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이스마엘
다니엘 퀸 지음, 배미자 옮김 / 평사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http://nadle.tistory.com/71

광고

정말 어처구니 없는 광고를 하나 발견했어.

"스승이 제자를 찾습니다.
세계를 구하려는 진지한 열망을 가져야 함.
본인 지원 바람."(12p)

어떤 미치광이인가, 궁금했지. 그래서 그를 찾아갔어. 찾아갔더니 고릴라더라. 그 고릴라 뒤쪽 벽보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

"인간이 사라지면,
고릴라에게
희망이 있을까?"(20p)

어떤 뜻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어. 너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그 고릴라 이름은 이스마엘이었어. 자신이 어떻게 그 자리까지 있게 된지 이야기해주었지. 자신이 가르칠 주제는 '감금'이래. 나한테 이렇게 묻더라.


이야기의 포로

"너희 문화 사람들 중에 어떤이들이 세상을 파괴하고 싶어 하니?"

세상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잖아. 날마다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냐고 되묻더라.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 그리고 묻더라.

"왜 멈추지 않는 거지?"(42p)

왜 인간은 멈추지 않는 걸까. 인간은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너희는 이야기의 포로야!"(54p)

그리고는 히틀러 이야기를 하는 거야. 뜬금없이. 히틀러 통치 아래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의 포로였대. 이야기의 포로. 히틀러가 말하는 아리안족 이야기에 사람들이 포로가 된 것이라고. 우습지.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텐데, 당시 독일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믿었으니까. 곰곰이 생각하니 그런 거 같더라고. (53p)

"너희 문화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받아들이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어."(65p)

우리한테 이야기가 있대. 그걸 '어머니 문화'라고 부르재.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데, 나 참 황당해서.


해파리의 출현

"우주는 아마 100억 년 내지 150억 년 전쯤에 태어났어. 우리 태양계는 20억 내지 30억 년 전에 생긴 것 같아. 그러다 약 10억 년 후 생명체가 출현했어. 수백만 세기 동안 세상의 생명체는 오직 화학 수프 위를 무력하게 떠다니는 미생물 뿐이었어. 하지만 조금씩 더 복잡한 형태가 출현했지. 단세포 생물, 조류(藻類), 기타 등등. 하지만 마침내 '해파리가 출현했어!'"(84p)

해파리가 출현했대. 해파리가. 어처구니 없어서. 해파리가 모든 것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지점이라고 해파리가 말했다는 거야. 말도 안 된다고 말했지.

"너희 인간이 그렇게 말하잖아. 인간이란 창조물을 위해서 나머지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고. 그건 신화야. 하나의 이야기지. 혹시 창조가 인간의 탄생과 함께 끝났다는 증거를 본 적 있어?"(85p)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도 그런 증거를 본적이 없는 거야.


이야기의 공연

"너희는 너희가 믿는 이야기대로 '공연'하면서 살아가지. 이야기대로 '공연'을 하는 역할을 맡은 자들과, 그 이야기대로 살아가지 않는 역할을 맡지 않은 자들로 나눠보자고. 만약 세계가 너희를 위해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세계는 우리 것이니까, 우리 마음대로 해도 좋지,라고 답했어. 맞혔대. 너희가 지난 만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고. 인간은 정착을 위해서 환경을 조작해야만 했대. 그게 전환점이었대. 전환점. 인간이 가진 이야기가 바뀐. (99p)

"인간은 어떻게 사느냐와 같은 지식도 갖고 있어?"(126p)

아니, 없을 걸, 이라고 밖에 답을 못하겠더라. 이상하지.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답이 없다니. 과학은 왜 그 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인간 안에 있는 결함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인지도 몰라."(127p)

그 말에 동의가 되더라.


법칙과 생명공동체

"만유인력의 법칙이 뭐지?"

또 뜬금 없이 묻더라. 만유인력의 법칙.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설명했지.

"인간은 이 행성 위에 혼자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인간은 공동체의 일부야. 인간이 구성원인 공동체의 이름이 뭐니?"

생명공동체지, 라고 답했어. 하지만 익히 들어온 '어머니 문화'에서는 인간은 예외적 존재라서 생명공동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했어.

