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http://nadle.tistory.com/40 

지난 7월 용산참사 현장에 가서 미사에 참여했다. 그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DVD와 <여기 사람이 있다>란 책을 팔았다. 후원은 못해도 책과 DVD라도 사는 게 돕는 일이겠지 싶어서 샀다. DVD는 영상이라서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책은 미루다 10월에야 다 읽었다. 이 책은 철거민들의 투쟁기가 담긴 인터뷰집이었다.

읽으면서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그들과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 충격이었다.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책 곳곳에 밑줄 친 부분 중 일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재개발하면 돈 번다! - 가옥주들의 착각

"가옥주가 세입자보다 처지가 낫긴 하지만 가만 보면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있어요. 같이 살아봐서 알잖아요. 개발 안 됐으면 23평 정도는 되는 자기 집에서 애들 데리고 어렵게라도 살 사람들이에요. 그런 집이 건물 땅 다 해서 5600만 원 정도 보상이 나왔는데, 이거 갖고 어디 가겠어요? 못 가요, 어디든. 보상 감정은 주택공사에서 선정한 사람 두 명이랑 자기들(가옥주)이 선정한 사람 한 명이 하는데 2대 1이라 절대 이길 수도 없어요. 그렇게 보상받은 사람들은 결국 파주로 가서 살다가 빚내서 재입주 했어요. 이게 가난한 가옥주들 현실이에요.
가옥주도 물론 잘못하는 게 있죠. 처음엔 뭉쳐서 대응한다지만 실제로 가옥주 머리에는 딴 생각이 있어요. 저 사람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보상을 받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그래서 모여 봤자 오래 못 갔어요. 오히려 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세입자들을 나가게 하지 못해서 안달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도 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주택공사가 가옥주를 상대로 협박을 하거든요. 전체 보상금이 2억으로 책정됐다고 했을 때, 1억 6000만 원 먼저 주고는 세입자들을 내보내야지 나머지 돈도 준다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가옥주도 기를 쓰고 세입자들을 내보내려고 하는 거예요.
진짜 나쁜 가옥주는 돈 있고 땅 많은 사람들이죠. 그들은 주택공사하고 짜서 현실적으로 보상을 잘 받아요."
(조혜원 외, (2009), 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잔혹사, 철거민의 삶, 삶이 보이는 창, 29쪽)

투쟁하는 이유

"우리가 법적인 데를 알아보니까 토지분할권 줘서 가옥보상비하고 주거이전비 이런 거를 다 주게 돼 있는데 일체 하나도 안 준다는 거죠. 법을 모른다고 해서 안 주고, 아는 사람도 투쟁하지 않으면 안 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거예요. 우리 대에서 철거민으로서 더 이상 쫓겨나지 않는 거를 목적으로, 우리가 임대아파트라든가 이런 데를 쟁취해서 들어가야 철거민에서 해방되는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위의 책, 42쪽)

용역들의 폭행

"저는 초창기에 투쟁도 모를 때 "야, 씨발년아, 너 밤길 조심해" 공포스러운 말, 상스러운 말을 마구 들었어요. 어떻게, 입에 담을 수가 없어요. 진짜 귀가 더러워질 정도로 상스러운 욕을요, 내가 그런 말을 입에 담아서 해주기가 미안할 정도예요. 딸 있는 집은 "딸 조심 하라고, 딸 따먹을 거다" 니 딸 가만두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작년에 11월 19일날 나올 때 세대에 딸이 하나 있었어요. 바깥으로 펜스 다 쳐서 용역들이 다 장악을 하고 우리는 펜스 밖으로 쫓겨났고 딸 하나만 현장에 혼자 그 안에 있었어요. 우리가 막 대항을 하니까, "야, 저 안에 니 딸 있다" 그래요,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미치고 팔짝 뛰는 거지. 전쟁보다 더했어요. 전쟁은 가족 갖고는 안 하잖아요. 개개인 가지고는 안 하잖아요. 이거는 개개인 가족 갖고 위협하고 협박하는 거예요. 그러니 더 세밀하게, 더 치밀하게, 더 잔인하게 되는 거죠."(위의 책, 42-43쪽)

용역과 경찰의 관계

"11월 27일 옥상에서 집회하는데 용역이 옥상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몽둥이로 강제 진압해서 도화동에서 온 스물네 살인가 연대 온 동지 하나가 갈비뼈 여덟 대 나갔어요. 엄청나게 많이 맞았어요.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패고 한 10명이 덤벼서 발로 밟고...... . 어머, 나 거기서 죽는 줄 알았어요. 옥상에서 물 엎질러서 얼음이 얼었는데 그 위에 나부러져 있는 사람을 개패듯이 패고, 굉장했어요. 그렇게 맞았는데도 증거 불충분, 혐의 없음이래요. 증거 없이 사진 없이 진단서만 첨부했으니까 그렇다네요. 용역들이 경찰을 등에 업고 만행을 그렇게 저지르는 겁니다."(위의 책, 46쪽)

