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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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백신의 효과를 따질 때 그것이 하나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만 따지지 않고 공동체의 집합적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까지 따진다면, 백신 접종을면역에 대한 예금으로 상상해도 썩 괜찮을 것이다. 그은행에 돈을 넣는다는 건 스스로의 면역으로 보호받을 능력이 없거나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집단 면역herd immunity의 원리이고, 집단 접종이 개인 접종보다 훨씬 효과적인 것은 바로 이 집단 면역 덕분이다.

개인에게는 벅찬 복잡한 문제를 큰 집단이 풀어내는 건 예사로 있는 일이다. 다양성이 충분하고 반대의 자유가 있는 한, 집단은 어느 한 전문가의 생각보다 나은 생각을 낼 수 있다.

「백신은 다수 집단을 동원해서 소수 집단을 보호함으로써 효과를 발휘하지. 아버지의 설명이다. 이때 아버지가 말한 소수 집단이란 해당 질병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다. 인플루엔자의 경우, 노인들이다. 백일해의 경우, 신생아들이다. 풍진의 경우, 임신부들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 여성들이 제 자식에게 백신을 맞히는 건, 독신인 어머니가 최근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선택에 따라서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미처 아이를 완전 접종시키지 못한 일부 가난한 흑인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동참하는 일일 수 있다.

백신 접종 후 면역을 생성하는 항체들은 공장이 아니라 인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 제인 스미스의 말을 빌리면, <약학의 세계에서 최대의 구분은 생물학적 제제와 화학적 제제다. 즉, 살아 있는 물질에서 만들어진 약과 화학적 화합물에서 만들어진 약이다〉.
백신은 한때 살아 있었거나 지금도 살아 있는 유기체로부터 얻은 재료를 써서 면역계로 하여금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만든다.

저널리스트 티나 로젠버그도 이 책보다 더 크게 세상을 바꾼 책은 별로 없다고 인정했으나,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DDT는 환경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흰머리독수리들을 죽였지만, 『침묵의 봄』은 대중의 뇌리에 오래 잔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이 비난은 『침묵의 봄』 자체보다는 그 책의 상속인인 우리에게 가해져야 옳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DDT를 모기 퇴치제로 쓰지 않는 나라들 중 일부에서말라리아가 되살아났다는 건 사실이다. 요즘 아프리카 아동 20명 중 1명이 말라리아로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아이가 뇌 손상을 입는다.

HIN1 독감 범유행병이 절정이던 2009년 가을, 한 연구진은 사람들이 질병으로부터 보호받는다고 느낄수록 편견으로부터도 보호받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시험해 보았다. ... 〈계절성 독감 백신은 사람들에게 계절성 독감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작업이다〉처럼 백신을 오염의 관점에서설명한 글을 읽혔을 때는 질병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편견이 더 강화되었지만, 〈계절성 독감 백신은 사람들을 계절성 독감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한다〉처럼 백신을 보호의 관점에서 설명한 글을 읽혔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 <독감 같은 육체적 질병에 대한 치료법은 편견 같은 사회적 병폐를 치료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우리가 언젠가는 바람직하지 않은 세균을 죽이기보다는 바람직한 세균을 육성함으로써 감염에 대응할 수있으리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우리는 싸우지 않고 질병과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이야기를 읽은 기사의 제목은 〈몸속 미생물 정원을 가꾸다>였다. 이 은유에서, 몸은 이질적이고 낯선 것이라면 모조리 공격하는 전쟁 기계가 아니다. 우리가 적절한 환경에서 다른 많은 미생물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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