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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겉껍질이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면, 나는 겉껍질을 벗기고 책을 읽다가 책을 보관할 때만 겉껍질을 쓰는 편이다. 그래서 겉껍질이 벗겨진 속표지를 많이 보았는데, 속표지는 겉껍질과 똑같거나 아니면 진적색, 회색 등 무난한 단색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겉껍질을 벗기자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너무도 예쁜 연분홍에 반짝이는 금박글씨, 그리고 연보라색 가름끈까지. 너무 예쁘지 아니한가. 책을 받자마자 인증샷을 찍은 건 또 처음이었다.
이렇듯 속 표지가 너무나 예뻐서였는지, 아니면 주인공의 세심한 말투 때문인지.
나는 처음에 주인공이 여자인 줄 알았다. 설마 주인공 이름이 '폴'일 줄이야.
주인공 이름을 잘 지은거 같다. 읽다 보면 폴(paul)이 아니라 폴(fall) 같으니까.
사랑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빠져 죽은 남자.
연인은 영원히 사라졌지만, 사랑은 남아있는 시간에 있는 폴이 쓴 자서전.
인것 같은 이 책은, 시간의 흐름 순으로 되어 있지 않다.
폴과 수잔의 삶 처럼, 그들의 하숙집처럼, 그리고 우리의 삶 처럼 뒤죽박죽 엉망이다.
그래도 크게 3장으로 나눠진 이 책에서.
1장의 주어는 소년인 '나'이고, 2장의 주어는 청년인 '너'이고, 3장의 주어는 어른인 '그'이다.
1장의 아주 먼 과거는 바보같이 행복했고, 2장의 먼 과거는 바보같이 냉정했으며, 3장의 가까운 과거는 현명해지면서 정리를 하였다.
사랑을 주제로 한 성장형 소설이랄까.
만약 폴이 19세의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소년이 아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어른이'인 19세 였다면 어땠을까.
이 소설에서 19세란 나이는 사회의 이해에 대한 미성숙을 나타내는 것 같다. 사회적 체계를 무시하고 살아나갈 수 있을것 같은 무모함을 숫자로 표현한 나이라고 할까.
여튼, 폴이 더 많은 세상을 겪고 수전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폴의 연애는 행복하게 끝맺었을끼?
연애의 행복한 끝맺음이란 뭘까? 결혼은 아니라 생각한다.
조운도 연애할 때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그녀를 배신한 그놈과 결혼을 못해서 불행했을까? 아님 결혼해도 그가 먼저 죽는다면 그것도 슬픈 끝맺음일 텐데. 사랑하는 사람이 변치 않고 죽을때 까지 사랑하다 동시에 죽는 것만이 행복한 끝맺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구상의 연애에 행복한 끝맺음이 몇이나 될까. 절대적인 양으로 슬픈 끝맺음만 있는 것은 아닐까.
폴은 수전을 사랑하는 만큼 그 나이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대한을 했다. 그럼에도 현실이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이었을 뿐이다. 현실에 짓눌려 폴의 수전에 대한 연애가 끝났다고 해도 폴의 수전에 대한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소설에서 말하는 폴의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란 우리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다 바친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프다.
책은 너무나 달콤한 마카롱 처럼 생겼는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너무나 아프고 시리다.
폴도 수전도 모두 너무 잘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 나는 그들 중 하나라도 '좀 더 잘하지 그랬어'라고 다그칠 수 없다.
2018년 1월에 출간된 이 책이 벌써 번역이 된데다 무려 예쁘게까지 나왔다.
글자체도, 각주도, 번역도 너무나 친절해서 읽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내용이 아파서 그렇지.
출판사가 열일하신게 책의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느껴진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당신도 이 책을 읽고 폴과 수전을 응원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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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서평단에서 책을 지원받아 글을 남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