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 방앗간의 편지
알퐁스 도데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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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으로의여행

알퐁스 도데.

명성만으로 압도되어 그의 글이 고파왔다. 생각보다 작품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소중한 티타임마다 품에서 함께하는 프로방스의 소담하고도 따사롭게 빛나는 단편이라니.

코끝 시린 2월 이보다 더 어울리는 책이 없을 것 같았기에.

바람이 따스하게 흔들리는 남 프랑스의 오래된 풍차 방앗간.

나무 내음과 흙 내음 풀 내음이 나는 어느 낮은 공간에 걸터 앉아, 이곳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듯한 그런 기분이 책장을 넘나드는 내내 스며든다.

수록된 모든 이야기들은 세포 세포 아름다움을 모두 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프로방스의 어느 양치기의 이야기 『별』이었다.

마치 자줏빛 보다 투명한 보라, 푸른 수정, 눈보다 흰빛을 띈, 형형색색의 보석들을 버무려 놓은 듯, 아름다운 형용사와 은은한 암시로 가득한 어떤 시들을 버무린 듯한 느낌이 든다.

사물과 자연을 오래 관찰하고 바라보고 느끼면서 글로 밑그림을 그리고 예쁜 생명을 불어 넣어 갖가지 색을 입힌 글들이다.

또한 『오렌지』는 파리의 다른 상징과도 같았다.

데 얼마 전 보았던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도 파리로 떠나자는 내용의 대사에 오렌지 나무와 향기를 두번이나 강조해서 사뭇 궁금했는데, 정말 파리에서 잠들 수 있다면 풍겨오는 오렌지 향기에 눈 뜰 수 있을까? 싶은, 그런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작가가 오렌지 나무숲을 표현한 한 대목을 조금 가져오자면,

'서리를 동반한 차갑고 짙은 겨울 안개가 고요히 잠든 이 도시를 엄습했다. 알제리의 대기 속에서 눈은 진주 가루처럼 보였고 흰 공작의 깃털처럼 빛났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오렌지 나무숲이었다.'

나는 어쩐지 외국어를 대하는 또 다른 나라의 사람의 감정이 모두 그런가는 알 수 없으나, 프랑스의 사람의 이름, 지명, 공원의 생소하고 긴 이름들마저도 눈부신 어떤 조각처럼 글에 녹아 부드럽게 느껴지는 알퐁스 도데만의 글의 맛이 있었다.

책이 꼭 낭만만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지독한 술 압생트와 커피가 등장하는 『고셰 수사의 약초 술』, 『메뚜기 떼』나 『아를의 여인』에는 폐허가 된 농가를 바라보는 한때의 기억, 부서진 생명의 나뭇잎들이 힘없이 나부끼는 공허하고 헛헛한 장면들이 나오기도 한다.

땅에 남은 메뚜기의 지독한 흔적인 알을 파내는 등의 생경한 묘사는 아름다움에서도 그러했듯 세밀했고 지금 다시 떠 올려도 토독 소름이 돋을 정도다.

처음에는 단편이라 하여 각양 각색의 서로 다른 이야기일까 했는데 막상 읽고 보면 모두 커다랗게 한 덩어리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 『풍차 방앗간의 편지』는 알퐁스 도데가 연재하던 소설을 포함, 추가로 창작한 것을 모아 연재 이후에 출판 한 것이라고 한다.

이 24개의 잘 다듬어진 단편 속에는 그가 실제로 여행했던 장소와 한 때 머무르며 몽상에 잠겼던 곳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기억과 어우러져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이 담뿍 담긴것 같다. 도데 역시 가장 애정 하는 작품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 예쁨의 조각 모음인 '풍차 방앗간의 편지'는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낭만'이다.

고전의 매력은 '낡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재현할 수 없는 찰나의 감격, 그것의 포착, 숨길 수 없는 생명력의 힘 곳곳에 베어있는 순수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누군가의 젊음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세계의 시국이 모두 흉흉하여 차마 떠나 찾아갈 수는 없지만 오래된 프랑스의 한적한 남쪽, 아름다운 자연과 그 때 사람들의 비밀을 간직한 풍차 방앗간의 기억 속으로 책 한 권을 통로 삼아 바로 떠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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