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녀석들 문지아이들 163
김려령 지음, 최민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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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잠깐만 사는 집이라고 강조했지만, 나는 잠깐도 살기 어려워 보였었다.


남도 아니고, 삼촌에게 사기를 당한다. 5학년 현성이와 그의 부모님은 철거를 앞둔 비닐하우스 꽃집 '양지 화원'에 살게 된다. 어른들의 언어가 곧 자신의 언어가 되는 '아이'가 '사기'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무려 가족에게 당한 사기에 대해. 어쨌거나, 현성과 그의 부모는 잠깐도 살기 어려워 보이는 집에서 머물게 된다.




이 꽃집이 우리 집이 아닌 것이 되면서 여기에 있던 것들을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비록 그것이 흙일지라도. 그 흙에서 풀이 자랐다. 말라비틀어진 흙이었는데 봄이 되니 하늘하늘한 풀이 몇 가닥씩 올라왔다. 신기해서 물을 줬더니 잘 자랐다. 이름 모를 아주 작은 꽃도 피었다.


"얘들이 어떻게 나온 걸까? 신기하다."

"그러니까 잡초지. 걔들은 알아서 자라."

나름 화원 간판이 걸린 집에서 우리는 잡초를 키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이름 모를 꽃을 보고 신기해하는 현성을 두고 그의 엄마는 시큰둥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잡초지. 걔들은 알아서 자라." 한쪽에 아무렇게나 모아둔 흙에서 풀이 자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꽃도 피었다. 잡초는 알아서 자란다. 하지만 아이들은 혼자 클 수 없다. 전기와 가스가 언제 끊길지 모르고, 또 언제 철거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아이 현성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도대체 집집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 것일까. 우리 집은 무슨 사기로 복잡한데, 장우네는 부모님들이 복잡했다. 그래서 우리 집이 우리 집이라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 그래서 나가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몰랐다. 장우네 부모님은 왜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왔다 갔다 하는 부모님도 있는 것인지, 그래서 같이 사는 사람이 누구누구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뭘 몰라서 어른들의 일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걸까.


현성이네는 삼촌에게 사기를 당해 집을 잃고, 엄마와의 말다툼 후 아빤 집을 나갔다. 장우네는 부모님이 이혼 후 각각 재혼을 하셨는데, 아빠와 함께 사는 집에 새엄마가 들어오면서 장우는 '집에서 밀려난 기분'이 든다. 복잡한 집 아이 현성은 다른 복잡한 집 친구 장우에게 자신의 결핍을 고백하며 위로한다.


나는 부모님 한 분이 집에서 나갔는데, 장우는 부모님 한 분이 집으로 오셨다. 나는 이것이 장우에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만히 말했다.

"우리 아빠는 집 나갔어."


꿈과 희망이 가득해도 모자랄 아이들이, 서로의 결핍을 통해 위로받는다. 아이들은 혼자 클 수 없는데, 어쩐지 알아서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현성의 입을 빌려, 비극을 비극처럼 서술하지 않아서인지 더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동화였다. 가제본에 담긴 이야기가 하필 너무 궁금한 지점에서 끝났다. 현성이네가 지하 집으로 이사를 가기로 한 날, 현성의 아빠가 돌아올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 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결말이 어떻게 흐를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에게 어떤 따스함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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