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심리학 -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
레이철 시먼스 지음, 정연희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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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소녀들의 심리학>(레이첼 시먼스, 양철북)을 다 읽었다. 짬이 날 때마다 읽어서 처음 읽은 날로부터 거의 한 달이 다 되어 읽게 되었다. 작정하고 덤비면 한 시간만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던 것은 그만큼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해서였다. 공감하고 또 공감하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책 속 추천평들이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나 역시 이 책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런 사례집은 처음이었다. 진작에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을 폭로하는 일은 소녀들 사이에서 금기시되어 왔다. 나 역시 그 세계를 겪으며 폭로보다는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믿어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 '착한 사람'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착하게 산다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우리는 더 따뜻하게 살아야 한다.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한 편은 괴롭히고 한 편은 고통을 견뎌야 하는 관계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관계 공격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서로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물론 이 해법이란 것도 실천하기엔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바로 해보겠다는 의지 아니겠는가?


 


다음은 부모가 딸에게 할 수 있는 잘못된 반응(-)과 더 나은 반응(+)의 예이다.(335쪽부터)


 


(-) 다 지나갈거야./누구나 다 겪는 일이란다.


(+) 그렇구나. 정말 속상하겠다. 안타깝구나. / 엄마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단다.


 


(-) 어쨌든 나는 처음부터 그 아이가 마음에 안 들었단다. / 왜 그런 친구들이랑 노는 거니? / 내가 ~하라고 얼마나 타일렀니?


(+) 정말 안타깝구나. 그 친구랑 이야기는 해봤어? / 다음에는 어떻게 하고 싶니?


 


(-) 네가 어떻게 행동했기에 그렇게 됐니?


(+)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같이 생각해볼까?  /(교사나 상담교사와 상의하기)


 


(-) 학교에 당장 전화해야겠다.


(+) 엄마가 선생님이랑 이야기해볼까?


 


(-) 여자아이들은 다 그래. 너도 익숙해질거야.


(+) 여자아이들이 화날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유를 설명한 연구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


 


(-) 하지만 너희는 아주 좋은 친구였잖아!


(+) 언제부터 그랬니?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나니? 그만두게 할 방법이 있을까?


 


(-)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진심은 아닐거야.


(+) 장난으로 그러지 않은 걸 어떻게 아니? 그 애들이 정말로 너를 괴롭히려고 그러는 게 확실해?


 


책의 마지막에 작가는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는 여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가장 후회되는 건 그때 말하지 않은 거야.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 또는 타인을 향한 정서적 지지에 인색한 것 같아 안타깝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야겠다. 인색한 것이 아니라 표현 방법을 잘 알지 못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일게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받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공감하기'에 서툴다. 소녀들의 은밀한 공격도 결국은 서툰 감정 표현의 부작용 같은 게 아닐까? 공감받지 못할까봐 지레 겁먹고 센 척 하는 거다.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나와 다른 타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동안 감춰졌던 이야기들을 풀어내 한 때 가해자였거나 피해자였던 소녀들로 하여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해주고,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그 고통의 시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자들의 세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대체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내게도 이 책은 치유의 시간을 마련해줬다. 도움을 받았고, 다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유익한 독서였다.


201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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