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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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물 맛본지 얼마 안되었을 때,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는 마치 그 때만 부를 수 있는 희망가처럼 느껴졌더랬다.  나이 서른에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을 것 같았고, 분명 적당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만큼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던데, 나이 스물에 꿈꾸는 나의 서른은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삼십대의 문턱을 넘어보니, 여전히 하루 하루 사는 것에 조바심을 내고 있는 내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그 셈을 멈춰버린 시행착오의 건수들, 시련과 번뇌가 내 정서를 얼마만큼 성장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여전히 나는 언젠가 꿈꾸었던 것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시시한 사람에 불과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

 

방황이라는 것은 청소년시절이 끝나면 함께 사라져 버리는 줄 알았는데, 그런 기대가 어리석음을 비웃는 것처럼 깊게 방황하고 잠 못 들었던 이십대 시절...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삼십대가 되어서도 나는 열다섯 소녀였을 때처럼 고민도 많고 예민하다.
 
연수, 서른 셋의 여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인과는 얼마전 헤어졌고, 간당간당하던 직장도 과감히 때려치웠으며 이제는 구립도서관에서 팔자 좋게(?) 영화 관련 책들을 쌓아놓고 앉은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만기가 두 달 남은 적금 통장 정도랄까.
주름살 제거 수술과 대학에 한맺힌 어머니와 검은 염색머리가 취직에 도움이 될거라 믿으며 열정적으로 구직활동을 펼치는 아버지. 각기 개성이 강한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주위에서 한번은 봤음직한 이들의 모습을 한 희주, 선영, 민경, 명희, 은미... 그리고 연재와 동남.

 

소설 같지 않은 소설. 내 친구의 이야기, 어쩌면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몰래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 <쿨하게 한걸음>은 삼십대를 막 벗어나 두려움의 대상이 사십대로 바뀌어버린 세대의 현재 진행중인 일기장이다. (이 소설에 대한 일부의 평처럼 '정직한 인물묘사와 화법'이 작가가 의도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듯 하다.) 크게 웃어보고 싶어지거나, 나도 모르게 가슴이 아련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질 수도 있다. 뒤집히는 속 부여잡고 실컷 욕지기를 하고 싶은 순간도 생긴다. 산다는 것은 때로는 잔인한 운명의 장난 같기도 하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유쾌한 감정의 소용돌이 같기도 하다. 작품의 모든 캐릭터 속에서 나를 발견했다면 지나친 것인가? 어떤 삶도 정답이라 할 수 없지만, 각자가 자신의 삶에 치열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억지스러운 일반화도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것일게다.
내 나이가 몇이던 아직은 해피엔드 혹은 비극적 결말을 섣불리 말할 수 없다. 모두가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이는 다시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희망이 미래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마음 속에서 꿈틀대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진지하게, 적당히 가볍게, 적당히 쿨하게,
서른 셋에 내딛는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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