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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내가 사랑한 백제 이병호 지음 다산초당
깊이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현대 미술의 거장 백남준을 기리면서 그의 아내였던 구보타 시게코는 나의 사랑 백남준이라는 책을 내었다. 그리고 시인 김수영의 아내였던 김현경은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에세이 집을 내었다. 이 병훈 관장이 발간한 ‘내가 사랑한 백제’ 도 그런 의미로 내게 읽힌다면 무리한 비교일까?
한 개인에게 그의 삶을 관통하는 어떤 사람, 사물, 또는 주제가 있다는 것은 아주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나의 삶을 사는 것이,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이 되는, 그러니까 아주 보람있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늘 바라보는 무언가가 존재해야 하고, 또한 그것을 위해서 의미있게 내 시간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다시 한번 복기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이렇게 살아가는 데에 있어 어떤 목표를 갖는 다는 것이 실상은 많이들 말하는 것처럼 그리 쉬운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또 생각한다.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기 위해서 한 세월을 허비하기도 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 아니던가? 대학 입시 전형에 갖 가지의 특기자 전형이 있다고 한들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그저 학업을 열심히 하여 시험을 치르고 점수에 맞춰서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구심점이 될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것이 현실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또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릴때부터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들 어릴 때는 수십개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그중의 한가지를 꿈꿨고, 다음이 되면 꿈꿨던 그것들을 다시 잊어버리고 내일의 더 멋져 보이던 다른 꿈을 취사선택하고는 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쓰고, 그것을 더 알아가는 것에 자신이 하는 일의 거의를 바치는 삶이 실상 아무나에게 주어지는 행운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는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인가 생각한다. 물론 그가 그런 삶을 살게 되기 까지, 대체 어느 정도로, 매일같이 피곤한 몸을 버티면서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며 지난간 자신의 하루하루를 반성해 왔는지에 대해서, 또한 앞으로 이 세상을 위해서 자신이 바칠 무언가가 어떤 것이 될지에 관해 보냈을 수많은 고민의 시간에 대해서, 그것들이 대체 어느 정도일지, 나는 감히 그것을 추정하기 조차 힘들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무엇에 대하여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쳐 그것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는 내게 언제나 깊은 감동이 된다. 감격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들이 전해주는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사는 삶의 흥분을 조금이나마 전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의 삶의 온도 또한 함께 들썩이기 때문이다.
이병호의 내가 사랑한 백제를 읽으면서 나는 백제를 사랑하는 한 연구자의 자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 개인이 어떤 것에 바친 시간이 이렇게 다른 이에게도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보낸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순간들이었는지를 가늠해주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그가 참으로 부럽기도 하다. 나는 자연스레 그의 백제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 내가 내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가 이 책을 집필했던 의도대로)그가 말해주는 백제에 대해서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여러가지 시각들을 깨우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인해서 변한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소모한 시간의 가치일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동안 내가 (그의 책을 통하여) 그의 백제에 대한 사랑을 전해 들은 까닭으로, 앞으로의 내가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하여 우연히든, 일부러 찾아가서든 마주하게 되는 백제는, 더이상 내게 그를 알기 전에 내가 아는 수준의 그저 수학여행에서 보던 의미없는 유물의 나열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의 내게 백제란 한 사람이 그토록 사랑했던 대상이기도 하려니와, 그와 백제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그의 동료와 선후배들이 치열한 삶의 흔적으로 내게 남겨준 나의 소중한 역사이고 나의 뿌리라는 것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사랑한 백제 이병호 지음 다산초당
p.40 먼저 역사는 본질적으로 ‘스토리’라는 것이다.
특히 “조정래의 [태백산맥] 보다 벌교의 근 현대사를 잘 보여주는 역사 논문이나 책이 있는가?”라는 말씀은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역사 논문은 기본적으로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p.124 예전에 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때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공부하는 자체가 좋아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대로 절대 죽을 수 없다고 다짐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이것을 밝힐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p.124 책에서는 좋은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확한 개념과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p.288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악의 평범함이라는 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악은 무시무시하거나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이다.
p.353 이미 써 둔 논문이었지만 그것들이 백제사나 고대 동아시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연구자라면 자신이 쓴 논문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스스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p.357 국립박물관의 큐레이터이자 역사학자로서 글을 쓰면서 어느 순간 내가 쓴 글이나 논문에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p.366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백제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모멘텀을 설정하고 싶었다
p.3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책을 내는 것은 사람들이 결코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사물을 본다는 것을 깨달 았기 때문이다.
#다산북스 북클럽 나나흰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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