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다
강신주.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저번에 알렌상드르 졸리앙의 책을 읽고 힐링에서 철학으로 대세가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중심에는 철학자 '강신주'가 있습니다. 네, 제가 요즘 이 분한테 필(?)을 받은 것 같습니다. 책 한 권 읽고 저자가 좋아서 그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는 경우는 흔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반갑습니다. 책은 너무 좋았는데, 저자에 흥미가 안 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아무튼 그렇습니다.  

 

철학자 강신주를 알게 된 건 좀 됬습니다. 팟 케스트 방송에도 게스트로 나오고, 오마이스쿨에도 온라인 강의(여러가지가 있는데, '벤야민'강의는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를 하는 걸 보면서 그 존재는 익히 알고 있었죠. 하지만 관심을 가진 건 최근입니다. 대학로 벙커1이라는 곳에 문학수 기자의 <아디지오 소스테누토> 출간기념 강연을 갔다가 대담자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 분도 클래식을 듣는다는 걸 알았을 때 동질감을 느끼면서부터입니다.

  

그래서 읽은 책이 아래 세 권입니다. 공동 저작으로 나온 걸 제외하고 혼자 쓴 단행본만 17권정도 되는데, 그나마 유명하고, 쉽게 썼다고 일컬어지는 책들만 우선 접근한거죠. 최근에는 벙커1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강연하는 라디오도 잘 듣고 있습니다. 팟 캐스트나 오프라인 강연 등에서 '대중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매스컴에도 종종 나오고 있고, 신문에 기고도 하고 있고, 한마디로 말과 글 양방향으로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인터뷰어인 지승호와 인터뷰이인 강신주, 두 사람이 나눈 대담은 총 5주, 50시간, 4,500매라는 숫자로 정리됩니다. 이 숫자가 보여주듯, 책도 두껍습니다. 장작 600 페이지 정도입니다. 주제도 인문정신, 사랑, 시 읽기, 제자백가와 동양철학,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 자본주의, 음악 등 다양합니다. 평소에는 책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군데군데 뽑고, 간혹 저자의 이야기나 제 느낌을 소개하는 식으로 서평을 썼는데, 이 책은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힘든 것 같습니다. 책 전체가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아서 어느 한 곳을 뽑아서 이야기 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그래도, 책(혹은 독서)에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이 부분만은 소개해 보고 싶습니다. 좋은 독서는 마음에 작용하고,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겠죠. 앞으로도 시간 때우기 위한 독서, 지적 허영심을 위한 독서, 그리고 서평을 위한 독서는 하지 말라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경험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잣대는 마음이 움직였느냐에요. 경험을 하기 이전의 마음 상태와 한 후의 마음 상태가 달라야 해요. 책을 읽어도 간접 경험이 안 되는 건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치고 중요한 것 외우고 해서 그래요. 그건 책 읽는 게 아니에요. 읽었을 때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 간접 경험이거든요. (185 페이지) 

 

대담집이기는 하지만 이 책은 어쨌건 두껍고 무엇보다,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제자백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자'나 ~가'로 끝나는 동양사상에 문외한이신 분들한테는 중간 부분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전 초등학교 시절에 경전을 배운 경험도 있고, 동양사상에 나오는 우화나 개념 같은 것에 조금 익숙했던 것에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아, 그리고 벙커1 팟 캐스트로 하고 있는 강신주의 '다 상담'을 들어보신 분들이라면 조금 쉽게 읽힐 수 있겠네요.

 

저녁에 스튜디오 연주회를 보러 나간 경복국 옆 통의동 카페에서 반나절 죽치고 앉아 하루만에 읽었습니다. 느낌이 가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치만 그건 책을 읽는 동안이었고, 읽고 난 뒤에는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책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어의 고통과 그 이전의 고통을 조화롭게 겪으면서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비단 '글쓰기'에만 한정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보다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겠죠.     

 

힐링 서적들을 읽고 먹어도 고픈 군대밥이나 마셔도 갈증나는 바닷물 같다는 느낌을 받아보신 분들은 조금만 더 용을 써서 이 분의 철학에 몰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전 그럴겁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본인의 대표작으로 꼽는 <철학vs철학>과 <김수영을 위하여>도 읽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제가 제일 잘 한 건, 위의 두 저작보다 이 대답집을 먼저 읽은 것이겠네요.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이 아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제가 김수영이라는 사람을 똑같이 흉내 내면 사랑이 아니라 제가 미친거에요. 스토커랑 흉내 내는 것은 달라요. 사랑하려면 상대방이랑 달라야 해요. 그런데 멘토라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성을 내가 담보하려고 하는 거에요. 이건 사랑이 아니에요. 자기 메아리에요.

