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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
김현 지음, 산제이 릴라 반살리 외 각본 / 북스퀘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토요일 저녁 내 손에 도착했고, 정신없는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읽어야지 하며 두었다. 지난 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잠이 오지 않았다. 요즘들어 두근두근 마음이 불안불안해서일까? 신경을 갉작이는 일들이 많다. 누우면 3초 안에 잠드는 내가 며칠째 곤함에도 불구하고 밤 잠을 설치고 있다. 내일로 미루어둔 이 책을 잡았다. 아이들의 아침밥 걱정을 하면서도 결국 책을 다 읽고야 말았다. 손을 뗄 수 없었다.
표지에서 사색하는듯한 깊은 웃음을 웃고 있는 이튼, 그는 당대 최고의 마술사였다. 공연 중 사고로 인해 목 이하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고, 그의 삶에 굴하지 않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그와 같은 이들의 희망이 되어주었으며, 라디오 DJ까지 하며 열정적인 삶을 보여왔다. 무엇보다도 유머를 잃지 않은 그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안락사, 존엄사를 위한 청원서를 제출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죽음은 내 영역이 아니었다. 올 해 초, 가족이 함께 하고 있지 않은 순간 다가올지도 모를 편찮으신 아빠의 위급 순간에 산소마스크를 사용할건지 사용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엄마와 함께 내려야했다. 회복을 기대하는 기다림이 아닌 생명을 단지 잡아두기 위한 연명장치는 하지 않을거라는 엄마의 결정에 동의를 했다. 당신의 경우라도 이를 선택하라는 엄마의 말씀.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모습으로는 살았다고 할 수 없으니 가야할 길을 수순대로 가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 그 때 당시는 아빠의 위급 상황이 그렇게 빨리 닥칠 줄 몰랐다. 막상 아빠를 보내 놓고보니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의 생각이 그러할지라도 아빠는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더 계시고 싶어하진 않으셨을까? 부모님이 아닌 자식이라도 그렇게 했을까? 죄송해 울지도 못하는 깊은 아픔과 슬픔의 공간이 생겨버렸다.
사람은 경험만큼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지난해였다면 이튼의 안락사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을 했을거다. 나의 종교관으로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튼의 입장에서 읽어가게 되었다. 동의를 한다기 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이튼이 이해가 된다고 할까. 하지만 이해. 딱 거기까지다. 적어도 이튼의 경우엔. 그에겐 그를 위해 헌신적인 소피아가 있고,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고 그에겐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머가 살아있었고, 고의적인 사고로 자신을 그렇게 만든 옛친구의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갖고 있었다. 용서도 하고,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그가 원하는 영원한 잠에 빠질 수도 있을듯했다.
그는 십여년의 세월을 잘 참아왔다. 힘들었겠지만 잘 이끌어왔다. 이젠 사랑하는 그녀까지 그의 곁으로 왔는데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청원은 기각되고 그는 가야할 길을 굳이 포기하지 못할까? 결국 그는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이별의 파티까지 성대하게 열었다.
비가 새는 집, 바닥나 가는 재정이 그의 선택을 부추긴 것은 아닐까?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던 삶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할거란 두려움이 생긴건 아닐까? 아주 오래 전 <가난은 죄가 아닐진데 죄가되어 죽습니다>란 어느 사형수의 책 제목을 들은 기억이 있다. 요즘 사람들은 말한다. "가난은 죄다."라고. 쉽게 동의할 말은 아니지만 부정도 못한다. 이튼에게도 그런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그의 삶을 도와주는 여러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그리고 치료를 위한 비용도 들어갈테니까. 산소마스크를 쓰게되면 생명이 소진되지 않는한 인간으로 산소마스크를 걷을 수 없다했다. 에두르고 싶지만 그래서 그 이유로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죄다. 십여년전 난 그러지 않을거라 맹세했건만 내가 그런 선택을 하게될 줄은 몰랐다.
건강악화로 타들어가는 생명을 스스로 느껴가고 있는 두려움이었을까? 간혹 인터뷰로 죽고 싶어도 못죽어 산다고 하시는 어르신들의 눈물어린 말씀들이 떠오른다. 내가 봐도 살고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을듯한 상황이었기에 마음이 저렸나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봐도 이튼의 경우엔 선택해선 안되는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안락사, 존엄사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이튼의 경우는 아닌듯하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건 소피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안락사, 존엄사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진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은 어렵지 않다. 이튼 때문인듯하다. 그의 유머 때문인듯하다. 후반부로 가며 활력을 찾은 소피아, 붉은 장미가 갑자기 꽃을 터트린듯했다. 이튼을 사랑하는 많은 친구들 덕분인듯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했다.
소설을 김현이란 작가가 썼다하고,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각본을 적은 이도 있기에 이게 뭔가했다. 각본과 영화가 먼저고 김현이란 작가가 소설로 옮겨썼다는 이야기인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 영화가 지금 극장에 걸려있는듯했다. 영화는 책과 또 다른 감동을 줄까? 표지의 배우를 보니 영화도 궁금해진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생각해봐야할 문제를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