"왜 안 되지? 소나 바퀴벌레는 만유인력의 법칙의 지배를 받아. 너희는? 공기역학의 법칙에서 제외돼? 유전현상은? 열역학은?"(139p)

난 모두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

"날기를 원할 때, 비행을 좌우하는 공기역학의 법칙이 관련이 되지. 너희가 멸종 위기에 놓여서 좀 더 살고 싶어질 때 비로소 생명을 좌우하는 법칙이 관련이 되겠지. 법칙에 순응해서 살지 않는 종은 멸종하게 돼 있어."(145p)

설마, 난 믿을 수 없었어. 인류가 멸종하게 될 수도 있다니. 말도 안 돼.

"자, 90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남자가 있어. 그 남자가 10층을 지날 때 자기자신한테 말할 거야. '지금까지는 너무 좋아!'"

우리가 그렇다는 거야. 추락 중이라고. 곧 추락할 것인데, 추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


끔찍한 이야기

"너한테 끔찍한 이야기를 하나 해줄까. A, B, C가 한 마을에 살고 있어. A는 B에게 먹히고, B는 C에게 먹혀. 그리고 C는 다시 A에게 먹혀. 어때?"(160p)

서로 먹고 먹히는 세상이라니 끔찍했어.

"사실 이 세상은 끔찍하게 완벽하게 민주적이고 우호적이야. 너한테는 무시무시할지 몰라도. 그 누구도 주인 행세를 하지 않아. 계급도 없어. C는 단지 B가 자신들의 먹이라고 B에게 주인 행세를 하지 않지. 결국 C 자신들이 A의 먹이니까. 이들은 법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그 법을 잘 따르지. 그래서 고도로 성공한 사회를 이룩했어."(161p)

그 법칙을 어기면 벌칙이 있어?, 라고 물었어.

"응, 죽음이지. 법칙을 어기면 사형집행이 벌어지게 될 거야."
"생명공동체는 질서정연한 사회였어. 초록식물은 초식동물의 먹이이고,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의 먹이이고, 육식동물 중 어떤 건 다른 육식동물의 먹이지. 그러고도 남겨진 것은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의 먹이가 되고, 이 동물 또한 초록식물에게 필요한 흙 속 영양분으로 돌아가게 돼."(165p)

응, 당연한 이야기였어.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영양과 사자는 너희 '역할 맡은 자들'의 생각에서만 적일 뿐이야. 영양 떼와 마주 친 사자는 적에게 하듯이 영양 떼를 대량학살하지 않아. 한 마리만 죽이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사자가 사냥감을 죽이고 나면, 다른 영양은 무리 중앙에 사자가 있어도 한가롭게 풀을 뜯어. 공동체 내에 누구나 지키는 법칙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165p)

법칙, 그래 그렇다고 우리가 법칙을 어기는 것은 아니잖아. 법칙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난 생각했어.


'역할 맡은 자들'이 하는 짓

"좋아, 다른 생물은 하지 않는데 너희 '역할 맡은 자들'이 하는 네 가지 짓이 있어.
먼저, 자신의 경쟁상대를 전멸시켜. 야생에 사는 동물들은 목장주나 농부들이 여우와 코요테를 잡는 것처럼 경쟁자가 죽을 때까지 사냥하지는 않아. 만약 예전부터 그랬다면 경쟁의 각 단계에는 하나의 종, 최강자만 남았겠지.
둘째, 너희는 자신들의 먹이를 위해 경쟁자의 먹이를 체계적으로 파괴해. 자연의 법칙은 '네가 필요한 것만 가져라, 그리고 나머지는 내버려두어라'지.
셋째, 다른 경쟁자가 먹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 '모든 영양은 내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야.
넷째, 너희는 내일 위해 저장해. 사슴은 바로 앞에 있는 풀을 먹지, 겨울에 먹으려고 풀을 저장해 두지는 않지."(176-178p)

일리가 있더라고.

"다른 종들이 지켜온 법칙들이 향상시키는 건 뭐지?"


다양성

다양성이더라고. 만약 인간처럼 법칙을 다른 종들도 지키지 않았다면 공동체가 몇십 종, 몇백 종밖에 안 될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뭐가 문제가 되지.

