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의 마지막 한숨 -상 - 세계현대작가선 2
살만 루시디 지음, 오승아 옮김 / 문학세계사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살만 루시디 하면 내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천일야화>에 나오는 저 악랄한 이발사다. 이 소설에서, 무어가 자신의 천형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따뜻한 시선을 떠올린다면, 이는 다소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평가지만, 그가 가진 이야기의 힘은 그만큼 압도적이다.

<무어의 마지막 한숨>은 비교적 평이하게 출발하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한다. 특히 무어의 연인, 사악한 거짓말쟁이 우마가 등장하면서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헛갈리기 시작한다.

오로라는 필딩과 바스코 미란다의 정부였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아브라함은 봄베이의 어두운 세계를 지배하는 대부인가? (그렇다. 이건 확실하다.) 그는 사업을 방해하는 딸과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아내 오로라의 죽음을 배후조정했을까?(그럴 것이다.) 무어는 4달 반만에 태어난 것이 맞는가? (이건 모르겠다.)

작중화자이자 주인공인 무어는 어머니쪽으로는 바스코 다가마의 후손이요, 아버지쪽으로는 그라나다에 있었던, 알함브라궁전으로 유명한, 마지막 이슬람왕국 술탄의후예이다. 그는 조로증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보다 두배의 속도로 늙어가는, 청년(혹은 노인)의 몸에 어린아이(청년)의 맘을 가진 괴물이다. 무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명백하다.

무어의 어머니 오로라는 일생동안 혼자몸으로 세상의 온갖 편견에 맞서 싸운 천재화가이다. 그녀는 인도의 모성을 상징하는 여신이자 동시에 파괴의 여신 칼리로 묘사된다. 그녀는 무어의 빠른 성장을 잡아놓기라도 하려는 듯, 그의 성장을 작품으로 남기는데, 그 묘사가 너무도 생생하여 이들 작품이 정말로 어딘가에 꼭 존재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편 그녀의 작품을 둘러싼 온갖 해프닝들 -그냥 내키는 대로 그린 그림에 대하여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일어나는- 은 작가 자신의 처지를 빗대 말하는 듯하다.

무어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름이 암시하듯 아들 무어를 제물로 바치는 냉혈한이다. 처음에는 한심한 공처가쯤으로 보이던 아브라함의 어두운 정체가 밝혀지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무어가 아브라함의 적 개구리왕 필딩의 망치가 되어 활동하는 부분등은 흡사 대부나 다른 갱스터 무비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루시디는 이를 경계하기라도 하듯 아브라함이 재판정에서 '난 여기 영화 대부 마살라 리메이크를 찍으러 온 게 아니오.' 라고 중얼거리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얼마나 웃었는지...루시디는 자신의 작품이 어떤 한가지 모습으로만 보여지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것 같다.)

한편 무어의 연인 우마는 어떤 사람에게도 그 혹은 그녀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거짓말쟁이다. 무어는 처음부터 실은 그녀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도, 그녀에게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녀의 속임수에 처음부터 넘어가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은 오로라이다. '그녀는 우리 모두의 내밀한 자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신을 믿지 않는 오로라만이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우마는 오로라의 가슴에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내고 그녀와 무어를 갈라놓는데 성공한다. 댓가로 그녀의 목숨을 지불한 채.

이들 외에, 실존하는 극우 힌두교 정치가를 풍자했다 하여 말썽을 빚은 개구리왕 필딩과, 살리에르를 연상케하는 바스코 미란다 등이 등장하는, 평범한 인물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소설을 일종의 인도신화, 외래문화의 다양한 영향이 복잡하게 가미된 새로운 인도신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디는 이 역시 부정한다.'아닙니다 선생. 아니고 말고요. 여기 옛 신같은 것 없다. 모두 신출내기뿐이다.....비극은 우리의 본질에 맞지 않았다....우리는.. 광대들에 불과했다. 광대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무어가 인도를 떠나 스페인으로 가서 마주친 플랜카드에 적혀 있는 구호일 듯 하다. '삶의 모든 것이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대립되고 너무나 분명치 않으므로, 우리는 어떤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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