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고기
다니엘 월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동아시아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가 있다. 거인과 대결하고 인어와 사귀었으며 맨손으로 사나운 개의 심장을 꺼내 소녀를 구하고 사람보다 더 큰 메기를 타고 수중세계를 여행한 남자. 입만 열면 무용담이 끊이지 않는, 누구나 좋아하는 그 남자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그는 모두의 사랑을 받고 단 하나뿐인 아들에게는 미움을 받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면서 수많은 모험을 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생에 단 한번 겪기도 힘든 불가사의한 일을 매일매일 겪은 남자는 병이 들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자신이 필요할때 곁에 없었던 아버지였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하면 늘 농담으로 피해버린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엄마와 자신을 남겨두고 전세계를 돌면서 신기한 경험을 하고 병이 들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와 손님방에 들어누운 염치없는 아버지가 미운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가 바랬던 것은 아들의 존경과 사랑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정보다는 단 한명뿐인 아들이 "아버지는 위대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과장하고 꾸며서 아들에게 들려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점을 오히려 싫어했는데도 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어떠한가. 그들도 우리에게 이렇게 위대해 보여지기를 바랬던가. 우리 스스로 아버지는 위대하다, 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누구보다도 강하고 단단하며 항상 올려다봐야 하는 아버지를 바랬던 것도 사실이다. 알고 보면 아버지도 늙고 지치면 죽고 마는 보통 사람일 뿐인데.

애드워드는 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과장된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뿐이다. 너무 빨리 달려서 출발하자마자 도착점에 도달해 있었다던지, 사람보다 큰 메기를 타고 호수 속으로 들어가니 그 곳에 사람들이 집을 집고 살고 있었다던지 하는 얘기들은 누가 들어도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다. 머리 두개 달린 기생, 몇사람의 키만큼 큰 거인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 모든 무용담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따질 필요가 없다. 그건은 그저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스스로 아들에게 신화로 남기를 원했던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거면 족하다. 소녀를 구하기 위해 사납게 달려드는 개의 심장을 손으로 꺼낸 이야기는 그것이 과연 가능한가?라고 따질 필요 없이 아버지가 한 소녀의 목숨을 구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미 환상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버지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처럼 죽음마져도 드라마틱하게 맞이한다.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는 호수로 가서 '빅 피쉬'가 된다. 사람을 구하고 어부들에게 장난을 치기 좋아하는 큰 물고기는 그 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테지만 사실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다.

우리들의 아버지들 또한 다르지 않다. 평생을 일과 책임으로 살아오다가 큰 물고기가 되어 떠나는 아버지들. 그들이 애드워드처럼 엄청나고 환상적인 무용담을 가지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때로는 과묵하고 무뚝뚝할 수도 있고 농담과 장난으로 진지함 따윈 찾아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빅 피쉬'이다. 그리고 한 세대의 빅 피쉬는 다음 세대에게, 또 다음세대에게 환상적이고 드라마틱한 세상의 문을 열어주고 호수 속으로 사라질 뿐이다. 이 책의 쓰여진 모든 이야기를 믿도록하자. 아버지의 이름으로 눈을 감으면 그가 만났던 인어를 우리 또한 만날 수 있다.

@ 2009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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