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끼낀 바위 >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가 있다.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 세계산악 명저선 8
모리스 에르죡 / 수문출판사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산을 오르거나 먼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면 우선 동행자를 정한 후 가기로 한 산이나 고장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그런 후 배낭을 꾸리고 집을 떠나서 산을 오르고 하산 후 다시 출발지로 돌아와 자리에 누

워 자신과 일행이 오른 산이나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히말라야 등반도

그 규모나 소요되는 시간에서 비교할 수야 없겠지만 비슷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1950년 안나푸르나를 오르기 위한 프랑스 원정대의 일련의 여정은 오늘날의 히말라야 원정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8000미터급 등반이라는 엄청난 과업을 달성하기 위하여 헌신한

그들의 노고를 다른 무엇과 견줄 수 있겠는가.

요즘과 같은 정확한 지도나 지형도, 운송수단등도 없을뿐더러 등반루트등에 대한 정보도 일체 없었던 시절

에 히말라야 등정은 말하자면 오지탐험과 등반행위가 혼합된 가히 대모험으로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원정대

가 가지고 있던 지도는 주먹구구식으로 표기돼 있어 도데체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다울라기리를 오르기 위하여 시작한 탐사길이 안나푸르나 일대로 확대되고 결국은 안나푸르나를 등정목표

로 하여 원정대는 전력을 다하게 된다. 그들은 어쩌면 인류가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으리라고 생각되는 곳을

헤집고 다녔던 셈이다. 그러나 원정대는 그 미지의 길을 시종일관 낙천적이며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여기고

어려움을 돌파해 나간다.

흔히 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의미에서라기 보다는 산에서

겪게 되는 온갖 예측불허의 상황을 적절한 판단과 과감한 결단속에서 현명하게 극복하고 정상에 서는 일, 그

리고 겸허하게 하산하는 행위들의 총체가 세상살이와 흡사하다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인생으로서의 등반행위를 가장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원정대장인 모리스 에르족을 만나보자. 그는 철저한 자기 희생속에서 대원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

는 자세를 실천으로 보여준다. 크레바스에 빠졌을 때의 모습이라든지 혹은 자신이 다른 대원들의 희생을 딛

고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감으로 번민하는 모습은 그의 인격을 가늠하는 열쇠이다. 하산시

자신이 겪은 극단의 고통을 내면속에 감추고 다른 대원들이나 셀파들의 희생을 고마워하며 고국으로 귀환

하는 날까지 원정대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 처음 대원들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부터 그는 대원들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보여주더니 결국엔 자신과 같이한 9명의 동지들과 평생 우애를 나누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고백한다. 그가 손가락과 발가락을 뭉텅 뭉텅 잘라내는 아픔과 자른 손가락 사이사이마다 구더

기들이 무더기로 서식하는 처참한 상황속에서도 그리하여 죽음을 생각하는 순간까지도 올랐던 산을 통하여

놓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침내 안나푸르나는 에르족의 발아래 있었다. 그러나 '인생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가 있다'는 에르족의 말

속에, 그리고 프랑스 산악협회장이 서문에 썼던 얘기대로 산을 정복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아의 완성이

야말로 궁극의 목표'란 고백속에 바로 에르족의 마음이 자리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산도 산행도 인생의 궁

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보다 낳은 인격과 자아를 이루어 가는 수단으로 본 것이었다. 산을 통하여 완성된 인

격으로 나아 가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날 산을 사랑하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산으로 가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지향점은 무엇일까. 에르족이 추구했던 삶의 지표를 그들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에르족의 솔선수

범하는 모습은 다른 대원들과 셀파들로 하여금 정상등정을 위하여 자신들이 가진 최선의 능력을 한 곳으로

모으게 하는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낭가파르밧에 도전하여 엄청난 희생 끝에 정상을 정복한 독일원정대와 프랑스 원정대를 비교해 보

자. 라인홀트 메쓰너가 쓴 책 [벌거벗은 산]을 보면 독일의 유명한 등산가 메르클이 지휘하는 1930년대 독일

낭가원정대는 모든 면에서 1950년 프랑스 원정대보다 일사불란 했으며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결과

는 참담했다. 그 원정대의 유지를 이어 받은 유명한 대장 헤르리히코퍼는 대원들과의 불화속에서 낭가를 올

랐지만 명분은 잃고 실리만 얻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대원들의 마음까지 지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 헤르리

히코퍼의 지휘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1970년의 낭가원정대의 라인홀트 메쓰너는 대장이 선두에 서서 난관

을 돌파해본 경험이 없으므로 베이스캠프에서 내리는 결정들이 등정조 같은 다른 대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

했다고 낮게 평가했다. 이점 프랑스원정대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생명을 걸고 등반

을 해내는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대원들의 일치감과 서로에 대한 신뢰감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것임

에도 독일 원정대는 처음부터 이점에 실패했던 것이다. 당연히 공격조는 대장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으

며 등정을 했음에도 원정대로서는 절반의 성공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두 원정대의 특색을 두 나

라의 국민성에 돌릴 수도 있겠다. 즉 프랑스 국민 특유의 자유롭고 낙천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등반대와 엄격

하고 통제된 그러므로 일사불란 하지만 무엇인가 삐걱거리는 독일대의 모습으로. 어쩌면 원정대가 꾸려졌던

193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의 시대정치상황과도 닮아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원정

대를 지휘하고 통솔하는 대장의 인품과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이라는 것이다. 대원들을 하나로 통합

해내는 능력이야말로 원정의 성패를 가름하는 것이니까.

1950년의 프랑스 원정대는 그런 원정대장과 더불어 대원들의 면목 하나하나도 당대를 대표하는 등산가들

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원들은 죽음의 사지에서 동료를 구해내고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눈물겹게 보여준

다. 살인적인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색맹에 걸려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대원들, 동상에 걸려 업거나 지고 갈

수 밖에 없는 대원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몸처럼 돌보는 그 우애는 어쩌면 에르족이 이 책에서 가

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일 것이다. 그들은 성공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후의 하산에서 셀파들의 도움

이 없었다면 그들이 살아서 하산할 수 있었을까. 이 점은 에르족도 인정한 듯 그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말

하고 있다. 셀파들이야 어떤 삶의 가치를 느끼기 위하여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고 단지 급료를 받고 등반을

돕는 신분이지만 생사의 기로에 서있는 대원들을 자신들의 몸을 희생하여 사지에서 구해내는 것을 보고 있

노라면 인간에 대한 그들의 무한한 애정을 경건한 마음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책을 덮고 나서 할말이 많은데 막상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모르는 것이며, 자신

의 감정이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이지 헷갈리는 것이며, 다 읽은 책이 서가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쉬운 마

음에 양손으로 만지작 거리게 되는 책일 것이다. 이 책에는 원정대가 흘렸을 땀과 눈물, 극한의 상황에서 터

져나오는 절망과 신음, 그리고 환희와 행복의 충일감이 한편의 드라마처럼 책 갈피갈피에 녹아 있다. 그러니

어찌 한 번 읽고 서가에 쳐넣을 것인가.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인생의 안나푸르나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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