 

매번 강의할 때 제가 하는 얘기가 뭔지 아세요? '당신들이 나를 선생 말고 강신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김수영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이 시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맞다. 이건 강신주의 해석이다.' 라고 답해요. 또 어떤 사람들은 '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 아니냐'고 얘기해요. 그러면 제가 또 야단을 쳐요. '맞다. 그러나 동등한 해석은 없다. 그래서 영화 평론을 보더라도 영화에 근접한 해석이 있고 모자라는 해석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뻔히 아는 것 아니냐'고요. (188 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한동안 힐링이 열풍이었는데, 요즘에는 이게 철학으로 건너가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힐링은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유명 인사들의 개인 스토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반해, 철학은 고전의 맥락과 현실의 문제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는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일단 긍정적으로 봅니다. 막연한 긍정보다는 그래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쪽이니까요.  

 

한가지  재미있었던 건, 이 책의 목차를 한번 쭈욱보고 저 나름대로 흥미있는 부분을 찍어두었는데, 그곳에서는 의미를 못 찾고, 대부분 그냥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에서 의미를 많이 찾았다는 점입니다. 저에게는 의외성이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목차>

 

들어가는 말. 그냥 그대로 있는 것
내게 남은 모든 것을 버리다
나쁜 친구는 나를 완성시킨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을 용기가 필요하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는가
행복한 아이는 인생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는다
자책하지도, 자만하지도 말고…
불편한 진실 끌어안기
나는 강요된 선행을 거부한다
삶을 짓누르는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타인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마라
순수한 열정을 되찾기 위하여
불가능한 것은 잊고 최선의 것을 욕망하라
긴장감을 놓아도 죽지 않는다
지금의 결심을 끝까지 지키는 법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나를 파괴하는 생각들에 대하여
인생은 누구를 위한 연극인가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도 웃음은 존재한다
질문은 그만! 그냥 행복하라
삶은 계속되고 나는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 책은 '내려놓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교신자들은 우리 모두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 말하는데, 참 훌륭한 생각입니다.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 세운다거나, 즐거움 혹은 안정을 찾아 밖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뛰어들고, 깊은 내면으로 가라앉아, 그곳에서 희열과 평화, 궁극의 선(善)을 취하라는 이야기이지요. (6 페이지)

 

더 이상 삶과 드잡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누군가가 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저는 매순간 실감합니다. 어떤 아쉬움도 안타까움도 없이 그냥 그대로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능동적으로 사는 길이니까요 (7페이지)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그래서 이를 장애라 부른다.' 장애란 제가 한때 생각한 것처럼 더럽고 흉한 무엇이 아닙니다. 장애는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 제가 받았다고 느낀 축복 또한 아니지요. 무엇이든 확정하지 말되,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집착이 없다는 건 바로 그런 태도를 말합니다. (17~18 페이지)

 

삶을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 당연히 제 것인 권리로 여기는 순간, 그리하여 "양지바른 이 자리는 내가 임자야"라고 말한느 순간, 고통은 물밀듯 밀려드는 법입니다. (49 페이지)

 

꽃이 피어나기에 꽃이 피어날 뿐입니다. 자기를 걱정하지 않으며, '내가 잘 보여요?' 라고 묻지 않습니다. '왜 사느냐?'는 질문에는 종종 '다른 누군가를 위해'가 개입합니다. ... "행복하려면 이걸 해야 한다"든가, "올 해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내 인생은 종 치는 거야"따위의 어떤 목적의식에 압도 당할 때, '왜'라는 물음 없이 사는 것은 큰 힘이 되어 줍니다. 삶은 종치는 법이 없습니다. 삶은 성공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이미 궁극의 목표입니다. (56 페이지)

 

욕망에 대한 (이런) 생각은 단순히 살면서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겪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 자신을 관찰해보면 그와 같은 욕망이 매우 집요해서, 고통 자체보다 오히려 더 저를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104 페이지)

 

셋째 지침은 운문 선승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그대가 앉아 있을 땐 앉아 있어라.

그대가 서 있을 땐 서 있어라.

그대가 걸을 땐 걸어라.

무엇보다 서둘지 마라.

 

얼마전 화장실에서 어쩌다 보니, 참 대담하게도, 제가 이를 닦으면서 전화를 받고 있더군요. 운문 선승의 말씀에 따르면, 그 순간 두 가지 일이 허사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현재를 왈가왈부하고 미래를 예상함으로써 저는 끊임없이 삶을 벗어나버립니다. (168 페이지)

 

나름 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심오한 철학을 기대했는데 힐링과 철학의 모호한 경계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불교철학을 빌려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놓긴 하는데, 뭐라고 판단하기가 그렇지만 '프랑스 아마존 32주 연속 베스트 셀러'에 걸맞는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머리를 탁 치는 듯한 내용은 많이 있고 쉽게 쓰여있어 몰입도가 뛰어납니다. 강남에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비는 시간에 간 맥도날드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읽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31 | 32 | 33 | 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