"다양성이 부족한 공동체는 생태학적으로 취약하고 고도로 민감해. 존재하는 상태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전체가 붕괴되겠지. 다양성은 공동체 그 자체의 생존 요소야. 1억의 종 내에서는 지구 기온이 갑자기 20도 내려간다고 해도 수천 종은 살아남겠지. 하지만 수백, 수천 종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생존 가망성이 거의 없어."(181p)

"만약 하나의 종이 이 법칙을 따르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모든 종이 따르지 않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가져와. 단 한 종의 팽창을 지탱하기 위해 다양성이 점진적으로 파괴되는 공동체로 종말을 맞게 되지."(181p)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하라는 거지. 정착해서는 안 된다는 걸까.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 손재주 있는 사람이란 뜻)가 등장했을 때 동시에 뭔가와 경쟁에 돌입했다는 게 중요해. 한 가지가 아니라 수천 가지 종과 경쟁하게 되지. 만약 호모 하빌리스가 살아남으려면, 다른 모든 것은 조금씩 감소해야만 해. 이건 여태까지 이 행성 위에 존재하게 된 모든 종에게 해당된다고.
인간의 정착은 경쟁의 법칙에 꼭 상반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정착은 경쟁의 법칙에 종속되지."(188p)

정착은 경쟁의 법칙에 종속된다라.


식량 생산의 증가와 인구 조절

"너희는 무슨 목적으로 식량 생산을 증가시키지?"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려고, 라고 답했어.

"그럼, 너희는 그들을 먹여 살릴 때, 자손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

자손 생산?, 생각하지도 않은 점이었지. 그런 계획은 없는 것 같은데.

"너희들이 식량생산을 늘려서 수백만 사람들을 먹여 살리면, 자손을 생산하고 인구가 늘겠군. 그리고 또 증가된 인구를 위해서 식량 생산을 증가시키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한테 피임기구를 보내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없겠지. 식량 생산의 증가는 연례행사지만, 범세계적 인구조절은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행사야."(192p)

하지만 어떻게 식량 생산의 증가를 멈출 수 있냐고. 인구조절은 어떻게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어.

"오존층의 파괴를 멈추는 것, 열대우림의 벌목을 막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참.

지금껏 말한 이야기대로 살아가는 '역할 맡은 자들'이 아니라, '역할 맡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어. 아프리카의 부시맨, 오스트레일리아의 알라와족, 브라질의 아크로레족(브라질 아마존의 타파조스 강 유역에 사는 원시 부족으로 1973년 코웰Cowell의 책 '미지의 종족 The Tribe that hides from man'으로 알려짐), 미합중국의 나바호족 이야기를 하더라고.

"'역할 맡지 않은 자들'이 갖고 있고 공연해오고 있는 이야기는 정복과 통치의 이야기가 아니야. 그 이야기를 공연하는 것은 그들에게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삶을 가져다 줘. 그들 사이에 가면 금방 알게 돼. 그들은 불만과 반항으로 끓어오르지도,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에 대해 끝없이 언쟁하지도, 올바르게 살지 않는다고 서로를 끊임없이 비난하지도, 서로를 무서워하며 살지도,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해서 미치게 되지도, 매달릴 뭔가를 줄 새로운 종교를 매주 발명하지도, 삶을 살 만하게 할 일을 찾아 영원히 해매지도 않아. 그들이 자연에 가까이 살아서도, 공식적인 정부가 없어서도, 그들이 타고난게 고상해서도 아니야. 단지 그들이 사람에게 유익한 이야기, 3백만 년 동안 유익하게 작동해 왔고, '역할 맡은 자들'이 짓밞아 없애버리지 않은 곳에서는 지금도 유익한 이야기를 공연하고 있기 때문이지."(207p)


신화 - 창세기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원시부족처럼 살아가야할까. 그렇게 살 수는 있을까. 모르겠더라. 이스마엘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어.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

"신들이 있었어. 신들이 토론을 하기 시작했지. 한 신이 말했어. 초원에 메뚜기 떼를 보내자고. 그러면 메뚜기 떼를 잡아먹는 새들과 도마뱀들 안에서 생명의 불이 타오를 거라고. 다른 신이 말했어. 그러면 초원에 사는 다른 생물들은 희생을 치를 것이라고. 어떤 일을 해도 그런 거야. 그때 한 신이 말했지.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어떤 생물들에게는 선이 되고 다른 생물들에게는 악이 된다고. 그러므로 아무 행동도 취하지 말자고. 실제 이런 토론을 하면서 자신들의 정원을 살펴보니 공포의 도가니가 된 거야. 신들의 행동에 따라 하루는 선, 하루는 악을 주었기 때문이지. 그때 한 신이 뭔가를 떠올렸어.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이 열매 맺는 나무를 심어둔 것을 말야."(222-223p)

그리고는 아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지.

