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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 서머싯 몸이 뽑은 최고의 작가 10명과 그 작품들
서머셋 모옴 지음, 권정관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독서를 생활이라고 여기며, 책읽기에 대한 욕심이 가득한 나에게도 - 옮긴이의 말을 빌어 말하자면- 소위 '위대한 명작들'이란 내게 '죄의식을 유발시키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읽어야 할 독서목록 따위에 열광하고 베스트셀러 좌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과 나는 다른 유형의 사람이라는 치기를 부리던 탓에 대다수의 '명작들'을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소개되었거나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단편은 사정이 나은 셈이지만 서머싯 몸이라는, 내게도 꽤나 인지도 있는 작가로 인식되어진 그가 언급하고 있는 10명의 작가와 작품들 중 제대로 읽어본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우선 이 책은 5백여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무겁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는 수월한 읽기를 담보하는 적당한 줄간격과 폰트, 간간이 들어간 사진 및 삽화, 본문의 이해를 돕는 역주 등 본문편집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깃펜이 진하게 인쇄되어 단호한 느낌을 주는 표지에는 본문에서 다룰 작가와 작품이 친절하게 새겨져 있다. 또한 방대한 분량이라는 부담감으로 시작되는 읽기가 어느새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는 면에서 매우 재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확실히 위대한 작가들은 범상치 않은 정서를 가지고 있다. 대단한 책들을 써낸 이들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허영심이 많았다거나 이기적이었다거나 또는 대단한 낭비벽을 가졌다는 식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그들의 삶을 전적으로 공감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에 대한 적당한 앎이 작품과의 만남을 더욱 실속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서머싯 몸의 리뷰는 매우 유익하다. 몸이 쓴 리뷰라서일까, 이는 리뷰라기보다는 새롭게 구성된 소설같은 느낌을 준다. 그만큼 여기서 다루어지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극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특히 나처럼 평론가들의 서평을 먼저 보고 읽을 책을 고른다거나, 이런 저런 영화평을 모조리 섭렵한 뒤 주말에 볼 영화를 고르는 사람이라면 서머싯 몸의 이 평론집을 읽고 난 뒤 그가 꼽은 모든 책을 다 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나름 감명깊게 읽었던 일이 아득해지면서 다시 그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봐야겠다는 생각,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 <전쟁과 평화> 등의 책들을 읽다 말았던 것에 대한 깊은 후회, 서머싯 몸이 언급하는 모든 책들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몸의 리뷰는 적당히 주관적이고, 적당히 객관적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칭찬할만한 또는 주목할만한 작업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는 각각의 작가들의 생애와 사랑, 고뇌,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를 그 작가들의 전기에서 끌어와 독자로 하여금 10명의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알아보는 데 들었을 수고를 덜어준다. 그리고 그는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한 동시대와 현 시대의 다양한 시선을 제시하는 가운데 그 자신의 관점을 양념처럼 곁들이고 있어 독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냉정을 잃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가 열손가락으로 꼽은 작품들에 대해 무조건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책에 실린 자세한 내용은 독자가 직접 확인할 몫이므로 그 이상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가름하며, 몸의 새로운 명작 목록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