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여행처럼 - 지금 이곳에서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법
이지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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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일본어 스터디분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던 날 선물로 받았다.

그때의 나는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2개의 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었다. 기사 자격증 덕분에 입사한 중소기업에서는 고작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재입사한 곳에서도 3개월을 못 버텼다. 그리고 시작된 인턴, 계약직 생활들... 차라리 계약직으로 있는 생활이 나에게는 편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불안감이 아닌 자유로움으로 느껴질 정도로 삶이 버거웠다. 사회생활은 현실이었고, 그 현실을 받아들을 준비가 나는 아직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에는 몰랐다.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도망가기 위해 여러 나라를 고려했다. 한 번도 홀로 서 본 적이 없는 아이는 그나마 가깝고 외견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일본을 선택했다. 관심에도 없던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저금을 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2011년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로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 후쿠시마에서는 원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엔화는 1500원대까지 치솟았고 자국민들을 대피시키는 해외 다른 나라들의 행보를 보면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국 정부에 실망했다. 재력이 있는 일본인들도 해외로 떠난다는 말이 들려왔고,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진은 계속되었고,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은 개인이 조심해야 하는 정도의 것으로 치부되었다.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겪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내 남은 생, 내 건강을 위협하는 결정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본으로 가는 결정을 보류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한국이 싫었다. 내 현실이 지긋지긋했고, 벗어나고만 싶었다.

  이 책은 그때의 어린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위험한 지역, 위험한 인생으로 뛰어드는 것은 바로 통과의례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화학자 조지스 캠벨에 의하면,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몸이 태어나고 두 번째로 영혼이 태어나는데, 모험과 통과의례는 영혼이 태어나는 과정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사회에서는 위협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어 극복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내 머리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의 충격을 주었다.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정도로 긴장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라면 하지 않아도 될 중노동을 했고, 한국에서라면 받지 않아도 될 무시와 멸시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들이 나에 가는 다 통과의례였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일본에서 돌아와서 한동안은 힘들었다. 그곳에서의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이었지만, 한국에서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방황을 또 시작되었고, 계속 떠날 것만 생각했다. 떠나기 위해서 준비를 계속했고, 결국 나는 안주하는 것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고서도 미련을 끊어내지 못하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의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은 답을 찾는 실마리를 주었다.

  마페졸리에 의하면 '역동적 뿌리내리기'가 절실해진다. 마페졸리에 의하면 '역동적 뿌리내리기'는 뿌리를 내리면서도 그것을 거부하고 떠돌면서도 또한 동시에 뿌리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곳에서든 저곳에든 뿌리를 내려야 한다. 뿌리를 내린다 함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고, 돈을 벌며, 보람과 의미를 찾으며 생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렇게 뿌리를 내리는 만큼 여행자들은 뿌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린다. 이것이 존재의 비극이다.

  그래서 나는 내 현실에서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벌려놓은 일을 정리하면서 다음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그때그때 조정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경비가 모자라서 마시고 싶은 커피를 꾹 참아야 할 때도 있고, 분에 넘치게 비싸지는 않지만 관광지 한곳을 들리는 것을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한다. 내 사람이 항상 만나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것으로 멈추지 않도록 여행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고 쉬어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는 내 현실이라는 여행지에서 삶이라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매 순간이 다시는 들르지 못할 여행지를 방문한 것처럼 절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해방과 자유는 무조건 돌아다닌다고 찾는 것이 아니다. 무한의 세계는 저 멀리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도 있다. 스스로 문을 상상하고, 문을 만들고, 문을 열고 닫는 행위에 의해 우리는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사소한 일상, 평범한 행위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을 현재, 여기서 맛보는 사람은 떠나든 떠나지 않든, 또 어딜 가든 늘 사소한 것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것을 맛보려면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흔들려야 한다. '역동적 뿌리내리기'라는 어떤 목표 지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흔들리며 타자와 소통하는 가운데 존재를 싱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내 삶을 살자. 남의 삶 못지않게 내 삶도 지루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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