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는 공간을 짓는 일이다. 그러니 유기체와 다를 바 없다.
'건축은 몸이다'라고 누군가 이미 말한 지 모르겠지만, 뭐 난 그렇게 생각한다.
건축가 문훈 앞에는 곧잘 '파격'이란 수식이 붙는다.
하지만 난 건축에서 파격은 그리 탐탁치 않게 생각해왔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그렇고 그런 건축가이거니 했다. 처음 건축에 관심을 가질 땐 외형을 봤다.
대개 그럴 것이다. 그러다 점점 겉만 보고 말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안에 머물러 보지 않고 건축을 말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솔직히 문훈이 지은 건축물에 들어가본 적은 없다. 그러니 판단 유보.
하지만 이 책은 참 재미있다. 그림책에 가까운데 처음엔 상상적 건축 스케치 모음집이려니 했다.
하지만 꼭 건축 도안들은 아니다.
자유분방한 상상적 그림 노트인데 그 안에 자연스레 건축적 감성이 스며 있다.
그림들은 하나같이 괴이한 유기체들을 닮았다. 그래, 묘하게도 건축은 여기서 또 몸이다.
문훈의 '물질적' 상상력이 여기 집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 글 제목을 '건축의 속살'이라 해보았다. 만져질 수 있는 상상적 형상들이다.
그림들을 보면서 문훈이 지은 건축물이 살지 못할 곳들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파격적이고 특이한 건축이더라도 그리 공허하진 않겠구나 싶었다.
책의 만듦새도 훌륭하다. 종이와 그림의 어울림이 좋다. 따지고 보면 책도 건축이겠다.
여담으로, 이 책을 보며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스퀴텐/페데르스의 그래픽노블 '어둠의 도시들' 연작
김한민의 <혜성을 닮은 방>
L. Feireiss의 Beyond Architecture: Imaginative Buildings and Fictional Cities
같은 책들이 떠올랐다.
제목은 생각 안 나지만, '상상적 설계도들'로 가득했던 원서도 있었다.
홍대 근처 어느 헌책방에서 구했을 텐데 집안 어디 책더미에 깔려 있는지 요즘 보이지 않는다.
그 책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