인터뷰내용에서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정신적 환경공해'에 빠진 사람은 자기중심적이지 못해서라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중심성"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이기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만큼 타인의 욕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여기는 자세이다. "자기중심"은 말 그대로 삶의 중심에 '나'를 놓는 태도이며, 따라서 불필요한 요구에는 저항할 줄 알고, 중요한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할 줄 안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지 않으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안다. 우리가 기존에 잘 알고 있는 "회복탄력성"의 개념과도 비슷하다.


모든 심리학에서 어떤 현상의 기저 원인을 파악할 때 유년시절을 빼놓지 않는데, 이 책도 자기중심적이지 못한 사람은 유년시절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의 지배를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는 회의시간에 의견 하나 내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을 하고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살면서 내 의견이 무엇인지 어필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잘 하는 것은 상대(주로 부모, 교사, 상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캐치한 뒤 그들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동아리 활동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했고, 인생의 큰 방향성인 진로 역시 부모님의 뜻에 의해 내 의사를 꺾고 말았다. 왜냐하면 난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고, 계속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커서도 누구라도 나를 싫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내 의사를 제대로 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그게 점심 메뉴와 같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항상 상대 입장을 먼저 놓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에 스트레스를 느꼈고, 집에 와서 혼자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니 모두 내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한 아이의 부모가 되고 보니, 이제 나보다 내가 키우고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 내 아이의 미래를 더 먼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때로 아이의 자율성을 부모라는 권위를 남발하여 억압하지는 않는지 종종 생각한다. 나는 우리 아이가 타인의 기대에 맞추느라 자기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길 원한다. 의견을 피력해야 할 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길 바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내 삶의 중심에 나를 올곶이 세우는 연습을 할 것이다. '충분히 좋아'에 만족하고, 덜 의미있는 일은 주저없이 포기할 것이다. 모두가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개성을 드러낼 것이다. 나를 중요하게 대함으로써, 나는 우리 아이도 자신이 중심에 선 삶을 살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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