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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는 '지인'이긴 하지만 몹시 '타인'인 어느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총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집이다.
최근 읽은 소설들은 등장인물의 독백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이 느끼는 시각, 청각, 촉각 등 온갖 감각 묘사와 심리 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다. 하지만 『어긋나는 대화와 어느 과거에 관하여』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것은 대부분 인물 간의 대화. 단락 구분도 어쩐지 일반적이지 않다. 마치 드라마 대본을 읽는 것 같다. 각각의 이야기가 그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그런 기분이 드는 데 한몫한다. 끝을 알 수 없었던 데는 조금 특별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소설 속 주인공의 성질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른 인물들이 등장했기 때문.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부족한 부분이나 흠이 대개 인간적이거나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결여된 모습에 제각각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어쩐지 이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이해나 공감 따위는 별로 바라지 않는 것 같다. 무엇보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진위 파악이 불가능한 과거의 사건 앞에, 독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물 간 대화를 엿듣는 정도. 완곡하게 말할 줄 모르는 솔직한 인물 앞에 절절매는 주인공을 벙쪄서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내 과거가 완전히 다르게 기억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파격적인 단편 소설들을 통해 듣는 셈.
왜곡된 기억을 갖고 있는 건 누구일까
좋은 사람, 좋은 친구, 좋은 부모, 좋은 자식, 좋은 선생, 좋은 동료…. 모두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우린 누굴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일치하는 의견을 지닌다. 물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는 법이지만. 소설은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개개인의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누군가에게 아주 나쁜 사람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게 기억되는 데 본인의 의도 같은 것은 전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마음 한구석에 자신도 몰랐던 (혹은 모른 척하고 싶었던) 약간의 의도가 서렸을지도 모른다는 것까지.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항상 좋게만 기억될 수는 없겠지만 이토록 상극일 수 있을까. 정말이지 인간은 이렇게 다르고, 치사하고, 비겁하고, 유치하구나 싶었다. 굳이 장르를 찾는다면, 심리 스릴러?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리액션을 토했던 책. 독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책인 것은 확실하다.
자칫 시대착오적 발상이 될 수 있는 언어들을 일부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런 시대착오적 이야기를 하는 인물과 그 이야기에 대처하는 인물, 그리고 작가와 나를 나눠두고 읽으면 오히려 더욱 흥미롭기도 하다. 짤막하게 나뉜 문단과 불쑥 불쑥 큰따옴표 처리가 된 대사들의 나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파격적인 전개. 따뜻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지만 소설 전반적인 시니컬한 분위기 속에서 독자는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고,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껏 제일 풍부한 리액션을 보일 만큼 말 그대로 재밌었던 책. 마지막으로 소오름 대사 하나.
너, 아직도 그 무렵의 인간관계에 머물러 있는 거니?
소미미디어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