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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사기극 -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
이원석 지음 / 북바이북 / 2013년 8월
평점 :
최근 매 주말마다 개인 운동레슨(PT)를 받고 있는데, 트레이너 선생님의 제 1지론은 '밀가루와 설탕을 무조건 멀리하라!' 입니다. 제대로 하고 싶으면 가끔 한 번도 안 된다고 합니다. 다이어트는 운동보다 먹는 것이 2~3배는 더 중요한데, 요즘 사람들의 식습관 하에서는 밀가루(빵, 라면 등)와 설탕만 피해도 체중의 상당 부분은 줄일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저 자신도 사무실에서 먹는 인스턴트 커피와 과자를 줄이고 나서 효과를 봤습니다. 6개월 동안 7kg을 감량했어요. 식단이나 식사량은 건드리지 않았고, 밀과루와 단 음식을 줄이는 것 이외에 추가로 한 것이라고는 매주 한 차례 PT, 그리고 주 3회 30분 정도 러닝머신을 뛰는 것 정도 밖에 없는데, 아무튼 그랬습니다.
그런면에서 자기 계발서도 밀과루와 설탕으로 만든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먹기 편하고, 입에 붙는 빵, 케이크, 탄산음료, 카라멜 커피 등과 같죠.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생각날 때가 있고, 한끼 식사가 급한데 시간이 없을 땐 그런데로 용이합니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실효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끌리고, 책은 읽고 싶은데 머리가 아프거나 생각하기 귀찮을 때는 그런데로 시간을 때우기 좋다는 의미겠죠. 그러다보니 저도 이런 책들을 아얘 끊지는 못하고, 제목이 그럴싸해 보이면 저도 모르게 들춰보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욕을 하면서도 끝까지 다 읽기도 하고요.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든 생각은 이런 책이 '왜 이제야 나왔을까?' 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자기계발서를 비판하고, 끊고 싶어도 그럴만한 논리를 갖추기가 어려웠거든요. 구조적인 문제들을 지나치게 개인화시켜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과 제시하는 문제들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점 이외에는 비판할 구석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는 뭔가 탐탁치 않다는 느낌(?) 정도로 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 저의 자기 개발서 비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자기계발서의 역사, 그 속의 논리구조 및 형식, 주요 독자층을 분석하여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적어도 이전에는 없었던 시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최근까지도 자기계발서와 관련해서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궁금증은 '자기계발서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라고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개인 전기, 에세이, 경제·경영 분야의 자기계발서들은 구별해 내기가 쉬운데, 요즘에는 문학, 역사, 음악·미술, 그리고 심지어는 철학과 같은 인문분의 책들까지도 '자기계발서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얼마전에 쓴 <독립연습> 서평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심리학 서적과 자기계발서는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지경인 것 같습니다. 시장에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러한 쏠림 현상은 분명히 위험한 것이죠.
제가 심리학 서적과 자기계발서의 구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데에서는 우선, 2장 <자기계발의 담론>에서 답을 보여줍니다. 자기계발서들이 크게 심리학과 경영학 개념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하튼 감정이라고 하는 영역이 우리 문화의 전면에 부각되면서 자기계발의 새로운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인문학적 전회 또한 이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행동과 습관의 교정을 중시하는 기존의 윤리적 자기계발에서 내면의 이츄와 성숙을 지행하는 심리적 자기계발로 궤도가 수정된 것이다. 고전 읽기를 포한한 인문학적 트렌드는 바로 이러한 내면으로의 전환에 궤를 맞춘다. (85 페이지)
어떻게 보면 다른 서적들이 자기계발서화(化)되고 있다기보다는 자기계발서가 다른 학문분야의 개념이나 논리구조를 가져오면서 자가증식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걔중에는 연애인이 쓴 외국어 서적이나 에세이들과 같이 외형만 보고는 정체를 알기 힘든 책들도 나오고 있는 것일테고요.
이 책의 결론이라면, 여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제가 주목한 부분은 욕망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기계발은 진정 사회적인 성공과 성취가 욕망인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놓자고 설명한 대목입니다. 생존을 담보로 걸어놓고, 다양한 사람들을 한 가지 욕망으로만 몰아가는 세태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이(자본주의 하에서의 위계와 경쟁의 균형)를 통해 우리 사회의 욕망의 흐름을 바꾸자는 것뿐이다. 자기계발은 더이상 필수 항목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 사항으로 제공되는 것이 옳다. 즉 조금 더 성공하고, 조금 더 성취하길 희망하는 이의 몫으로 남겨놓으면 된다, 그게 자기계발을 자기계발답게 대하는 것이다. (221 페이지)
모두가 게임의 룰 안에서 이길 궁리만을 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적어도 시스템 바깥의 대안; 룰을 바꾸거나 게임을 하지 않고도 함께 잘 살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