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페퍼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The Curious Charms of arthur Pepper/ 패드라 패트릭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사랑하는 것은,
패드라 패트릭의 소설, 아서페퍼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에서 주인공 아서페퍼는 예순 아홉살 홀아비. 아내를 잃고 우연히 아내의 유품 중 무언가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듯한 팔찌를 발견하게 되고, 그 팔찌에 달려있는 여러 개의 참이 가진 아내의 과거 이야기를 들을 찾아 나선다.
그대의 과거를 내가 아는 것이 과연 좋을까?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가 작가가 하고 싶은 물음 이었을까? 아니면 “당신을 만나기 이전,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는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당신과 함께 지냈던 그 시간들이 소중한 것이죠. 만약 당신이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과 함께하는 현재와 그와 더불어 꾸려나갈 미래에 대해서 상상하고 기대하세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 당신이 알지 못하는 그의 과거 보다 훨씬 중요해요.” 하는 것이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 였을까?
사랑하면 알고 싶고, 알게 되면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우리는 늘 그(또는 그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그는 언제 일어나고 언제 잠자는지,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는지, 아니면 그저 아침이면 자명종이 없이 저절로 눈을 뜨는지, 아침은 챙겨 먹는 건지, 저녁은 손수 해서 먹는지 아니면 누구와 함께 먹는지. 그리고 또한 이런 것들도 알고 싶다. 그는 어떤 식으로 사랑을 하는지, 그 사람은 여행은 좋아하는 지. 여행가서는 소박한 골목길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화려한 네온사인이 비추는 거리를 좋아하는지. 걷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하는 드라이브를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여행가서는 현지 음식을 찾아다니는지, 아니면 그곳에서도 여전히 입에 맞는 한국 음식점을 찾아다니는지. 우리는 사랑 하면 할 수록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알고 싶고, 또 그에 대하여 알게 될 수록 더욱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그와 함께하는 현재를 통해 우리의 관계를 쌓아감으로 인해서 알수도 있지만, 숱한 대화를 통해 알게 되는 그의 과거에 비추어 미루어 짐작하여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더 알게 된 상대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된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와도 같아서, 사랑이란 마치 우주를 탐험하는 일과 같아.
누군가는 우리가 그 어떤 무엇에 대하여 만약 진실로 깊이 알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심하게는, 살인자라 할 지라도 그가 살아온 환경과 그가 가지고 있는 그의 깊은 내면의 사정과 감정에 대하여 알게 되면 그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가지는 진실은 몹시도 깊고 오묘한 것이라서 그것은 마치 하나의 우주와도 같고, 그러므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여 그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우주를 탐험하는 것과 같아서, 아마도 우리는 평생을 그 또는 그녀와 함께 지낸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 완벽히 아는 것이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 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우리가 사랑하는 그에 대하여 너무 쉽게 그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와 함께 하는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재미없을 것인가? 하지만 아마 우리가 상대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일은 아마도 그리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늘 생각하고 또 성장하므로 그 안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감정과 생각의 소용돌이들이 존재하고, 일심동체와 같은 관계라 하여도 어쨌든 정말 한 몸으로 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생각과 감정에 대하여,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언제까지고 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살 수 있으니 좋은 일이기도 하고, 내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당신에 대하여 완벽히 알 수는 없으니, 당신과 내가 온전히 한 몸은 아니니, 한편으로는 조금은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그대가 혹여나 나 때문에 상처 받지 않도록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더 많이 그리고 더 깊게 알고 싶은 그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사랑하는 그대가 혹시나 나로 인해 상처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상대를 더 배려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여 왔으며 그가 나를 만나기 전 어떤 환경에서 지냈는지, 또는 어떠 어떠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지냈는지, 그동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여 왔는지를 알게 되면서, 혹시나 우리의 부주의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그가 상처 받는 것으로 부터 그를 보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말도 너무나도 궁핍한 가난 속에서 성장한 사람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는 말일 수도 있고, 별다른 의도 없이 꺼낸 이혼이나 죽음에 대한 얘기가 한부모나 조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에게는 깊은 아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니, 우리의 그의 과거를 앎으로 인해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한번은 더 생각하고 행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어떤 특정한 고통을 당했던 사람에게는 어떤 말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상대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면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하는 사람은 우리의 부모님 외에는 없다. 부모님외에 내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만나기 이전의 나의 삶이 있고, 이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서 그와 관계를 맺게 될 수록 우리는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와 만나기 전에는 어땠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지게 되고, 이것은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나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단지 우리의 나이와 외모 말투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에 대한 사실, 그의 과거가 오히려 그의 이름, 나이, 외모, 말투보다 더 그가 어떤 사람인를 나타내 줄 수 있는, 바로 그 사람 그 자체 일 수 있는 것이다. 