"신들은 아담을 만들었어. 아담이 '생명의 나무'를 찾아낼 수 있도록 탐구심을 베풀어주자고 했지. 하지만 아담은 '생명의 나무' 열매 대신 '선과 악에 대한 지식 나무' 열매를 따먹고 싶은 유혹에 빠질 거라고 했어. 한 신이 말했지. 자신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자신이 신처럼 세상을 다스릴 지식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것이 두렵다고."(227p)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어.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었고, 자신이 신인 것처럼 세상을 통치하려고 했고.

"'역할 맡지 않은 자들'은 농경인으로 사는 데 지치면 농경을 포기할 수 있었어. 지금의 애리조나 주 남동부에 해당하는 사막 지역을 경작하기 위해서 대규모 관개수로를 건설한 종족이 살았었지. 이 종족은 3천 년 동안 이 수로를 유지했으며 상당히 진보된 문명을 건설했어. 하지만 이들은 모든 것을 털고 떠나 버렸어. 이름도 남기지 않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이름은 피마 인디언이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이야. 호호캄, '사라져버린 사람들'이란 뜻이지.
'역할 맡은 자들'은 포기하지 못하겠지. 신인 체 하기를 그만두는 일을."(235p)

이스마엘은 창세기 이야기를 새롭게 풀었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중앙에 코카서스인들이 살았고, 아라비아 반도 쪽에는 목축인인 셈족들이 살았어. 이 셈족들이 '역할 맡은 자들' 카인의 확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지. 이 셈족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담의 타락과 형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일을 말했고, 그 이야기만 남게 된 것이지. 이 이야기는 농경인들이 만든 게 아니야. 농경을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선택한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묘사하지 않으니까. 아담이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묘사하지. 아담은 히브리어로 '인간'이란 뜻이야. 이브는 '생명'이란 뜻이고. 아담이 이브의 유혹에 굴복한 것은, '제한 없이 사는 유혹'에 굴복한 것이지. 타락은 본질적으로 불복종의 행위야. 법칙에 불복종하는 행위."(247-250p)

놀랍더라. 어떻게 성서를 그렇게 읽어내지. 그럼 지금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어. 설마, 어머니 문화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걸까. '역할 맡은 자들'과 '역할 맡지 않은 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역할 맡은 자들'과 '역할 맡지 않은 자들'의 차이

"생산에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보존했지. 너희 문화에서는. '역할 맡지 않은 자들' 역시 생산에 관한 정보를 보존하긴 해. 하지만 생산 그 자체를 위한 생산은 거의 없지. 그들에겐 매주 만들어야 하는 항아리 할당량과 화살촉의 할당량이란 게 없어. 생산량을 높이는 일로 골몰하지도 않고. '역할 맡은 자들'은 '사물'에게 유익한 것에 관한 지식을 축적해. '역할 맡지 않은 자들'은 '사람'에게 유익한 것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고."(282p, 289p))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할 맡지 않은 자들처럼 살아가는 것은 할 수 없을 것 같았어. 그 삶은 아주 고달픈 삶 같으니까.

"음식을 찾아 끝없이, 절박하게 찾아다니기는 커녕, 수렵채취인들은 지구 위에서 가장 잘 먹고 산 사람들에 속해, 소위 일이라는 걸 하루에 두세 시간만 해도 그들은 그렇게 살 수 있었지. 그래서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들에 속하게 되었어. 마셜 살린스(Marshall Sahlins(1930-). 하와이와 피지, 뉴기니아 등 남태평양 원주민 부족들의 삶과 문화를 연구해온 인류학자로 How Natives Think, Stone Age Economisc란 저작이 있다)는 석기시대 경제에 관한 저서에서, 그들의 사회를 '최초로 풍요 사회'라고 묘사했어. 그리고 우연히도 인간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육식동물의  식단에 오르지 않았던 최초의 생물이 인간이라고. 이렇게 생각해 봐. 네가 이 나라에 집 없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 일자리도 없고 기술도 없는데, 아내와 두 아이가 있어. 의지할 곳도, 희망도, 미래도 없지. 그런데 버튼이 달린 상자 하나를 너에게 주고 버튼을 눌러라고 말하지. 너는 그 버튼을 누르게 되고, 그러면 즉시 너와 네 가족은 혁명 전 시대로 가게 돼. 물론 그 시대의 언어로 말하게 되고, 그 시대 누구나 가지고 잇던 기술을 얻게 되고. 가족을 돌보는 일로 또다시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지. 버튼을 누를 거니?"(307-308p)

선뜻, 대답을 못하겠더라. 회의적이었어. 이스마엘 말대로 여기 삶을 포기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다른 삶을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 것인지도 몰라. 그리고는 '역할 맡은 자'와 '역할 맡지 않은 자'의 대화를 들려주더군.

