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사는 식물은 골칫덩어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살지 않아야 할 곳에서 번창하는 식물이 잡초다. 우리는 잡초의 대담성에 화를 내지는 않는다. 모든 씨앗은 대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잡초들의 눈부신 성공이다.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척, 화가 나는 척한다. 우리가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 아무 상관이 없다. 식물의 세계에서는 이미 혁명이 일어나서 인간이 개입한 모든 공간에서는 침입자들이 쉽게 원주민들을내쫓고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살아 있는 세포는 모두 기본적으로 작은 물주머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산다는 의미의 동사는 수조 개에 달하는 물주머니를 만들고 또 만들어내는 일에 불과하다. 이 일을 어렵게 만드는 한 가지 요소는 물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자랄 수 있는 모든 세포를 채우는 데 충분한 물은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 표면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지구 전체에 존재하는 물 1퍼센트의 1,000분의 1을 쟁취하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나무들은 제일 불리한 입장이다. 필요한 물을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닐 수 없기때문이고,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동물보다 몸집이커서 훨씬 더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제 현장에 나가면 먼저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가서, 주차를 한 다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이 무언의 규칙이 된 지 오래였다. 일단 높은 곳에 올라간 우리는 거기 서서 눈이 닿는 곳까지 멀리 바라보면서 아이디어가 우리를 찾아오길 기다린다. 가장 좋은 계획도, 좋은 자리에 서서 생각해보면 더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자세한 계획을 짜는 것을 그만두고 위에서 봐야 길이 잘 보인다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식물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 그들은 중대하고도 기초적인 면에서 우리와 다르다. 동물과 식물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내가 따라잡을 수없을 만큼 빠르게 지평선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식물을 연구한 후 나는 결국 그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이전보다 더 깊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끝날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깊은 의미에서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독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한 해에 나무 한 그루씩 심자. 마당이 있는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나무를 한 그루 심고 집주인이 눈치채는지 기다려보자. 만일 눈치를 채면 그 나무가 늘 거기 있었다고 주장해보자. 환경을 위해 나무를 심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하는 칭찬까지 더해보자. 집주인이 그 미끼를 물면 나무 한 그루를 더 심자. 둥치 부분에 철망을 치고 감상적인 분위기의 새집도 하나 매달아서 나무가 영구적으로 거기 서 있어야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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