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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엄마를 죽였어
필리프 베송 지음, 이슬아 옮김 / 레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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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 기대와는 대단히 다른 책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좀 더...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묘사를 원했다. 

빠른 전개를 원했고 사이다 같은 결말을 원했다. 

하지만 이 책은 온 몸으로 폭력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한 대로 전개되는(?) 책을 만날 때도 기분 좋지만 진정 기대를 배반하는 책을 만날 때는 정말이지 짜릿하다. 

우리는 왜 문학을 만날까, 왜 소설을 읽을까. 

이 소설은 그 질문에 어느 정도 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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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역사의 오늘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남진희 옮김 / 버터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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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있는 갈레아노의 옛 책들을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 매사에 뜨거웠던 갈레아노도 좋고 이렇게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말년의 갈레아노도 좋다. 지혜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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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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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모든 작품 제목을 좋아하지만 '젊은 남자' 앞에서는 거의 무릎을 꿇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이 짧은 제목 속에 들어 있는 함의를 일종의 스펙트럼처럼 독자에게 펼쳐 보이다니, 

게다가 이 굴절을 일으키는 프리즘이 다름 아닌 독자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이라니!


<젊은 남자>라는 제목 탓에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되지만, 이 책에 열정은 없다. 열정 바깥의 모든 것이 있을 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위계와 계급과 성적 불평등, 이 모든 것을 꽁꽁 감싸고 있는 기억과 시간.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아니 에르노는 기억을 환기하는 작가이다. 그것도 대부분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기억을. 

그래서 오래전 읽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떠올릴 때면 나의 기억과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 당황하게 될 때가 있다. 

물론 나는 프랑스에 살아본 적도 없고 내 삶의 장면들은 그의 삶의 장면과 비슷하지도 않을 것이나, 그럼에도 그의 수치심은 나의 수치심이고 그의 이기심은 나의 이기심이며, 그의 폭력성은 더없이 선명하게 나의 폭력성이다. 응시의 대가인 작가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사랑의 맨얼굴을 본다. 

내가 아무리 독한 독자가 되어본들 저쪽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냉혹한 작가가 있다는 것.

이번에도 그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비록 아니 에르노는 나를 모를 것이나) 나는 아니 에르노를 무척 가깝게 느낀다.

기억을 공유한 우리는 어쩌면 자매보다 가까울 것이다.

그는 내 첫 번째 세계의 기억 전달자였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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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자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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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무리 독한 독자가 되어본들 저쪽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냉혹한 작가가 있다는 것.
이번에도 그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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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지음, 백수린 옮김 / 레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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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 많았던 누군가의 저작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번쯤 ‘그런 여자아이’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있다.

‘멍청하대, 헤프대, 걸레 같대, 왜 그러고 사냐’ 등등.


2022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는 <여자아이 기억>에서 그 여자아이에 대해,

한때 그 여자아이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었다고 썼다.


그렇다면 그 여자아이는 무슨 짓을 했을까.

아직 십 대임에도 여름 캠프 지도교사로 고용된 그 여자아이 ‘아니’는

남자와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게 했던 어머니의 시야를 떠났다는 사실에 도취된 나머지

처음으로 춤을 신청해준 남자와 엉겁결에 밤을 같이 보냈다.

자신이 선택한 남자도, 선택한 사건도 아니지만

그 여자아이는 자신이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굳게 믿어버린다.

그뿐이다.


하지만 이내 일파만파 소문이 퍼지고, 캠프 안에서 아니는 ’그런 여자아이‘가 되어버린다.

함부로 해도 되는 아이.

무엇이든 요구해도 들어줄 아이.

진지하게 사랑할 대상은 아닌 아이.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정확히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소문의 한가운데에 있을 뿐.



"‘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한 명밖에 없어, 바로 내 약혼녀야.’

걘 처녀야, 그가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자기가 처녀성을 뺏은 여자들과만 사랑에 빠졌다고도.

그녀는 자신이 그가 사랑에 빠질 만한 처녀는 아니라는 것을, 아니면 그가 자신의 처녀성을 빼앗는 데 이르지 못한 것에 이래저래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녀는 굴욕스럽지 않다."



어찌어찌 여름이 끝나고 캠프를 떠난 후에도 악몽은 끝나지 않는다.

그 여자아이는 이미 예전의 여자아이와 같은 아이가 아니다.

극도의 섭식장애를 앓으며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명명할 수도 없다. 그녀는 그저 먹을 뿐이다."



그날의 상처들이 상당 부분 희석된 후에도 저자는 이 일을 글로 써내지 못했다고 책 속에서 고백한다.

아니 에르노는 50대에 한번, 60대에 한번,

이 책을 쓰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한 끝에 70대가 되어서야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 죽을 수는 없어서.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2016년에 출간되었으며 이때 작가의 나이는 76세였다.)



"내 앞에 놓인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마지막 애인, 마지막 봄이 있듯 필연적으로 마지막 책도 있겠지만, 그것을 알려줄 징후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아주 오래전 ‘1958년 여자아이’라고 명명한 그 아이에 대해 쓰지 못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각이 나를 사로잡고 떠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기억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여자아이가 경험한 것은 설명되지 못한 채로, 아무 이유도 없이 살았던 것으로 남을 것이다."



가족의 치부도, 금지된 사랑도 낱낱이 펼쳐서 써낸 작가에게도

쓰지 못할 것이 있었다니.

하지만 이 책은 그날을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날을 해체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 이 언니, 보통 사람이 아니었지.

몇 번쯤 읽기를 멈췄고

몇 번은 감탄을 하고

몇 번은 욕을 했다.


다시 생각해본다.

…그 여자아이들에게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지금 그 여자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비슷한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그 여자아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른 이들의 존재 속에, 그들의 기억 속에,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심지어 행동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 이 남자와 보낸 두 밤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나는 그의 인생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이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불균형.

나는 그가 부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건 나니까."



번역이 특히 좋았고, 소녀 대신 여자아이라는 표현을 써주셔서 좋았다.

책을 읽고 나면 누군가와 이 책에 대해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부디 나의 친구들이 어서 이 책을 읽어주길.



그런 이들이 있다. 타인들의 현실에, 그들이 말하고 다리를 꼬고 담뱃불을 붙이는 방식에 사로잡혀버리는.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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