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의 충고를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내가 쓴 글에서 ‘황폐화한 마음‘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를 뽑아 밑줄을 그어 보냈을 때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지만, ‘어디에도 없다‘를 ‘아무 데도 없다‘로 고쳐야 한다고 했을 때는숙였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라는구절을 두고 ‘서로‘는 격조사를 붙일 수 없는 부사라고 했을 때 나는 불평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로가 무슨 해병대인가. 한번 부사면 영원히 부사란 말인가.
그러나 내 글은 알게 모르게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고있다. 내가 꽃이 피었는가 묻는다‘를 버리고 꽃이 피었는지 묻는다‘ 로 쓰게 된 것은 오로지 선생의 덕분이다. ‘그대로‘나 ‘모두 같은 말에 가능한 한 격조사를 붙이지 않으려하는 것도, 나의, 너의 보다 ‘내, 네‘를 쓰려 하는 것도 모두 선생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상징주의에서부터 초현실주의까지‘ 라든지 ‘여행에의 초대’ 같은 말을 쓰고 나서 꺼림칙한 느낌이 남는 것도 선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