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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 학교폭력의 터널을 지나온 엄마의 조심스런 고백
정승훈 지음 / 길벗 / 2020년 4월
평점 :
조심스럽게 책의 매 쪽을 넘겼다. 꼭 읽어보고 싶었다. 듣고 싶었던 이야기, 기다리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섣부른 판단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해자의 부모와 가해자를 동일시한다.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학교폭력 가해자측의 해명 또는 변명은 대중의 공분을 사곤 했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이 깊게 공감하며 안타까워하고 어떻게든 도우려는 손길을 모으는 반면 가해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폭력이라는 상황 속에 휘말리다보면 피해자가 온전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이기도 한 상황이 있다. 또한 실제 행위의 의도와 행위의 결과가 분리되다 보니 평소 인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거나 소위 문제아라 낙인찍혔던 경우가 아닌 아이들도 원치 않았던 맥락 속에 편입되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상황도 있다. 그렇게 학교폭력이라는 사건 속에 휘말린 이들은 앞으로 어떨까?
개인적으로 학교폭력으로 간주되어 사안이 처리되는 과정과 관련 법 및 절차 매뉴얼을 모르진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이 일의 가해자가 어떤 죄값을 치루는가와 피해자는 어떤 보호조치를 보장받는가가 아닌 순차적으로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여러 상황들 속 감정, 관계, 회복 등 좀 더 내밀한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학교폭력 가해니 피해는 선량하고 원만하게 세상을 산다고 자부하는 누군가에겐 내 인생에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로 여겨지겠지만, 실제 학교폭력에 연루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아이들의 수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 것을 보면 개인 의지만으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아이를 기르고 있는 학부모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나쁜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애썼고, 어떤 상황이든 한 쪽으로 기울지 않고 바르게 판단하려 애썼지만 내 삶, 내 경험에도 ‘학교폭력’이라는 과거가 있고, 최근에도 새롭게 새겨져 아직 아물지 않은 ‘학교폭력’이라는 상처와 교훈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다.
저자에게 매우 감사하다. 어떤 부분도 허투루 읽지 않았다. 스스로가 학교폭력 상담사로 거듭나기까지, 이렇게 본인의 이야기와 깨달음을 책 한 권으로 엮어내기까지 성찰의 시간은 길고 아팠으리라. 어떤 부모도 자녀가 타인을 해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지 않는다. 학교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부모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단번에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에 대한 사과와 화해의 제스처가 오고가는 것만으로 그 일이 원만하게 끝난다면 잘못을 저지른 이에겐 정말 감사하고 운좋은 일일 수 있다. 그런데 학교폭력이라고 정의된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책은 그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든 순간의 이야기다. 소장하고 있는 몇 권의 학교폭력 관련 서적들을 통틀어 이 고백서 한 권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대부분 이론서에 가깝다.) 저자의 솔직한 경험담과 진심어린 당부들이 고마웠다. 조언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게 여겨진다. 목차만 살펴봐도 학교폭력예방을 위해 가해자 및 피해자가 경험하게 될 상황을 두루 살피고 아이들 모두의 미래를 위한 최선의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저자의 애씀이 느껴진다. 책 뒷표지의 김영덕님의 추천사에 매우 공감한다. ‘이 책은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 그리고 상담사들을 전문가로 성숙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멘토 같은 책’이었다.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실용적인 교육서로 기꺼이 추천한다.
202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