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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원래 그래? - 남성 性을 가로지른 모리오카 교수의 성 담론
모리오카 마사히로 지음, 김효진 옮김 / 리좀 / 2005년 10월
구판절판


글쓴이도 지향하는 바이지만, 여성주의자들을 비롯해 인간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타인을 자기의 욕망을 위한 단순한 발판으로 삼지 않는 다양한 섹스' '쾌락이 목적이 아닌 다정함을 추구하는 섹스'도 실현가능할 것인가? -21쪽

팬티가 보일 듯 말 듯한 상황이 우리에게 종교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씩 보이지만 절대 손이 닿지 않는 숭고한 것들 안에서 인간은 전통적으로 '신'의 모습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미니스커트 안의 팬티가 성스러운 색인 '백색'이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37쪽

'소외체험'-43쪽

일생에 걸쳐 수도 없이 반복되는 추락하는 느낌, 이것이야말로 '남성 불감증'의 전형적인 증상인 것이다. 물론 섹스를 해서 좋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좋아하는 여자와 섹스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정신적인 만족감과 행복감이지 절대로 사정에서 온 만족은 아니다. -49쪽

남자의 경우 역시 발기부전, 조루, 지루 세가지가 큰 관심사다. 제대로 서는가, 하고 싶은 바로 그때 사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에 비해 사정해서 느꼈는지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니다. -50쪽

섹스는 불감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옆집 잔디는 푸르다'고 오해하며 아무 말 없이 하는 행위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54쪽

남자들은 사정을 '빼낸다'고 표현한다. 누가 처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표현이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풍선에서 공기를 기세 좋게 '빼낸다'는 이미지로 남자의 사정을 이해해도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

보통 정액은 정자가 차올랐다고 할 때가 많다. 그대로 놔두면 정액과 정자는 점점 몸안에 꽉 찬다.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그때그때 사정해서 몸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61쪽

남자의 성에는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부분과 이후에 후천적으로 학습한 부분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정한 다음 밀려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공허감은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면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남자의 구체적인 성 행동은 후천적으로 학습한 부분이 상당이 크다고 생각한다. -65쪽

'여성 증오'에 사로잡힌 남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느끼는 여자'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이 포르노를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있다. 싫어하는 여자를 마음대로 지배하여 여자의 쾌락을 자유롭게 조종하는 듯한 내용의 포르노를 봄으로써 마치 자신이 여자보다도 우위에 선 것 같은 착각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고 싶어하는 것은 '느끼는 여자'에 대한 복수인 것이다. -68쪽

포르노가 건강한 오락문화로 발전할 수 없는 이유는 포르노의 바탕에 깔린 생각이 '인간에게 상처 입히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혀 쾌락을 얻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곳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 바로 포르노이다. 인간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다는 기분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관계없이 인간 누구에게나 숨어 있는 악일 것이다. 그 악의 토양 위에서 핀 꽃이 포르노인 것이다.-74-75쪽

'내 몸은 더럽다'고 하는 감각의 유래.
정액을 내 뿜은 성기의 주변이다. 왜냐하면 섹스를 하든 자위를 하든 사정한 다음에는 반드시 성기에 정액이 묻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액을 닦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때 나는 내 몸이 가장 더럽다고 느낀다. (그리고) 성기에 묻은 정액을 닦는 행위는 난생처음 몽정을 했던 중학생 시절로 데려가버린다. -171쪽

몽정 때 나오는 정액의 더러움이 '내 몸은 더럽다'는 의식을 만들어냈고 사정한 뒤 찾아오는 어둡고 공허한 느낌이 '나는 불감증이다'라는 의식을 만들어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나는 자신을 긍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사정'이라고 하는 사건은 남자가 성을 느끼는 방식과 성을 사고하는 방식을 결정할 정도로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발기한 성기는 '팔루스phallus'라고 하여 남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는 '발기'보다는 '사정' 쪽이 남성에게 보다 근원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발기'가 아니라 '사정'을 중심에 두고 생각할 때 보다 선명해지는 심리학의 쟁점도 많이 있을 것이다. -176쪽

마초의 탄생 : 자신의 몸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나는 어떻게 했는가/ 나는 내 마음속 공허를 채우기 위해 '남자다움'에 손을 뻗었다. 이제 여성이 될 수 없으므로 자신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자기 긍정하기 위해서는 이 몸을 좀더 '남자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몸만 아니라 정신도 행동도 '남자답게' 해야한다. 그것에 성공하면 나는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틀림없이 긍정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78쪽

지금까지 '남성 불감증'과 '느끼지 못하는 남자'를 비슷한 의미로 써왔다. 그렇지만 여기서 이 두 가지를 확실히 구별해두고 싶다. '느끼지 못하는 남자'란 '남성 불감증'과 '자기 부정'을 자신 안에 숨겨둔 채 그것을 가능한 한 외면하려 들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는 남자를 가리킨다.-184쪽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남성 불감증'을 안고 있다. 불감증을 그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외면하고는 어딘가에 더 굉장한 쾌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느끼지 못하는 남자'는 자신의 몸을 더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사랑할 수 없다. 때로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와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남자다움을 손에 넣으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185쪽

'느끼지 못하는 남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 먼저 자신의 몸이 '불감증'이라는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해야 한다. 배뇨와 같은 사정과 그 다음에 오는 공허한 느낌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체념하는 것이다. 불감증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직시하고 '불감증이지만 그래도 전혀 문제는 없다'고 선언하는 방법이 있다. 틀림없이 불감증이지만 치료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88쪽

'불감증이지만 다정해지고 싶다'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남성이 사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정함으로 이어지는 '불감증'이라면 오히려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도 좋지 않을까? ....
'패배감'이나 '자기 부정'이나 '복수'로 향하기 쉬운 불감증 체험을 생명이 깃든 존재, 상처받기 쉬운 존재에 대한 '다정함'으로 돌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불감증을 다정함의 원천으로 바꾸기, 여기서 '느끼지 못하는 남자'에게 탈출구가 열린다. -194쪽

남자는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감동해서 자주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아버지의 사정 덕분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은폐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 배후에는 역시 사정과 연결된 불감증 문제와 '남자의 몸은 더럽다'는 의식의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197쪽

(왜 이제 새삼스럽게 남성으로부터 섹스에 대한 설교를 들어야 하는 비판은) 섹스 안에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여 경멸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구조가 완성되어 있으므로 그 사실을 자기 비판하지 않는 섹슈얼리티론이란 자기 바지 앞춤은 열어 놓은 채 여자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아저씨'와 똑같다는 이유였다. -199쪽

'남성이 자신의 아픔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가 과연 올 것인가?'하는 요지의 발언(에서부터) 남성학이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200쪽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같은 '사내다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쪽의 해악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 긍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종류의 '사내다움'을 회복하는 일은 별개다. 그 점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201쪽

글을 마치며 중 작가의 말 : 이 책은 조금 느슨한 형태의 '생명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6쪽

자칫하면 '쾌락추구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과 '욕망' 추구로 바뀌는'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단순히 성적 쾌락의 문제를 테크닉의 문제 혹은 성적 개방의 문제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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