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비극으로 -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 위대한 순간 4
김기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고전은 인문학 수준의 척도다.

고전 연구나 원전번역의 현실을 보면 그 나라의 인문학 현실을 알 수 있다.

서양 고전의 큰 축은 고대 그리스 서사시와 그리스 비극이겠다.

다행히 우리는 천병희 번역으로 원전번역은 이루어져 있다.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천병희를 제외하면 원전번역은 거의 없다. 대개 중역이다.

그 몇 안 되는 원전번역자 중 하나가 김기영이다. 소포클레스의 세 작품을 이미 옮겼다.

이 책 저자약력을 보니 지금은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을 번역중인 모양이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하도 유명해서인지,

사람들이 흔히 아는 그리스비극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정도다.

공부 좀 한 사람들은 <안티고네>도 내용은 대강 알 것이다.

현대의 내노라하는 철학자나 정신분석가, 문학비평가들이 워낙 많이 이야기해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오늘날까지 작품이 전해지는 그리스비극 작가는 고작 셋이다.

아이스퀼로스가 가장 선배고,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그 뒤를 잇는다.

주변에 물어보면 아이스퀼로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인문학 미래는 참 밝다. 현실이 워낙 바닥이라서.

 

이 책은 그리스비극 가운데 아이스퀼로스의 그 유명한 오레스테이아 삼부작 해설서다.

소포클레스 해설서가 아니라 다행이다. 우린 지금 편식이 너무 심하니까.

트로이 원정을 떠난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그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이야기.

그런데 아가멤논을 죽인 이가 바로 그 아내, 즉 오레스테스의 어머니다.

사실 그리스비극 가운데 '삼부작'이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 이것이기에,

비극의 형식과 창작원리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작품도 없겠다.

여타 그리스비극 해설서처럼 줄거리 소개에 그치지 않는 점도 좋다.

당시 문명의 발전상 속에서 비극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개인적으론 야만적인 신화의 세계에서 가부장적 질서(법)의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이 삼부작에 극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런 질서의 구현과 이를 위한 시민 교육이 곧 비극의 목적이었으리라.

마지막에 아테나 여신이 주재하는 '재판' 장면이 등장하는데,

'현대적인' 시민 배심원 재판이라 신선했다.

물론 신의 편파판정이 가미되긴 했다. 

그러나 '법'의 기원에 '신'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인간적 현실이다.  

비극은 빛나는 문명을 이루었던 도시국가 아테나이의 발명품이다. 

그 문명의 결정체라 하겠다.

기원전 5세기에 이런 비극작품이 나왓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그런데 비극이라곤 해도 마지막은 의외로 해피엔딩이다.

그렇다고 앞에 일어난 비극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 비극은 비극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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