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
조이스 메이나드 지음, 이희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글은 글로써만 평가되어야 할까, 아니면 글을 쓴 작가의 이력과 함께 평가되어야 할까. 동시대부터 지금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며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소설중에 하나로 꼽고 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J.D.샐린저에 대해 이러한 의문이 들었다. 은둔형 작가 샐린저에 대해서 세상에 알려진것이 별로 없다. 그저 그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유명 작가일뿐이다. 하지만 그런 뛰어난 문학작품을 남긴 작가가 50이 넘어서 10대의 어린 여자만 밝히는 소아성애자에 글로 젊은 여자들을 꼬셔 짧은 시간 동안 동거를 하고 내쫓아 버리는 사람인줄 알았다면 내가 그의 책을 읽었을까?

문학을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어린시절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조이스는 18살에 자서전을 '타임즈'에 실은 덕분에 수많은 편지를 받게 된다. 그 중에는 놀랍게도 당대 유명 작가인 J.D.샐린저의 편지도 있었다. 그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서히 사랑을 느낀 조이스는 예일대학도 중퇴하고 그가 사는 곳으로 날아가서 1년여동안 동거를한다. 하지만 편지로 접하던 사람과 실제의 사람이 같을 수는 없다. 샐린저는 모든 속세의 인연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영양소만을 섭취하며 세상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나이는 18살인 그녀보다 35살 많은 53살.

샐린저에게 버림받고 혼자 일어서기를 시작한 조이스는 그 후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게 된다. 책을 꾸준히 써서 생계를 유지하고 '투 다이 포'라는 작품은 영화화되어 니콜 키드만이 주연을 맡기도 한다. 하지만 평생 샐린저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의 편지는 늘 충고가 가득했지만, 자신은 조언자가 아니고 충고를 할 입장도 못 된다고 말했고 누군든지 당신을 이용하려 들거라고 쓰면서도 본인은 예외인것처럼 굴었다. 실은 그녀를 가장 철저하게 이용한 사람은 샐린저 본인이었는데 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은 많은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읽은 소설중에서 홀든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를 발견한 일이 드물다. 그는 유쾌하고 재밌으며 그러면서도 내면에 패배자 정신이 가득하고 이 사회를 미워했다. 이 책을 읽고 홀든이 왜 그런 성격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것같았다. 홀든은 샐린저의 내면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긍정적인 부분만을 끄집어낸 인물이었다. 그의 편협된 시각도 말도 안되는 조롱도 10대이기 때문에 가능한것들이었다. 하지만 홀든이 그대로 자라서 50살이 된다면 그때는 샐린저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여전히 죽은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만을 좋아하고 그 외의 모든 인간을 비웃지만 막상 그 앞에서는 아무말도 못하는 비겁자.

작가의 이력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파울로 쿄엘료와 공지영이 3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했거나 말거나, 아멜리 노통이 서양인이면서도 동양에서 자랐다거나, 작가의 이력은 알면 도움이 되고 몰라도 상관이 없는 그런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호밀밭의 파수꾼'보다 먼저 읽었다면 난 그 책을 좋아하게 됐을까? 누구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 뜻하지 않게 아주 유명한 인물이었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그의 사생활을 비밀로 지켜주리라고 다짐했던 그녀는 결국 모든것을 털어놓았다. 샐린저의 치부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장 어둡고 수치스러운 과거까지도 모조리 드러내보였다. 이 책을 씀으로 많은 이들의 비난과 협박에 시달렸던 작가도 이제는 정말 떠날때가된 것이다. 샐린저라는 환상에서도, 피해자라고 느꼈던 과거에게도, 모두 떠나 진정한 자신이 되는 길이다. 그녀는 그 시작을 이 책과 함께 열어나갔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생활은 지켜져야 하지만 그래, 이건 책일 뿐이잖아. 그녀는 샐린저의 단 한통의 편지도 실지 않고 단 한 문장도 그대로 따다 쓰지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호밀밭을 떠나오길 바란다.

@ 2009 05 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