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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은 걷는 사람이다. 도시를 걷듯이 책 속을 걷는다. 걸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주변부와 중심부를 자유롭게 오가고, 이곳과 저곳, 여기와 저기를 가로지르며, '당연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고 '물론의 세계'를 흔들어 놓는다. (책 날개(앞))

이 책은 저자인 정수복의 책, 공간, 시간에 대한 에세이며 동시에 독자가 책과 나누는 소박한 대화의 기록이다. 책을 예찬하는 사회학자 정수복, 책을 쳐음 펴들자마자 읽은 저자 소개글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책으로 향하는 존재"라는 철학자 레비나스의 글을 덧붙여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 책이라는 길을 걸어 책으로 향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마치 길동무를 만난듯 이 책이 반가웠다. 

특히하게 이 책은 '독자권리장전'을 선포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자권리장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사보시라^^).

01. 책을 읽을 권리
02. 책을 읽지 않을 권리
03. 어디에서라도 책을 읽을 권리
04.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
05. 책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을 권리
06.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07. 다시 읽을 권리
08.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09.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10. 책에 대한 검열에 저항할 권리
11. 책의 즐거움에 탐닉할 권리
12.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 읽을 권리
13. 반짝 독서를 할 권리
14. 소리내서 읽을 권리
15. 다른 일을 하면서 책을 읽을 권리
16.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을 권리
17. 책을 쓸 권리

약간의 '뻥'을 보탠다면 나는 독자권리장전을 읽고, 약간의 쾌감을 느꼈다. '도로'를 걷다가 '길'을 만난 느낌이랄까? '선생'을 만나다가 '동무'를 만난 느낌이랄까.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위의 17가지 권리를 모두 실행하며 읽어보았다(16번과 17번은 구조적으로 힘들기에 패스). 그래서 완독하기까지 오래걸리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기차를 탔다. 녹색의 들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달아난다. 산과 들과 나무와 풀과 전신주가 빼앵빼앵 돈다. 나는 문득 생각하였다. '세월이라는 것, 시간이라는 것은 이것보다 몇백, 몇천 배 빠를 터이지.' 나는 공연히 멍- 하고 앉은 것이 두려워 책을 꺼내어 읽었다" (177쪽)
이 책은 '책 예찬'으로부터 시작하여 책을 읽는 때와 장소에 대해 그야말로 '깨알같이' 풀어놓았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정수복의 '책인시공'이 아니라 나의 '책인시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책 제목이 <책인시공>이므로 이 책을 내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읽었는지 간증을 하는 편이 어설프게 감상문을 쓰는 것보다 백 번 나으리라. 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은 '시공'에서 읽었다.

+AM 8:30-9:30 사이, 출근길 달리는 버스 안
버스에서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한 숨의 잠'이 꿀같이 소중한 아침 시간에 책읽기란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닭들이 물 한모금 마시고 하늘을 보듯, 나는 이 책을 조금 읽고, 창 밖을 보기를 반복했다. 책도 삶이고, 창 밖 풍경도 삶이라... 그 흐릿해지는 경계 혹은 서로 다른 세계의 만남이 은근히 어울렸더랬다.

+PM 3:00 무렵, 사무실 내 책상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공간, 사무실 내 책상. 오후 3시 무렵은 모든 뇌 활동이 정지한 듯, 나른하다. 그때... 숨을 쉬듯 책을 들고 읽었다. 특히 '서재에서 책을 읽다' 부분을 책상 앞에서 읽으니... 더 재미있었다. 내 책상 뒤에서 나를 째려보고 있는 책장의 다른 책들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마침, 이런 구절도 발견했더랬다.

모두 깊이 잠들어
적막해오는 이 시각에

이렇게 혼자 앉으면
비로소 하루의 평온이 찾아온다 -윤건차, <내 책상> 중에서 (105쪽)
물론, 시 속의 시각이 오후 3시 무렵은 아닌 듯 하지만.

+토요일 오후, 커피숍
책읽기에 커피숍만큼 적당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약속없는 토요일,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오후에 느릿느릿 커피숍으로 가, 책을 펴들고 읽으면, 일주일의 피로가 쏵~ 풀리는 느낌이 든다. 책읽기란, 치유의 과정이 맞다, 는 생각을 해본다.

+잠들기 전, 이불 속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비스듬이 누워 책을 읽다가 스르륵 잠들 무렵, 책을 덮고 이불속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을 즐긴다. 그리하여 이불 옆에는 읽다만 책들이 5권 정도 쌓여있다. 변덕쟁이 독자가 그날 기분에 따라 책을 선택하여 읽다 잠들기 때문이다. 

독자 권리 장전에 의하여 책을 읽고, 나의 '책인시공'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깊이 고민하며 잘, 읽었다. 길에서 만난 동무처럼 반가운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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