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지의 표본
오가와 요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수첩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공교롭게도 일본어판 원서 표지에 이끌려 좀처럼 보지 않는 소설을 펼쳤다. 저 상자 안에 갇힌 사물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정교한 조각, 꽉 짜인 틀, 사물과 사람 사이의 어떤 교감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우리가 아는 '일본적 감수성'의 일부가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한국어판 표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책을 읽고 나서야 일본어판과 한국어판 표지 사이의 이 불편한 거리감이 이해되었다. 둘 다 이미지의 과잉인데, 한쪽은 사물에, 다른 한쪽은 감정에 치우쳐 있다. 초점을 사물에 대한 태도에 두느냐, 몽환적 사랑의 감정에 두느냐의 차이다. 하지만 둘 다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둘 다 불편하다.

굳이 말하면 몽환적 사랑에 더 가깝다. 하지만 표본실이라는 사물의 밀실을 배경에서 걷어내면 이 소설은 그나마 거둘 만한 매력도 잃고 만다. 표지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두 이미지 사이의 괴리가 내가 본 이 소설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표본으로 가두어서라도, 또는 구두가 자신을 흡수하더라도 그 사람 곁에 영원히 남겠다는 사랑은 자기파괴를 동반하는 에로티시즘의 순수한 열망이라기보다는 낭만적 사랑의 시대착오에 가깝다. 표본실을 찾아온 한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악보의 음악을 표본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표본실의 장인이 내놓는 해결책이 너무나 '허구적'인 만큼이나 표본실의 사물들은 생명력을 오히려 질식당한다. 사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이 소설의 자기도취적 페티시즘은 죽은 자의 유품을 불에 태워 영원히 떠나보내는 제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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