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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평점 :
언뜻 책의 제목만 보면, 번역 소설이라 짐작된다. 노라와 모라. 왠지 이국적인 두 이름 때문. 하지만 『노라와 모라』는 한국 장편소설이다. 곤륜산에서만 자라는 돌배나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노라,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모라. 소설은 이 둘에 관한 이야기다.
시집을 낸 이력이 있는 작가는 그 때문인지 이 소설에서도 시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의 은유를 해독하는 것이 정말 따뜻하고 즐거웠다. 적힌 단어들 하나하나가 예쁘고 가지런해서, 그 글자들을 한 자 한 자 따라 적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노라의 이야기와 모라의 이야기. 노라의 이야기는 진한 녹색으로, 모라의 이야기는 검은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텍스트라서 가능한, 이 간결하고 세심한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휴대전화 속에서 들리는 모라의 목소리는 전혀 모라 같지 않았다. 20년 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시간은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으로 변하거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노라와 모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20년 만에 재회한다. 노라에겐 계부, 모라에겐 친부인 아버지의 죽음은 두 생에게 각각 다른 형태로 도착한다. 그 두 생이 각각 짠해서, 문장 사이사이 어딘가에 주저앉아 울고 있을 것 같아서, 읽는 입장에서 내내 마음이 아렸다. 노라와 모라는 함께 살았던 시간을 비슷하거나 혹은 아주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기억이 진짜인지, 기억의 진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 시간은 지나갔고, 그들은 서로에 대해 영영 모를 테니.
처음부터 끝까지 남처럼, 아니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구는 노라를 마주 볼 자신이 없다. 끝까지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사이.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런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중략).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모라가 모라일 수밖에 없듯이, 나는 나일 수밖에 없다.
노라가 기억하는 모라, 모라가 기억하는 노라의 모습에는 어쩔 수 없이 기억의 혼동이 섞여 있고, 각자의 사정에 따른 인식과 판단, 오해가 담겨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다각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 가진 숙명이다. 우리는 각자 '나'일 수밖에 없어서,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영원히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돌아서게 되겠지. 그럼에도 노라와 모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그 간극을 조금씩 좁혀가는 노력을 한다.
노라와 모라는 20년 만에 처음 만났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바로, 그들이 20년 만에 처음 만난 터미널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헤어진다. 노라와 모라가 아마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서로에게 어떤 각별함을 느끼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그들 사이가 아주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하는 극단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이었고, (추천사를 적은 소설가 김숨의 말처럼) '더없이 차갑고 더없이 따뜻한' 소설이었다.
다산책방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