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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나는 자연과 벗삼아 살고, 자연을 찬미하는 글을 쓰는 작가들 역시 좋아한다.
이는 어쩌면 내가 그러한 삶을 지극히 동경하고 있지만, 그 삶이 당장 내게 허락되지 않은 탓에 다른 이들의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훔쳐보며 대리만족의 감정을 소비하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완서님의 이번 산문집도 그런 이유에서 나의 마음을 끌었다.
글차례만 보더라도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건다던가 꽃출석부, 호미와 흙길을 예찬한다는 제목들이 진작부터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그녀가 자신이 바라는 삶에 대한 노력을 매우 충실히 하고 있으며 주어진 것들을 최대한 감사하게 여기며 즐기는 모습들은 나의 황혼도 그와 닮아가기를 바라는 모습과 자주 오버랩되고 있었다.
'나이듦'이란 어떤 것일까?
늘 지금보다 십년은 아니 오년만 그도 안된다면 일년만이라도 돌이키고 싶다고 말해온지 십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후회가 많은 삶이었나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리 말하는 입버릇인 셈이다. 그리고 자꾸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늦게나마 알게 된 진실과 진심에 좀 더 너그럽게 대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깨닫게 될 것들은 내가 살아가야 할 날만큼 많고 많을 것이다.
몇 년 전 일흔을 넘은 이 지혜로운 작가도 살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후회하고 있다니 삶은 끝나는 날까지 완성할 수 없는 숙제가 아닌가. 나, 제대로 크려면 참말로 한참이겠다.
작가의 일기는(일기라도 해도 될까?) 내가 더욱 깊게 생각할 수 없었던 시선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사소한 배려, 정직한 노동, 소통을 깊게 하는 상상,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랄까.
호미자루 들고 김매듯이 멈추지 않고 살아왔다는 그녀의 고백이 약해질 때마다 섣불리 포기를 생각하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가 그녀만큼 나이를 먹었을 때, 그녀만큼만 사색하고 삶을 관조하며 사랑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008.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