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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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는 난감한 상황에 놓여있다. 사랑하는 아내는 죽은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직장에서 갑작스런 해고통보를 받았다. "좀 느긋하게 살면 좋지 않아요?" 그것도 금요일에 이야기하면 좋은 주말을 보내지 못할까봐 월요일에 말하는 배려를 보태서 말이다. 평생 쉬어본 적 없는 성실 그 자체인 남자에게 느긋함이라니, 오베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오베는 남은 시간을 홀로 시간을 떼우며 보내는 대신 자살을 시도한다. 성격만큼 깔끔하게 말이다. 정확한 위치에서, 집이 손상가지 않도록. 남은 유품은 적절히 사용되도록 사용설명서 같은 유서를 남긴다.  그러나 오베의 다양한 자살시도는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실패를 거듭하게 되고, 오베의 주변에 사람을 불러모은다. 이웃집 파르바네는 오베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오베는 죽는 데는 진짜로 쓰레기처럼 형편없는 인간이 확실하거든요!"


 

어찌보면 괴팍한 노인네가 사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흔할 수도 있는 줄거리인데 엮어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오베와 이웃들의 비밀을 한 번에 풀지않고, 한 화, 한 화 아주 조금씩만 흘린다. 처음엔 수박겉핥기처럼 사실을 묘사하고, 그 후에 아주 조금씩 세부적인 사건들과 감정을 덧붙인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웃으며 넘어갔던 부분들이 다음 챕터에서 묵직하게 되돌아오니 말이다. 


 

이야기가 진행될록 글이 깊어지고 애틋한 반전을 선사하는데 처음엔 벼락맞은 멧돼지 같던 오베가 점점 이웃집에서 실없이 허허 웃는 다정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진다. 오베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언성을 높이며, 난폭하며, 무식하게 행동하는데 말이다! 


 

따뜻한 감동을 담고 있는 소설이지만 문장은 결코 지루하게 늘어지거나 지나치게 진지하게 빠지지 않는다. 시종일관 유머를 던져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좋아하는 부분을 하나 옮기자면 이렇다.

 

전쟁이다, 개자식들아!" 루네가 전화기에 대고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전쟁이었다. 끝없는 호소와 서한과 청원과 신문 투고, 1년 반 뒤 의회는 두 손을 들고 다른 곳에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 루네와 오베는 루네의 집 테라스에서 위스키를 한잔씩 마셨다. 아내들은 그들이 승리에 대해 그다지 기뻐하는 듯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사실 두 남자 모두 의회가 그렇게 빨리 포기를 해버린 데 대해 다소 실망해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18개월이었는데.

 

솔직히 이 정도로 재밌는 문장은 주로 장르소설 혹은 블랙코미디에서나 봤는데, 이 책은 진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함을 유지한다. 놀랍게도 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동차는 사브로 사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지는 신기한 소설이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빛바래고 나무는 여기저기 쪼개져요. 그러면 집이 완벽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해요.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하게 되는 거죠. (중략) 집을 자기 집처럼 만드는 건 이런 작은 비밀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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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힘들 때 시 읽어요 - 엄마한테 읽어주는 시와 에세이
송정연.송정림 지음, 류인선 그림 / 나무생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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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십니다.
그런데 자식이 읽어드린 그 시를 다음날에도 잊어버리지 않고 계셨습니다. 딸이 전 날 밤 온 줄도 모르고 아침에 "아이고, 왔니?" 하며 다시 반기셨지만 전날 읽어드린 시의 내용은 잊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치매가 왔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명절에나 보던 손녀는 옛적에 까먹으시고 착한 아가씨가 고맙네 하시던 할머니. 그리고 점점 말이 없어지셨다. 자꾸만 확인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는게 두려워서 '내가 누고? 야는 누구고' 하고 묻던 친척들.

할머니는 그저 실같이 얇아진 눈으로 '허허'하고 웃기만 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고, 바뀌고, 의심이 늘어날 때 할머니가 좋아하는걸 찾아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내가 누군지, 엄마가 누군지 다 까먹었어도 기억할 수 있는 하나를,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찾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작가 송정연과 송정림 자매가 요양원에 계신어머니께 읽어드리려고 고르고 고른 고운 시들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옛날시도 있고, 근대시도 있고, 서양시도 있고, 한시도 있고 다양한 시들이 섞여 있다. 몇 번 들어본 구절들도 있고, 처음 보고 이렇게 좋은 시도 있었구나 싶기도 말이다. 그런 시와 곁들어 짧막한 에세이를 덧붙였다. 어머니의 추억을 시 한편에 담아, '그때 그랬었죠' 하고 다정하게 속삭이듯 말이다.

시집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런 내공이 되지 않아 내가 아는 시들의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들은 시들이다. '나는 이 시를 참 좋아해, 왜냐하면-' 하면서 이어나가면 나도 '아, 이래서 그 시가 좋은거구나'하고 가슴에 하나, 둘씩 담아 두는 것이다. 날 것 그대로 시를 즐기면 좋을텐데, 인생살이 무심해서 그런지 후루룩 읽어나가다 제풀에 지쳐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 급하게 후루룩 읽으며 '아,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봐도 좋고, 하루에 한 편씩 읽으며 '아, 이 시는 이런 느낌이구나'하고 천천히 시를 음미해도 좋고 말이다. 시와 에세이와 어우러진 그림도 곱디 곱다. 