이름 외모 나이등등은 그가 그때 그때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의 모습 중의 일부분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일부분의 모습을 보고 그를 만나면서, 그가 나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점차로 알게 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다 온전하게 깨닫게 되면서, 우리는 더불어 그와 함께 해 나갈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도 유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고, 그러한 과거와는 이제 이별하여 과거와는 다른 현재를 설계하고, 나아가 꿈과 희망의 미래를 만들고 싶은 우리에게, ‘당신의 과거가 바로 당신입니다’하고 말하는 것은 짐짓 너무나 잔인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과거와 이별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해내는 능력도 우리의 과거로 부터 나온다는 사실 또한 진실이다. 내가 지금까지 진실하게 치열하게 살아내 왔던 기억을 통해, 우리는 한때 힘들었던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과거의 아픔을 지우고 밝은 미래를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언젠가 돌아봤을때 그것 역시 과거가 되는 것이므로, 현재를 열심히 산다는 것은 멋진 나의 과거를 축적시켜 나가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과거로 부터 힘을 얻어 현재의 모습을 만들고, 이것을 먼 미래의 기간 동안 꾸준히 쌓아가는 것. 그러니 나와 만나기 전의 당신의 모습이라고 한들, 그것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 중에 한가지 임은 틀림 없을 것이며, 우리는 당신의 온전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함께 할 미래를 보다 벅찬 감동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경우의 만남에는 그 숫자에 꼭 비례하는 정도의 많은 수의 답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대하는데에 있어서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대상에 대하여 궁금하도록 만들고, 그렇게 그에 대해 더 많이 알아 갈 수록 우리의 사랑이 더 깊어진다는 사실 만큼은 어느 경우에 대입해도 변함이 없는 진실일 것이다. 살인자도 그 사정을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이야 오죽할까? 때로 오해하고 싫어했던 그의 행동마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 수록 우리는 그를 더 이해하고 가슴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알면 알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면 그 와의 사랑을 멈춰야 겠지만 말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사랑하는 것은,
그리고 상처가 없는 온전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서, 그의 내면의 상처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의 상처를 품어줄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됨으로써 그에게 보다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나는 그를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그의 과거를 안고 그와 함께 현재를 아름답게 꾸려내어 보다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인가? 사랑의 현재와 미래를 눈부시게 만들어가는 능력은, 나와 상대의 과거를 알되 그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며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그것으로 더 튼튼한 미래를 만들어 나갈수 있는 나의 애정 근력의 정도에 좌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사랑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우리를 더 고차원적이고 진실된 사랑으로 이끌어 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대의 온전한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그를 배려할 만한 큰 마음의 그릇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패드라 패트릭의 소설, 아서 페페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에서 아서 페퍼도 아마 그동안 몰랐던 아내의 모습을 만나게 되면서 아내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40년간 알고 지냈던 아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 아마 인간에 대한 이해도 한층 더 넓고 깊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한층 더 입체적으로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아내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면서 아서페퍼가 당황하여 흔들리는 모습이 나오지만 나는 그것이 그가 성장하기 위한 성장통과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69세에도 인간은 어떠한 경험과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 있는 한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와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도, 아내의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더라도 나는 그것이 그 관계가 온전히 굳건해지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를 알고 과거로 부터 나아가는 것
마지막에 아서 페퍼가 아내의 과거 편지를 읽고 그 편지를 태워버리는 모습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진짜 아내의 모습을 만나도록 도와주었던 아내의 편지를 태우고, 아내의 유품인 팔찌를 팔아버리는 행위를 통해서 아내와의 과거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징하는 하나의 모멘텀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과거로 부터 나아가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는 아마도 아내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실로 더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아내가 그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피상적인 아내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서, 아마도 온전한 모습의 아내를 온몸으로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진실로 알아주는 행위가, 그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혹시 그의 머릿속에 스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에 대해서 알았고, 그녀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때 살았던 곳 중의 한 곳인, 인도를 여행했다. 그때 그가 느끼는 아내에 대한 감상은 아마도 그 이전의 그가 느끼던 것 과는 아주 다른 것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다산북스 북클럽 나나흰7기
#옥님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