"용역이 100명 정도 오면 경찰은 200~300명 들어옵니다. 꼭 2배 이상은 오는 것 같아요. 경찰은 용역이 쥐어 패도 먼 산 보듯 구경만 하고 있고 우리가 저항을 하면 경찰이 꼭 잡아갑니다. 용역 놈들을 경찰에 신고하잖아요. 그럼 '못 잡았다'가 답이에요. 증거 가져오라고 하고. 우리가 사진 찍어서 가져다 주면 '못 찾았다'가 답이야, 경찰이 찍은 것도 다 있을 텐데. 우리는 가다가 어떻게 툭 건드려도 경찰은 사진 다 제시해서 '너, 폭행이야' 하면서 다 들어가요. 철거촌 어디가서 물어봐도 다 그래요. 용역에게, 경찰에게 안 맞은 철거민 있나 물어봐요. 맞을 때 뒤에 경찰이 없었나 확인해 보세요. 언제는 새벽 5시에 용역들이 경찰과 함께 온 적이 있었는데 경찰이 먼저 압수수색을 하더라고요. 위험물질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실제 그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갔지요. 우리가 뭐가 있는지, 몇 명이 있는지 용역에게 미리 알려준 셈이지요."(위의 책, 115쪽)

그들이 바라는 재개발

"재개발, 재건축되면 좋죠. 깨끗한 주거환경에서 서민이 살 수 있는 주거구역을 만들어 놓고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했으면 좋겠어요. 서민 아파트 옆에다 이쪽 동네는 큰 평수에 있는 사람 가서 살든지 말든지 어쨌든 서민은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서민들은 저 멀리 밀려나라, 그거밖에 더 되냐고요. 지금 광명에서도, 아파트가 올라서서 살라 해도 못살아요. 그냥 준다 해도 관리비나 이런 게 부담스러워요. 어느 정도 생활비까지 하면 저축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 게 부담스럽죠."(위의 책, 49쪽)

용역에게 쓰는 몇 십억

"사업시행사인 SH공사가 우리가 투쟁을 하니까 용역을 부른 거죠. 지금까지 용역한테 쓴 돈이 몇식업 정도라고 해요. 그러면 그 돈을 왜 용역업체에 줘야 합니까. 투쟁하는 사람들한테 보상비로 주면 다 가버릴 걸, 그게 안 됐다니까요."(위의 책, 63쪽)

전철연

"남들은 전철연이 돈을 받았다 어쨌다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못하죠. 뒷돈 챙기고, 내가 연대 가는데 얼마 주고, 그러면 못해요. 아니 돈 몇 푼 받고 목숨 걸겠습니까? 안 되죠. 그거는 정하고 의리 때문에 하는 거예요."(위의 책, 83쪽)

그들의 삶

"제가 철거민 되기 전에는 미싱공이었어요. 안양에서 오리털 파카 만드는 일을 4년 동안 하고 구로(가리봉)에 있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재단사였어요. 그러다가 9급 공무원시험 봐서 합격해가지고 학교 기능직공무원으로 20년 동안 일했는데 5년 전에 사퇴했습니다. 아마 구속된 제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공무원이다 보니까요. 그런 것 생각하면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죠. 남편이 지금은 여름에는 노동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시고 겨울에는 대리운전도 하고 그럽니다. 남편이 가끔 제가 힘들어 하거나 회의가 있어 차가 끊기면 수원에서 서울까지 데리러 옵니다. 아침에 일찍 회의가 있는데 피곤해하면 또 실어다 줍니다."(위의 책, 97쪽)

용산4구역

"용산4구역 같은 경우는 서울 한복판인데도, 예를 들어서 1억을 투자했는데 2500만 원이 나오고 2억 투자했는데 5000만 원이 나오는 거예요. 투자해서 많이 벌었다면 여유가 있으니까, 이주할 능력이 있으니까 갚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문제죠. 2억 3000만 원 빚을 얻어서 3000만 원 갚고 2억 빚이 있는데 5000만 원이 나온 거예요. 받은 거 가지고 다른 데 가서 영업하려면 같은 수준으로 평행 이동 했을 때 빚을 또 얻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개발하는데 내가 왜 이런 큰 빚을 져야 하느냐, 말이 안 된다' 이럴 수밖에 없죠. 개발 지역의 실정이 그래요. 전 재산을 털어서 거기다 생계 대책 세웠는데, 이거를 파괴하는 거라서 투쟁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
그런데 철거가 폭력으로 다가오니까 어쩔 수 없이, 폭력을 당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옥상으로 올라가고 망루를 짓고, 망루를 지어 놓으면 어쨌든 폭력을 피하면서 우리 요구를 내세우고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용산4구역)에는 그걸 미리 막아야겠다, 한 겁니다.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먼저 던지고, 골프공을 먼저 던졌다는데 그게 아니예요. 그 사람들이 계속 철거를 하려고 하니까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방어를 한 겁니다."(위의 책, 179쪽)

조세희 작가의 말

"여섯 명이 죽었어. 내 난장이에 보면 폭력은 경찰 곤봉이나 군대 총만이 아니라고 했어. 우리 시대 어느 아이 하나가 배고파 밤에 울면, 그 아이 울음소리 그치게 하지 않고 놔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그랬다고. 어제 어마어마한 폭력이 가해졌는데도 우리가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거야. 철거민을 우리가 두드려 패고 화염 휩싸인 그 뜨거움 속에서 죽게 했다는 게 아냐. 우린 그런 죄는 짓지 않았어. 그런데 그 범죄행위, 학살행위를 막지 못한 게 우리 죄라는 거지. 그래서 동시대인으로서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이야. 나도 똑같은 죄인이야. 사실은 이 말을 하러 나온 거야."(위의 책, 292쪽)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 그런 말은 또 한 번 써줘요. 냉소주의는 우리 적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위의 책, 300쪽)

조세희 작가의 마지막 말,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잊혀지지 않는다. 난 이미 냉소주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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