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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말하다 ㅣ 김혜리가 만난 사람 1
김혜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1.
가끔 '말'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진실인 척하는 것인지, 그 흩어진 '말'들에 대해 나는 책임을 질 수 있는지, 결과적으로 그 '말'들이 지어낸 감옥에 나를 가두게 되는 건 아닌지... 가끔 나는 '말'을 의심하곤 한다.
2.
언제부터인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말'이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서기까지는 차곡차곡 쌓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은 말의 허무함을 신뢰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지녔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말하게 된 사람들'이 그녀에게 흘리는 '말'들은 허무하게 흩어져버리지 않고, 그 말들끼리 엮이고 엮여 그들의 진심이 되고, 삶의 무늬가 되고, 소통을 향한 몸짓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어쩌면 김혜리는 이 책에 나온 20명의 '그들'과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 '중매쟁이'가 아닐까.
4.
<씨네 21> 정기 구독을 하며 영화와 관련된 글들로 가득찬 그 책에서 김혜리의 글을 읽었을 때 주말 오후 명동 한복판에서 조용하고 한가한 작은 찻집에 들어섰을 때의 안도감과 편안함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글은 곱게 우려낸 찻물처럼 은은하고 깔끔했으며, 글을 통해 인터뷰를 하는 상대방을 향한 그녀의 배려와 애정을 느낄 때면 '아, 내가 참 좋은 사람을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쪽이 든든해지곤 했다.
그녀는 말한다. 인터뷰란 '상대방을 사랑하는 과정'이라고. 과연 그랬다. 그녀는 인터뷰를 하기 전부터 상대방을 사랑해버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며 조심스레 상대방의 인생을 지지해준다. 그런 그녀에게 '싫어하는 인터뷰이'가 있을까? 문든, 궁금해진다. 책을 읽으며 내가 몰랐던 그사람들의 어떤 부분을 사려깊고 예민하게 끄집어내어 보여주어서, 영화배우, 소설가, 영화감독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각인되었던 '공인'이 '사람'이었음을 알게되어 참 고마웠던 인터뷰집이다.
5.
'소통'이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의 삶을 귀담아 듣고, 그 진심을 왜곡되지 않게 표현하는 능력을 지닌 김혜리... 그녀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참 부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