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고양이를 버리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부분은 그의 '어릴 적' 이야기다.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는 그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어, 다소 희미하다.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의 나이가 72세인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다. 처음엔 아무래도 전쟁을 경험한 세대, 그것도 전범국가의 국민으로서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심스럽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런지도 저런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겪은 경험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그는 그의 아버지의 경험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아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는 전쟁이란 경험을 통해 그의 아버지가 가졌던 그 무거운 마음을 그 나름대로 이어가고 있었다.
당신이 시대의 방해로 걸을 수 없었던 인생을, 당신을 대신해 내가 걸어주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전쟁 세대였던 하루키의 아버지는, 공부를 할만하면 군에 소집되었다. 열심히 목표에 집중해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인데, 하물며 전쟁이라는 어쩌지 못하는 큰 장애물이 인생에 놓이면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것을 낭만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지만, 그럼에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그는 어떤 나름의 문학적 낭만을 즐겼다. 지아키가 생전 남긴 하이쿠를 보면 그러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왠지 모르게, 내가 생각하는) 그답게, 하이쿠에 대해서 잘 모르므로 아버지의 문학적 소양에 대해서 잘은 모르겠다는 듯이 예의 그 긁적이는 태도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아버지와 자신의 연결 고리를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혹은 그 연에 대해 어떤 필연적인 인정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쿠: 3구로 된 일본 특유의 정형시로 특정 계절을 나타내는 말이 반드시 들어간다.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유한 중력, 이라는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담백하게 타인의 존재, 다른 세대의 존재를 그냥 인정하고, 두고, 역시 그 옆에 오롯이 나의 존재를 두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한 방울. 우리는 딱 한 방울의 몫으로 세상에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방울로 살아간다. 그 한 방울의 책무에 대해서, 나의 책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책.
김영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