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니에는 수다스럽다. 그의 산문에는 식인귀에 탐닉하던 [마왕]의 작가 투르니에가 없다. 하긴 소설은 그의 가면일 테니. 그래도 그가 사는 사제관 옆에는 여전히 무덤이 놓여있다. 에밀 시오랑에게 독설과 아포리즘이 있다면, 투르니에에게는 유머와 수다가 있다. 그러니 많은 투르니에의 책 가운데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스럽다면 부디 그림에 현혹되지 말고 무조건 두꺼운 책부터 읽기를 권한다. 모름지기 모래 속에 진주가 있는 법이다! 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다.(그건 신의 일이다.) 작가는 유에서 유를 창조한다. 글은 편집과 댓구의 예술(기술)이다. 자연과 몸, 사물에 관한 투르니에의 글은 심심하다. 이 책의 참맛은 중후반부터 시작된다. 원전이 풍부하게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림, 문학, 이미지, 인물들..그런 가공된(!) 텍스트들 위에서 작가는 진가를 발휘한다. 작가는 어디까지나 요리사니까. 사변으로 요리하고 인용으로 양념치는. 탐식가는 으레 말이 많다. 포도주를 속으로만 음미하는 것은 프랑스인에겐 부질없는 일이다. 포도주는 혀로 느끼고 입으로 뱉어야(찬미해야) 제맛을 안다. 분위기로 마시는 게 포도주 아닌가. [예찬]은 샴페인처럼 거품 풍성한(!) 글의 만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