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마음 - 썩어빠진 교육 현실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풀어낸 성장소설
호우원용 지음, 한정은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위험한 마음'이라는 제목과 정확히 어떤 표정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쓸쓸한 분위기의 남학생과 그를 에워싼 푸른 숲을 담은 표지가 책장을 열기도 전에 마음을 무겁게 한다. 거기다 썩어빠진 교육을 유쾌하고 신랄하게 풀어낸 성장소설이라는 부제는 꽤 절망적이기까지 하지 않은가.

시에정지에는 두학기동안 반에서 3등을 한 모범생이다. 그는 수업시간에 등급제한 만화를 본 일이 문제가 되어 교실 밖에서 수업을 받게 된다. 
 

엄마는 이 모든 걸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거야. 정지에, 마음 놓고 공부해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언어적 또는 신체적 폭력, 학교의 묵인, 입시제도에 매인 학생들.
늘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실상은 변함없는 교육 정책과 제도의 거대한 틀에 학교, 교사, 학부모, 학생들 모두 갇혀버렸다.

학창시절 나는 꽤 정의로운 학생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시에정지에처럼 수긍하고 싶지 않은 구조를 글로 써보거나 친구들과 잘못된 현실을 분노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전교 학생회장을 맡게 되고 그로 인해 나의 발언에 좀 더 힘이 실리게 되었을 때 나는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전체 학생들을 선동하여 학교와 교사들에게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것에 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전하기로 한 것이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진행된 이 투쟁에서 지쳐가는 것은 바로 우리 학생들이었다. 저항의 대가는 결코 달콤하지 않았다. 일부 교사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더 많은 교사들로부터 무례하고 버릇없으며 모범적이지 못한 학생들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모든 수업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수업이 지루하거나 깨달음을 주지 못했으며 심지어 비교육적이었다. 여학생들만 있는 학교였지만, 일반적으로 남학교에서 자행된다고 하는 것 비슷한 비인격적인 체벌이 자행되었다.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이었고 학급임원을 맡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직접적으로 그런 경우를 겪은 적은 없었지만, 분노를 자아낼만한 장면을 보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았다. 지금도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과학을 가르쳤던 남교사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하여 치마 교복을 입고 있던 여학생의 따귀를 때리고, 바닥에 넘어지자 무참히 발길질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 후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는 참 약한 존재였다. 무너지지 않는 강한 구조 속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약자다. 그 여학생은 나와 같은 반이었으며, 여전히 나는 그 친구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한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 학교라는 곳을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저는 정지에한테서 빛을 보았어요. 그 애는 진실하고 용감해요."



시에정지에가 문제아에 불과하다고 치부되었던 웨이치나 아이리가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그렇게 짧은 줄을 알았다면 그들은 더 진작에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모든 학생들이 서로 다르지 않고, 그들이 학교에 기대하는 것이 교사와 학교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었더라면 이 아이들의 절망은 조금 덜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때 우리반에서 학교를 그만 둔 친구가 자그마치 8명이나 되었다. 같은 학년에서 정학이나 퇴학처분 받아 학교를 그만 둔 학생이 30여명이 넘었다. 당시 어느 학교보다 엄하게 적용되었던 우리 학교의 교칙은 설령 학생이 실수로 저지른 일이라 해도 결코 너그럽지 않았다. 일이년 후 제도가 바뀌어 학교가 학생들을 함부로 내보내지 못하게 되고, 국가에서는 학교로 하여금 내보냈던 학생들을 다시 받아주도록 하였지만, 학교를 떠났던 친구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와 짝꿍이었던 예쁘장한 선희가 어느날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정말 내게 그 말을 건넨 다음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은 선희, 그 아이가 앉았던 빈자리를 보며 그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떨리는 목소리로 '마음의 문을 열면'을 불렀던 천웨이의 선택은 죽음과 침묵이었다.
시에정지에가 결국 침묵을 선택한 것도 천웨이와 비슷한 이유였으리라.
이 소설 속에서 시에정지에와 많은 학생들이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 아이들 편에서 함께 움직이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응원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나 역시 어느 순간에 어른의 모습을 한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적어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만큼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그래서 몇몇 아이들에게나마 사랑과 진실된 삶을 가르쳐 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 잔선생님은 분명 폭력적이었다. 한번도 문제시되지 않았던 그의 행동은 그에게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게 했다. 이는 학교와 사회가 용인하였고, 심지어는 장려하기까지 한 잘못된 관행이었다. 잔선생님 본인의 말처럼 그 역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좀 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깨닫게 될 날이 오게 되리라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리고 쉽게 용기를 낼 순 없어도, 반성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위험한 마음>, 여기에는 어떤 해결책도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의 마음을 돌아보는 어른들이 하나 둘씩 등장한다. 무엇보다 아이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부모다. 이 땅의 모든 부모되는 어른들이 아이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성적, 학원, 과외 같은 것에 제한될 것이 아니라 훨씬 다양한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그저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아이가 말하려 하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마음을 열라고 한다. 진실은 숨겨져선 안된다. 
 

대만소설이라지만, 정말 우리의 교육 현실과 닮은 점이 많아 우리나라 이야기인 줄 착각하며 읽어버렸다. 읽는 내내 지난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가슴 아파하며 앞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생각했다.

 
최근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만큼 그 아이들이 나의 말을 듣는 것을 본다. 내가 아이들에게 미소짓는 만큼 아이들도 나를 향해 활짝 웃는다.
이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는 이 아이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작
나는 자주 생각한다.
만약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는 목적이
그저 단순히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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