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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평점 :

시인 루이즈 글릭.
2023년 10월 내려온 세상을 거슬러 올라간 후에야 시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짝이는 유명세에도 저로서는 다소 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런 시인들이 있기에 '시'는 여전히 총총 빛나고 있구나 싶었지요.
시집 <내려오는 모습>을 읽고서 그녀의 시를 모두 읽자 마음먹게 되었고 <시골 생활>도 읽고 싶어 선택했습니다.
이번에는 같이 출간된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 <일곱 시절>도 함께 말이지요.
시집은 손바닥만 한 높이에 아주 얇고 한 권을 사면 얇은 부록이 한 권 더 따라옵니다. (현재까지 읽은 루이즈 글릭의 시집들에 한 해)
가벼운 얇기와 무게 덕분에 짧은 겨울 여행 동안 손쉽게 가지고 다니며 읽고 또 읽을 수 있어 좋았지만
이 얄팍한 종의 낱장 수를 보면 한 권으로 했어도 될 걸 왜 따로 제작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부록 또한 필자의 서평처럼 완전히 하나의 다른 이야기로 부록은, 시집 속에서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콕 집어내기도 하고 시를 음미하는데 큰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그녀의 시를 번역하기 위해 시인과 소통할 때도
한글로 옮기며 놓쳐 사라지기 쉬운 것들을 잘 매만지려 노력한 내용이 보이고 이 번역 과정에 대한 글 속에서 시를 대하는 마음과 옮긴이가 시인과 시에 대한 존경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느껴집니다.
시집 <시골 생활>은 <일곱 시절> 이후의 시집으로 목차에서 엿볼 수 있듯 꽤 많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흔들리는 차에서 <협동 농장의 요리법>을 먼저 읽고 여행 끝에 정말로 당도한 진짜 시골에서 읽는 <시골 생활>은 시골 사람들의 일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내용으로 시골에서의 삶과 미래를 생각 중인 요즘 필자의 처지와 겹쳐 더 각별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삼월', '밤 산책', '무화과', '올리브나무', '일출', '따뜻한 날' 등 시골 풍경의 모습들을 '천천히 머물며, 하나하나 세세하게 묘사한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더 익어 알알이 전해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이번 시집 역시 수필가 다운 장문체의 시들이 대부분이고 글이 많이 놓여 있어도 읽음에 답답함이 없는 문장, 읊조리듯 대화하는 듯 그들의 일상을 목도합니다.
첫 시 '황혼'은 시집을 짐작게 하려 배치된 것처럼 삶의 황혼을 응축해둔 시들을 엮은 것은 또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에서 빠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담담한 묘사는 그녀 인생 전체에 깃든 성찰이 모든 시에서 언뜻 언뜻 스며 나옵니다.
어지러웠던 마음으로 이루지 못한 것이 많았던 그해 10월. 그녀는 떠나고 우리들은 남아 이 몇 편의 시들로 힘을 또 얻네요.
겨울에 읽어 그런지는 몰라도 겨울에 읽게 되신다면 저마다의 따뜻한 봄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성장에서 느낀 감정이 비슷하다 느끼는 개인적인 이유만으로도
그녀의 모든 시가 필자에겐 이유 있는 여운을 줍니다만 그럼에도 시집 속 마음에 남는 시의 부분을 조금 소개하며 글을 줄입니다.
카페에서
in the Cafe
...중략...
그는 새로운 생의 문턱에 서 있다.
그의 눈은 빛나고, 커피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해가 지고 있지만, 그에게
해는 다시 떠오르고, 들판은 새벽빛으로 물이 든다.
장밋빛으로, 조심스레 머뭇거리며.
...중략...
종이 한 장
A Slip of Paper
...중략...
내 몸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는 대개 어머니나 할머니 보살핌 아래 자라지만.
그분들에게서 벗어나면, 아내가 이어받는다, 그런데 아내는 예민해서,
너무 멀리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가진 이 몸은
의사가 내 탓으로 돌리는 이 몸은 ㅡ 늘 여자들이 관리해 왔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이지만, 여자들은 많은 걸 놓쳤다.
...중략...
여기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저 문을 통과하면
죽은 자들의 나라다. 산 자들이 너를 밀어붙인다,
자기들보다 먼저, 네가 거길 먼저 가길 원한다.
의사는 이걸 안다. 의사는 자기 책들이 있고,
나는 내 담배가 있다. 마침내
....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