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1월, 암 발병 한달, 입원 사흘만에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저자 정미경(1960~2017). 그녀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밤이여, 나뉘어라>, 2008년 이효석문학상 추천 우수작인 <타인의 삶>, 2008년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작 <프랑스식 세탁소>, <번지점프를 하다>, 소설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내 아들의 연인>, <새벽까지 희미하게>, 장편소설 <장밋빛 인생>,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아프리카의 별>, <가수는 입을 다무네>, <당신의 아주 먼 섬> 등 10여편의 주옥 같은 작품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어느듯 1월 18일, 그녀의 사망1주기를 맞았다. 많은 독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그녀를 애도하고있고, 그런 가운데 우리는 '정미경 전작, 함께 읽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그 첫 작품이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다. 이 소설집은 '나릿빛 사진의 추억', '호텔 유로,1203', '나의 피투성이 연인', '성스러운 봄', '비소 여인',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등 총 여섯 편의 비굴하면서도 허무한, 그리고 속절없는 삶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못났다. 권력을 가진 자의 협박이 무서워 사랑했던 여자를 불러 몹쓸 짓을 시도하고, 명품을 사기 위해, 명품으로 치장한 삶을 위해 몸을 팔러 가고, 이미 죽어버린 남편을 대상으로 질투심을 일으키고, 돈 때문에 존경했던 옛 은사를 협박하고, 비소라는 독극물로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비로소 영혼의 단짝을 만난 것을 예감하면서도 경제적 풍족함이 보장된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그런 안타까운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왜 이렇게 못난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그들 중 행복한 사람은 없다. '성스러운 봄'에서는 어린 딸의 병원비로 사채빚까지 끌어쓰는 보험사 직원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딸은 죽고, 그 죄책감으로 서로 물어뜯기까지 한다. 산더미같은 빚 때문에 남편은 돈의 노예가 되었고, 냉혈한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내는 그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다. 오히려 딸의 죽음을 남편 탓으로 돌리며 매일 원망하더니 결국 입까지 닫아버린다.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그는 잠 잘 시간조차 턱없이 부족하여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아찔한 차 사고 위험도 몇 차례 있었다. 그렇게 그는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못 죽어서 살아가는 듯, 덧없이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작가는 그들 주인공들을 음지로 내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에게 나름의 기회를 주었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호텔 유로, 1203'에서는 평범하지만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주었고,  '성스러운 봄'에서는 대학시절 가장 존경했던 대학교수를 만나 찬란했던 과거를 돌아보게 했으며,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에서는 영혼의 짝꿍같은 존재를 알아차리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그 기회들을 거절했고 본래 삶의 형태를 조금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 고통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들.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사는 의미는 더욱 찾기 어려웠으리라. 결국 그들은 돈과 관습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호텔 유로,1203'의 윤미예는 "생이 이토록 누추한데 거기다 근검절약까지 할 수는 없지 않은가."(p.66)라며 자기합리화를 시도한다. 이런 모습, 익숙하지 않은가. 평범하고 주위에 있을 법한, 인텔리라는 타이틀을 가진 좀 고상한 측에 속하는 부류.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에서 정은의 경우는 결정의 순간에 잠깐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기대를 가져보지만 역시나 결국 용기를 내는 단계까지는 발전하지 못한다. ​이 역시 우리 주변의 모습들이다.


작가는 이렇게 신데렐라나 영웅으로 주인공들을 꾸미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독자들을 가르치려 하지도, 헛된 희망을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인간들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만 하였다. 어떠한 반전도, 반성도 없었고, 권선징악도 없다. 이것이 딱 인생 그대로의 모습일수도. 혹시 '내로남불'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하고 반성이 되는 건 아마도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하고 유추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라고, 적극적으로 살기 바란다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라고, 그리고 잠시 쉬어가라고, 또 주위를 돌아보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더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배경이다. 독자들은 아마 주인공들의 칙칙한 삶 만큼이다 칙칙하고 습한 배경을 짐작하리라.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작가는 그 주인공들이 살아 숨쉬는 모든 공간을 푸르름으로, 아름답고 밝음으로 표현했다. 사실 그래서 더욱 가슴 시리게 느낀다. '이렇게 좋은 날, 이런 일을..' 이라며... 분명 이것은 고도의 계책,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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