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입김 - 작고 작은 것들을 찾아가는 탁동철과 아이들의 노래 자꾸자꾸 빛나는 4
탁동철 지음 / 양철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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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사람을 바꾼다시 쓰는 아이들의 교실 이야기

 

탁동철 선생님의 교단일기장은 참 재미나다순진하기도 하고 때론 어쩐지 심오한 철학 같은 게 엿보이기도 하는 아이들의 말들이 큰따옴표 안에서 통통 튀어온다아이들 못지 않게 본인의 엉뚱한 생각과 장난스런 행동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선생님 모습도 유쾌하다.

남의 잘못만 넘쳐나던 교실 일기장에 칭찬이 넘친다.(선행상 중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눈과 코와 입과 귀 그리고 손으로 세상의 참과 진실 등을 찾는 순간(손짓발짓 눈짓 코짓 귀짓), 하느님의 입김 숨결 눈빛이 스미는 아이들 걸음(하느님의 입김), 이 아이들이 쓴 생기넘치는 동시들.

 

새 학년이 된 첫 날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올해 꼭 하고 싶은 일을 묻는다.(20년 동안 안 해도 돼 중에서그러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글자 안 써도 되는 아이’, ‘책상 미는 아이’, ‘카드놀이 하는 아이’ 등에게 한가지를 꾸준히 해야 전문가 달인이 되니 멈추지 말아야 한다며 선생님 기억을 바꾸기 어렵다 하는데 이 부분도 참 재밌다. ‘난 한 번 기억을 하면 그게 아주 오래가. ’하며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아이들이 선생님 머리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대화의 흐름을 좇다 보면 뭔가 !’하는 깨달음이 찾아든다.

 

내일은 내가 아이들 앞에 서서 너무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얼굴로 말해야지글 잘 썼다고이렇게 글을 잘 쓰는 아이들과 1년을 지내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다고글자 쓴 아이가 연필 쥔 자기 손을 자랑스러워하도록.

그리고 내일은 아주 쉬운 받아쓰기 시험을 봐서 또 칭찬을 퍼부어야지글자 안 써도 되는 아이가 부러워하도록.

내일은 무지무지 더 재밌는 놀이를 해야지같이 안 놀고 저 혼자 따로 카드 하는 아이가 심심해서 죽을라 하도록.

내일은 운동장에 책상 한 개를 내놔야지책상 미는 아이가 운동장을 바다 삼아 마음껏 밀고 다니며 꿈을 펼칠 수 있도록앞으로 20년 동안 쭈욱그런데 20년은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하고.[2014.3]

(95-100)

 

꽃다지를 찾는다더 많은 꽃을 찾았다풀밭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고닭장을 짓는다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위해 눈CCTV를 달았다시인의 눈으로 사물을 본다시를 쓰고 시를 나누며 문제를 해결한다.

 

빛나는 것남을 높여주는 것눈에 안 보이는 것을 쓴다.(교무 선생님)

 

반짝반짝 선생님

 

교무 선생님은 빛이 나.

앞머리가 없어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아.

과학시간에

오우.” 감탄할 때

눈에서 빛이 나.

애들 칭찬할 땐

입에서 빛이 나.

선생님은 빛을 뿜어내는 사람

언제나 빛이 나

어디서든 빛이 나.(4학년 황현서, 167-168)

 

29바퀴라니이건 말려야 한다운동장을 그렇게 많이 뛰라고 시킨 사람은 없다그냥 선수가 하고 싶은 사람은 선수를 하라고 했을 뿐이다선수가 되는 조건은 고생’, 고생을 하고 싶으면 선수 하라고힘들게 연습해서 꼴찌를 하라고연습하느라 고생한 꼴찌가 연습 안 한 1등보다 값지고 자랑스럽다고그런 사람만 우리 학교 운동선수로 뽑겠다고짜장면은 사 주겠다고 했다아이들 대부분이 고생을 하고 싶다고자기는 선수가 되겠다며 운동장을 뛰고 있다설악산 훈련은 운동장 한바퀴도 헉헉거리며 지옥을 들먹이던 아이들이 육상 훈련은 뛰고 또 뛴다자기는 뛰는 게 좋단다제발 그만 뛰라고 말려도 말을 안 듣는다말리는 게 고생이다.[2016.6] (계단훈련, 222-223)

 

아이들이 선생님이 된 날들의 일기도 참 재미있다선생님 노릇을 제대로 한다친구가 선생님이 된 날 아이들이 쓴 글들을 읽다 보니 절로 소리내어 웃게 된다.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며 탁 선생님의 믿음에 동감한다.

시는 사람을 바꾼다’(330)

 

나도 교단일기를 썼던 적이 있다매일은 못썼어도 꽤 노력했다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과 오래 기억하고 싶었던 생각들을 꼼꼼하게 적어두어야겠다고 매번 다짐하면서도 쉽지 않았다수업준비와 행정업무개인적인 사정들 등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핑계는 많았다뭔가를 써야지 생각해놓고 그 날에 경황이 없었다면 소중했던 기억과 깨달음들은 이내 희미해지고 그 날의 일기는 공란이 되었다아이들과 이런 말 저런 말을 주고받는 그 순간들은 내가 아이들의 세계에 잠시 속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그 말들 중 일부는 가슴에 깊이 새겨지기도 했지만기록되지 않은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많은 말들이 잊혀졌다그것이 늘 아쉽고 안타까워서 매년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마다 다시 교단일기를 잘 써보리라 각오를 다지곤 한다.

탁동철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으며어쩌면 이렇게 아이들의 말들을 고스란히 잘 새기셨나 감탄했다아이들과 함께 생활했던 날들을 마치 지금 이 순간 눈앞에서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만큼 꼼꼼하게 적어두신 것을 보며 좀 더 주의깊게 일상을 바라보고 마음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탁 선생님의 교실 수업은 참 즐겁다책 속에는 놀이할 것 투성이놀이로 공부한다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논다신나게 놀고 쓰는 글은 살아있는 글이다글쓰는 선생님의 제자들답게 아이들의 글도 완성도가 높다함께 시를 읽고함께 시를 쓰고마음을 나누는 교실시심이 넘치는 교실예쁘고 부럽다탁 선생님의 교실에 잠시 다녀오니 마음이 내내 뿌듯하다아이들과 함께 나눌 시를 챙겨봐야겠다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시를 써봐야겠다.


201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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