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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저번에 알렌상드르 졸리앙의 책을 읽고 힐링에서 철학으로 대세가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중심에는 철학자 '강신주'가 있습니다. 네, 제가 요즘 이 분한테 필(?)을 받은 것 같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저자가 좋아서 그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는 경우는 흔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반갑습니다. 책은 너무 좋았는데, 저자에 흥미가 안 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철학자 강신주를 알게 된 건 좀 됬습니다. 팟 케스트 방송에도 게스트로 나오고, 오마이스쿨에도 온라인 강의(여러가지가 있는데, '벤야민'강의는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를 하는 걸 보면서 그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죠. 하지만 관심을 가진 건 최근입니다. 대학로 벙커1이라는 곳에 문학수 기자의 <아디지오 소스테누토> 출간기념 강연을 갔다가 대담자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분도 클래식을 듣는다는 걸 알았을 때 동질감을 느끼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 읽은 책이 아래 세 권입니다. 공동 저작으로 나온 걸 제외하고 혼자 쓴 단행본만 17권정도 되는데, 그나마 유명하고, 쉽게 썼다고 일컬어지는 책들만 우선 접근한거죠. 최근에는 벙커1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강연하는 라디오도 잘 듣고 있습니다. 팟 캐스트나 오프라인 강연 등에서 '대중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매스컴에도 종종 나오고 있고, 신문에 기고도 하고 있고, 한마디로 말과 글 양방향으로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인터뷰어인 지승호와 인터뷰이인 강신주, 두 사람이 나눈 대담은 총 5주, 50시간, 4,500매라는 숫자로 정리됩니다. 이 숫자가 보여주듯, 책도 두껍습니다. 장작 600 페이지 정도입니다. 주제도 인문정신, 사랑, 시 읽기, 제자백가와 동양철학,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 자본주의, 음악 등 다양합니다. 평소에는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군데군데 뽑고, 간혹 저자의 이야기나 제 느낌을 소개하는 식으로 서평을 썼는데, 이 책은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힘든 것 같습니다. 책 전체가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아서 어느 한 곳을 뽑아서 이야기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그래도, 책(혹은 독서)에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이 부분만은 소개해 보고 싶습니다. 좋은 독서는 마음에 작용하고,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겠죠. 앞으로도 시간 때우기 위한 독서, 지적 허영심을 위한 독서, 그리고 서평을 위한 독서는 하지 말라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경험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잣대는 마음이 움직였느냐에요. 경험을 하기 이전의 마음 상태와 한 후의 마음 상태가 달라야 해요. 책을 읽어도 간접 경험이 안 되는 건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치고 중요한 것 외우고 해서 그래요. 그건 책 읽는 게 아니에요. 읽었을 때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 간접 경험이거든요. (185 페이지)
대담집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어쨌건 두껍고 무엇보다,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제자백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자'나 ~가'로 끝나는 동양사상에 문외한이신 분들한테는 중간 부분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전 초등학교 시절에 경전을 배운 경험도 있고, 동양사상에 나오는 우화나 개념 같은 것에 조금 익숙했던 것에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아, 그리고 벙커1 팟 캐스트로 하고 있는 강신주의 '다 상담'을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조금 쉽게 읽힐 수 있겠네요.
저녁에 스튜디오 연주회를 보러 나간 경복국 옆 통의동 카페에서 반나절 죽치고 앉아 하루만에 읽었습니다. 느낌이 가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치만 그건 책을 읽는 동안이었고, 읽고 난 뒤에는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책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어의 고통과 그 이전의 고통을 조화롭게 겪으면서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비단 '글쓰기'에만 한정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보다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겠죠.
힐링 서적들을 읽고 먹어도 고픈 군대밥이나 마셔도 갈증나는 바닷물 같다는 느낌을 받아보신 분들은 조금만 더 용을 써서 이 분의 철학에 몰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전 그럴겁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본인의 대표작으로 꼽는 <철학vs철학>과 <김수영을 위하여>도 읽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제가 제일 잘 한 건, 위의 두 저작보다 이 대답집을 먼저 읽은 것이겠네요.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제가 김수영이라는 사람을 똑같이 흉내 내면 사랑이 아니라 제가 미친거에요. 스토커랑 흉내 내는 것은 달라요. 사랑하려면 상대방이랑 달라야 해요. 그런데 멘토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성을 내가 담보하려고 하는 거에요.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자기 메아리에요.
매번 강의할 때 제가 하는 얘기가 뭔지 아세요? '당신들이 나를 선생 말고 강신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김수영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 시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맞다. 이건 강신주의 해석이다.' 라고 답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얘기해요. 그러면 제가 또 야단을 쳐요. '맞다. 그러나 동등한 해석은 없다. 그래서 영화 평론을 보더라도 영화에 근접한 해석이 있고 모자라는 해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뻔히 아는 것 아니냐'고요. (18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