엄마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엄마 딸은 시를 읽어주고 싶어도 아는 게 없어서 곱게 나온 이 책을 대신 선물한다고 덧붙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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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징조들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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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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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이라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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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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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흔들리는 때가 있다. 내가 가끔씩 삶에 방향성을 잃을 때, 그런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건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이었다. 완벽하다 못해 세기에 몇 나올까 말까한 위인의 이야기보다는 서툴지만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서툴지만 살아갈 수 있어'라는 묘한 안도감을 얻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 슬럼프다. 가끔은 문제도 알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아도 도저히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때도 있는 법이다. 아니, 실은 그런 때가 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다들 직장을 찾는 시기에 아르바이트로 외국에서 허송세월을 보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다 잃어버렸고, 폭염이란 말에 걸맞게 죽여주게 더운 날씨에 완전히 녹아내리고 있다. 그렇게 완전히 축 쳐진 오후에 책을 펼치면서, 다섯 장만에 '아, 이거 너무 와 닿는다' 라면서 몰입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대 여자 특유의 감수성이 그런걸까. 정말 이해하고, 와 닿아서 적어서 보관하고픈 구절들이 한장을 넘기기도 전에 계속 쏟아져서 받아 적는 것도 포기하고 한 편씩, 한 편씩 계속 읽었다.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러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옳고, 그르다는 말없이, 삶에 있어 여러번 찾아오는 평범한 전환기를 묘사하고 있는 이 단편들은 다 읽고 나면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생이 그렇다. 기승전결을 따라가 어느 순간에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계속 이어질 뿐이다. 죽을만큼 아프고, 슬퍼도 아무렇지도 않게 또 다음날이 오고, 반대로 아무일 없이도 다음날은 또 온다.

 

그냥 그렇게 작가의 욕심대로 진솔한 일상만 담다보면 재미를 놓치기 마련인데,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 매력을 가지고 독자를 끌어당긴다. 일상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흥미있는 소재를 끌어들이고 삶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노련한 이야기 전달방식은 솜씨 좋은 이야기꾼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대중성에 대한 증명은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여타의 문학상들이 문학성에 중점을 둬, 무슨무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오히려 재미없는 작품이란 공공연한 후문이 돌고 있지만, 나오키상은 대중문학을 대상으로 하여 일반 대중인 독자들이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품은 읽을만하다'는 확신을 심어 주고 있다. 나 역시 소설의 제목이나 작가보다도 '나오키상 수상'이란 글자가 먼저 들어왔으니 말이다.

 

이전 수상작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GO'나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같은 작품이 가지는 유쾌함이 잊혀지지 않고, 그 다음 수상작을 기대하게 한다. 유쾌함만이 아니라 따뜻한 감동을 담은 아사다 지로의 '지하철'과 섬세하고 조용한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어 있다'도 이 상을 수상하여 단순 재미만이 아닌 깊이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런 이전 작품들의 성향에 비추어 모리 에토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에 대해 평하자면 따뜻한 감동을 담고 있는 책이다. 거기에 덧붙여 조용한 강인함을 가진 책.

 

이 책의 여섯 개의 단편에서 연관성 없는 다양한 직업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묘사해내는 것에서 현대의 일본문학이 가진 가벼움을 넘어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세한 여성으로 글을 이끌어나가다가, 갑자기 직장과 야간학교를 병행하는 굳건한 남자고학생으로 변하고 나이 40의 이미 사고관이 굳어버린 출판사의 사원이 되어 젋은 영업사원을 못미덥게 보는 눈으로 변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의구심이 들게 될 것이다. 과연 같은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이 맞나? 라고. 그렇게 말할 정도로 각 상황에 자연스럽고 또 사회 그 분야만의 깊이를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라카미 나오키, 요시모토 바나나 등의 일본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에게서 매너리즘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며, 전달하는 방식도 작가의 특색이 묻어난다. 하지만 짧은 주기로 계속 나오는 소설은 조금 달라진 설정 이외에 뭐가 바뀌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작가를 흠모해서 기다리는 팬들에게는 신간이 기쁨이겠지만, 신간의 유효기간이 지나고나면 '그 작가는 원래 그래'라는 말에 묻어가는 단행본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번 단편집을 읽으며 느낀 것은 아사다 지로의 다양한 책들이었다. 철도원과 같은 따뜻한 감동에서 창궁의 묘성과 같은 진중한 역사물, 파리로 가다와 같은 개그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층은 이게 과연 같은 작가가 쓴 책인가 싶을 정도다.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다양하게 글을 쓴다는건 말은 쉬운 일이지만, 작가의 폭넓은 시야와 역량이 받혀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자신이 아는 만큼밖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모리 에토도 분명 그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아동문학만을 쓰다가, 그 틀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분명 하나의 세계를 개척한 일이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 어떤 장르로 나올지가 기대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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