"역할 맡은 자가, 자신들의 삶의 장점을 설명하기 시작했어.
 "만약 너희가 직접 심으면, 음식들을 통제할 수 있다."
 "조금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풍부하게 자라고 있는데, 왜 심기 위해서 고생을 해야합니까?"
"고구마를 먹고 싶은데 야생에서 자라는 고구마가 없는 경우가 없었느냐?"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것은 나리께서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없다. 우리는 가게에서 고구마 통조림을 사면 된다."
"그렇군요. 그 통조림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했습니까?"
"수백명은 되겠지. 키우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트럭 운전사, 통조림 공장에서 씻는 사람, 기계를 돌리는 사람, 상자를 유통시키는 사람, 가게에서 상자를 푸는 사람 등등"
"고작 고구마 문제로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 모든 일을 하다니, 미친 짓처럼 들리는군요. 고구마가 하나도 없으면, 다른 걸 찾으면 됩니다. 고구마를 손에 넣기 위해서 수백 명이 노동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고 역할 맡지 않은 자가 말했지."(312p)

정말 이스마엘 이야기를 들으니, 미친 짓 같이 느껴지는 거야.
이스마엘이 이렇게 묻더라.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을까?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지?"(327p)

글쎄, 이런 일반적인 질문만 들으면 말문이 막히는 거야.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호모가 되었지. 진화해서. 만약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누가 살고 누가 죽을 지 우리가 결정한다'라고 말했다면 인간이 될 수 있었을까. 없을 거야. 왜냐하면 진화가 일어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더 이상 따르지 않기 때문이야."(328-329p)

이스마엘 말처럼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손안에서 살았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인간이 경쟁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자연선택이 진행되는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전-인간(유인원과 인간의 중간형태인 원인Pre-man)이 초기 인간(사람에 더 가까운 원인Early man)으로 진화한 거야."(330p)

진화. 지금의 인간도 진화할 수 있을까.

"너희가 지금처럼 산다면, 인간의 후계자도, 침팬지의 후계자도, 오랑우탄의 후계자도 지금 살아있는 어떤 것의 후계자도 없어질 거야. 전부 너희와 함께 끝나는 거지. 너희가 공연하는 이야기가 실현되게 되지."(331-332p)

인간은 자신의 믿음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전제를 푸는 거야. '역할 맡은 자들'의 이야기 전제는 세계가 인간에게 속한다는 거야. '역할 맡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 전제는 인간이 세계에 속한다는 거지."(332p)

세계를 소유한 것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지금의 인간이 맞지.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인간은 어떤 운명을 갖고 있는 것이냐고.


인간의 운명

"인간은 선구자, 개척자야. 인간의 운명은 인간과 같은 창조물들이 선택권-신들을 반대하다 멸망할 것인가, 아니면 옆으로 비켜서서 나머지 생물들에게 자리를 내어 줄 것인가란 선택권-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 최초의 생물이라는 거야. 인간의 운명은 모든 창조물들의 아버지가 되는 거야. 직계 후손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나머지 모든 생물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그들의 조상이 되는 거지."(336p)

그들의 조상. 좋은 말이지. 하지만 지금 우리보고 다시 수렵채취인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거냐고.

"그건 물론 바보 같은 생각이지. '역할 맡지 않은 자'의 생활양식은 수렵과 채집이 아니야. 나머지 공동체가 살아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지. 수렵채취인뿐만 아니라 농경인도 그건 할 수 있어."(347p)

이렇게 여러 날에 걸쳐서 이스마엘과 이야기를 나누었어. 다시 이스마엘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이스마엘은 죽었지. 이스마엘의 벽보를 표구점에 맡기러 갔을 때 양면에 모두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


벽보의 다른 메시지

"인간이 사라지면
고릴라에게
희망이 있을까?"

그리고 다른 면에는 이렇게 써있었지.

"고릴라가 사라지면
인간에게
희망이 있을까?"(3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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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고릴라 이스마엘(다니엘 퀸 지음, 배미자 옮김, 2004, 평사리.)>의 이야기를 발췌해서 엮은 것입니다.

이스마엘 홈페이지
www.ishma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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